[한국전쟁, 문화로 말하다] 문학전쟁 겪지 않은 작가들, 억압된 기억 소환하거나 장르적 코드 인용해 묘사

소설가 김영하
전쟁문학은 저 아득한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비롯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통상 근현대 작품으로 좁혀 논의된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1차 세계대전을,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타인의 피>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 인간군상의 갈등과 반목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전쟁은 문학의 가장 매력적인 소재 중 하나였다.

우리에게 그것은 한국전쟁이다. 2000년대 우리 문학은 전쟁의 상흔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김영하와 김연수의 분단

한국전쟁 자체를 다룬 2000년대 이후 문학작품은 김연수의 단편 '뿌넝숴(不能說)'를 꼽을 수 있다. 2005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수록된 이 작품은 중국어로 '말해질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으로 참전했던 노인이 한국에서 온 작가에게 말하는 독백체로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노인은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던 현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작품을 지배하는 것은 계몽적이거나 도덕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작가적 허무다.

글은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고려해야 하는 형식 때문에 진실을 사장시켜버릴 뿐이라는 작가의 '허무'는 이전 세대와 분명 다른 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작가의 세계관은 노인의 말에 함축돼 있다.

'뿌넝숴. 뿌넝숴. 역사란 책이나 기념비에 기록되는 게 아니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몸에 기록되는 거야. 그것만이 진짜야. 떨리는 몸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말해주는 게 바로 역사야. (…) 그건 자네가 읽는 역사책도 마찬가지일 것일세. 서로는 서로를 괴뢰군이라고 부르고 서로는 서로를 격멸했다고 말하고. 그런 역사책은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거짓말이라고 내 얼굴에 침을 뱉지.'

오창은 문학평론가(단국대 국문과 연구교수)는 "예전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의 흔적과 체험 속에서 이야기를 쓴다면, 김연수 세대에 이르러서는 억압된 기억을 소환해내는 방식으로 전쟁문학을 쓴다.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전쟁을 다루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전쟁이란 거대 담론을 개인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도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분단문학'이란 범주로 넓혀 보면 김영하의 <빛의 제국>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2006년 출간된 이 장편은 남파된 지 20년이 넘은 '잊혀진 스파이' 김기영과 그의 가족들이 겪는 24시간을 그린다.

소설가 김연수
소설은 '하이네켄 맥주와 빔 벤더스의 영화를 좋아하'고 '일요일 오전엔 해물 스파게티를 먹고 금요일 밤엔 홍대 앞 바에서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는' 자본주의의 소시민에게 돌연 24시간 이내 북에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하루를 뒤쫓는다. 발표 당시 "1960년대 최인훈의 <광장>에 대한 김영하 식 대답"이라 소개된 이 소설은 주인공의 일상에 철저히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전쟁 이후 세대에게 전쟁이 얼마만큼 낯선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대 분단 문학

분단문학으로 확장하면 사실 남과 북을 다룬 작품은 1990년대보다 2000년대가 더 많을 정도다. 2000년대에 탈북자가 대거 늘어나면서 탈북자를 다루는 형태의 문학작품이 쏟아진 것. 강영숙의 <리나>, 정도상의 <찔레꽃>, 황석영의 <바리대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북한관광이 일반화되면서 중국 등 국외나 관광차 찾은 북한에서 북한 동포와 만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그린 소설도 있다. 전성태의 소설집 <늑대>의 단편 '모란식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예전 철저히 금기시된 북한 동포, 탈북자와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융화된다는 설정은 2000년대 문학작품의 특징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작가세대가 전쟁을 그려내는 또 한 가지 방식은 장르적 코드를 인용하는 것이다. 영화로도 준비 중인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은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한다는 가정으로 쓰인 장편이다.

소설가 강영숙
통일 5년을 맞은 2016년, 통일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을 전부 주민등록화하는 데 실패하고 주민등록이 없는 이른바 '대포 인간'들이 생겨난다. 통일은 이루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분단 상태고,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보다 더 지독한 지역감정 하나가 추가되었다.'

김일성 주석 탄생 기념일인 4월 15일 태양절을 맞아 술을 마시며 향수를 달래던 호위사령부 출신 친목 단체가 경찰서를 습격, 방화한 것으로 폭동이 발생한다. 무기는 분실됐고, 군인들은 하층민이 되거나, 조직폭력배가 됐다. 조폭들은 '통일된 나라의 사생활'이 된다. 소설은 누아르와 스릴러, 역사와 추리가 교차한다.

반목적(反目的)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설정은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통일과 북한에 대한 공포를 은연히 드러낸다.

원로들의 2000년대 모습은?

그렇다면 전쟁을 겪은 원로세대의 2000년대 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전쟁문학으로 알려진 작가 김원일의 2007년 작 <전갈>을 읽어 보자.

소설가 정도상
이 소설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를 체험한 할아버지 강치무, 산업화 시대의 희생자로 추락한 아버지 강천동, 그 피를 받고 태어난 1인칭 화자 강재필 3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역사의 상흔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은 강씨 3대가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한국현대사의 거센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을 부각시킨다.

강치무는 3·1만세시위 당시 비밀결사인 일합사 회원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지만,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아편 밀매를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관동군 731부대로 보내지고 이곳에서 일본군 보초병으로 근무한다. 한국전쟁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치욕은 계속된다. 예전 역사 폭력 속에 개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이제 작가는 이같은 잡초 근성의 인물들이야말로 한국 현대사를 일군 소(小)영웅임을 암시한다.

한국의 전쟁문학, 1950년부터 2000년대까지

전쟁문학은 그 형태가 다양하다. 통상 전쟁이 발발하는 시기 전투 풍경 그 자체를 그린 '종군문학'과 전쟁의 후방 풍경을 다루는 소설이 대표적이다. 이런 두 경향의 작품이 1950년대에 쏟아져 나왔다. 김동리의 단편 '밀다원시대'는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온 문인들이 다방 밀다원을 드나들면서 그날 그날 먹을 것과 잠자리에 허덕이고 있는 양상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절이 지나면 유년시기 전쟁을 겪은 세대가 작가로 성장한 후 유년시절과 아버지 세대의 전쟁을 말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김승옥, 이청준, 김원일 등의 작가군이 이에 속한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대표적이다.

이후에 시기가 지나 작가의 '거리두기' 객관화가 가능한 때에 전쟁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품이 발표된다. 대표적인 작품이 홍성원의 <남과 북>이다.

소설가 이응준
전쟁의 영향력은 존재하지만,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는 기억이나 증언, 전수되는 역사로서 전쟁을 그려낸다.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2000년대 분단문학은 기억과 증언으로 전쟁을 그려내는 시점이다. 분단의 영향력 아래 살고, 실제 분단에 대한 공포도 존재하지만, 직접 경험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들. 수없이 변형되어 발표되는 '군대 이야기'도 전쟁의 편린을 보여주는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소설가 김원일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