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문화로 말하다] 공연한국 전쟁 60주년 맞아 연극, 뮤지컬, 무용행사 등 잇따라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냉전의 부산물이었던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이 한국전쟁 60년을 기념하는 공연계 분위기와 맞물려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남은 자들이 치르는 생존과 현실의 전쟁은 비단 <미스 사이공>뿐만이 아닌 모든 전쟁 소재 작품들의 숙명이기에 보는 이들을 더욱 공감하게 한다. 올해는 이와 함께 민족의 비극이었던 전쟁을 다각도로 조명한 공연들이 잇따르고 있다.
망자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
18일부터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6ㆍ25전쟁과 이승만>(정진수 작/연출)은 6ㆍ25전쟁사를 통해 과거 수십 년간 이어온 한국현대사의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전쟁을 이끌었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작품이다.
민중극단 측은 "이 공연을 통해 그동안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던 이승만 대통령의 인식을 개선하고, 균형 있는 역사관을 수립하는 작은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지난 13일로 국내공연을 마친 <내 사랑 DMZ>(오태석 작/연출)는 25일부터 6ㆍ25 참전 16개국의 순회공연을 추진 중이다. DMZ의 야생동물들이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DMZ에 묻혀있는 참전 병사들을 살려내 군사작전을 펼친다는 동화를 통해 친자연과 반전의 메시지를 설파한다.
16개국에서의 공연이 의미가 있는 것은 작품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오태석 연출가는 "국군은 물론 참전 16개국 젊은 병사들의 죽음을 상기하며, 그들이 죽은 자리에 만물이 자생하고 있고 그들의 영혼과 육신이 그 자양이 되고 있다고 위로하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 자체가 DMZ에 묻혀 있는 16개국의 젊은이들에게 '은혜 갚음(報恩)'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젊은 감각으로 전쟁의 상처 보듬는 축제
사회를 향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는 작품들을 선보였던 100 페스티벌은 이번엔 전쟁과 분단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공모전을 통해 총 11개의 작품을 선정했다. 100 페스티벌의 김태훈 위원장은 "장기공연됐거나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은 제외시켰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이 초연작이다. 독특한 해석과 구성을 위주로 선별했다"고 심사기준을 설명했다.
다양한 전쟁을 다룬 참가작 중 눈에 띄는 것들은 역시 우리 현실과 닮은 작품들이다.
<윤이상 나비이마주>(홍창수 작, 이동준 연출)는 분단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이 땅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금기시됐던 음악가 윤이상의 이야기를 다룬다. 젊은 시절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만, 그는 조국으로부터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통영 앞바다와 짠내 나는 바람을 그리워하며 숨을 거두고 여전히 이국땅에 묻혀있는 그의 생애는 남과 북이라는 벽을 해체하고자 하는 하나의 염원이 된다.
이밖에 <전쟁 통의 소풍>(페르난도 아라발 원작, 임주현 연출) 역시 객관적으로 한국전쟁을 돌아보면서 전쟁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전쟁'과 '분단'을 소재로 공동제작된 세 작품이 가장 눈길을 끄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창무회의 <얼음강>과 트러스트무용단의 신작 <자메뷰-기억의 오류> 그리고 툇마루무용단의 신작 <나팔꽃>이다.
창무회의 <얼음강>은 제목에서부터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하게 다가온다. 안무가 김매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와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피난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살얼음 위를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들에 집중하며 당시를 현재와 연결시킨다.
툇마루무용단은 6월 25일의 탄생화인 나팔꽃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 노정식 안무 및 연출로 선보이는 <나팔꽃>은 한국전쟁에서 일어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비극을 젊은 세대의 감각을 담아 현대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트러스트무용단의 <자메뷰-기억의 오류>는 보다 추상적이다. 데자뷰(déjà vu, 전에 본 듯한)의 반대인 자메뷰(jamais vu, 본 적이 없는)가 키워드로 폭력과 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담겼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30~40대 안무가들이 바라보는 전쟁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된다.
하반기에는 독특하게도 군인들이 직접 참여한 뮤지컬이 개막을 기다리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지난 2009년 강타, 양동근, 재희 등 당시 연예병사들을 앞세워 제작한 뮤지컬 <마인>(MINE)에 이어 국방부가 두 번째로 제작하는 <생명의 항해>가 그것이다.
한국뮤지컬협회와 합작한 <생명의 항해>는 1950년 전쟁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작전을 배경으로, 2박 3일 동안 북한 피난민을 태워 거제도로 탈출시킨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항해를 다루고 있다.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창작뮤지컬을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작품을 구상하던 중 월드피스자유연합 안재철 대표를 만나 한국판 쉰들러리스트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실화를 콘텐츠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전쟁 기념사업의 일환인 만큼 이 작품은 생명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는 휴머니즘과 참전국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 주도의 작품이라고 해서 시종일관 경직된 모습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군복무 중인 이준기, 주지훈, 김다현 등 스타급 연를 포함한 현역 장병들이 보여주는 대규모 전투 장면과, 1만 4000명을 태운 화물선 위의 다양한 인간군상 등 다채로운 볼거리도 많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오페라는 이념을 초월한 박애주의자들의 실화라는 점을 특징으로 가진다. 지난해와 올해 무대에 올려진 두 편의 오페라는 각각 전도사 맹의순과 경찰관 차한(실존인물은 고 차일혁)을 중심에 세웠다.
지난 5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된 오페라 <카르마>(Karma-업業)는 전쟁 당시의 경찰관을 모델로 했다. 그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화엄사를 화염에서 지키고 많은 빨치산을 전향시킨 공로로 보관 문화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카르마>는 이번에 대본을 쓴 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 대표의 1993년 장편소설 <애정산맥>이 그 원작이다. 1998년 공연된 대중가극 <눈물의 여왕> 역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원작을 쓴 차길진 대표는 주인공인 차일혁 총경의 아들이기도 하다. 임준희 작곡가가 작곡한 이 오페라는 지난해 이태리에서 몇 곡을 선보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총부리를 겨누고 사랑마저 잃어야 했던 젊은이들. 죄책감으로 강물에 몸을 던지는 비극적 결말이 담겨있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이념이 아닌, 전쟁 속에서 고뇌하면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많은 이름없는 영웅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첫 막을 올렸던 <카르마>는 정식 오페라 버전으로 다시금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