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문화로 말하다] 미술전쟁 미술, 한국사회의 뼈아픈 자화상

강용석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충열탑'
전쟁이라는 사건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거나 실수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뼈아픈 자화상이다. 미술이 끊임 없이 전쟁을 되살리는 것은 그 점을 기억하고 성찰하자는 뜻이다.

한국의 전쟁을 다룬 최근의 미술들은 당시의 이데올로기 싸움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그 교훈을 현재 상황과 관련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전쟁, 무엇을 기념해야 할 것인가

사진작가 강용석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의 한국전쟁 기념비들을 찾아 나섰다. 총 50여 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단단히 무장한 군인들의 동상, 생김새부터 가차 없는 중무기들이 한반도 전체가 전쟁터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전쟁 기념비>라는 제목으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전쟁으로 무너진 삶의 터전을 일구는 데 바쳐진 현대사는 한국인들의 긍지이자 상처가 되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합심했으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분열되고, 분열을 토양 삼은 냉전체제와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숨 막히느라 민주와 인권을 잊기도 했다. 이런 전쟁 후유증은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강용석 작가의 답사는 전쟁이 한국사회의 현재의 한 뿌리임을 상기시킨다. 물론 시대착오적이고 정치적으로 수상한 호국정신을 되지피려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흔적과 교훈이 흐릿해진 세월을 직시하고 여기에 지금을 겹쳐 놓음으로써 묻는다, 전쟁을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기념해야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래서 강용석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가 대면하는 상황과 구도다. 녹슬고 바랜 포 위에 아이들이 올라가 논다. 호전적인 인상의 거대한 충렬탑 주변이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있다.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기념비들이지만 어느새, 어쩔 수 없이 일상 속에 그럭저럭 자리잡았다.

저 조망의 시선은 전쟁과 전쟁이 낳은 폭력과 분열, 치우침과 휩쓸림의 역사 전체를 돌아보는 것 같다. 기념해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라 그런 참혹을 겪고도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했던 모든 이들, 그나마 인류를 지속시킨 사랑과 평화의 정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강용석 작가의 작품들은 근심의 시선처럼도 보인다. 편리를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어불성설의 목소리들이 속속 등장하는 2010년 한국사회에 대한.

개인을 통해 다시 그려진 전쟁의 풍경

전쟁은 삶과 분리되어 이야기될 수 없다. 정치적 언설이나 군사산업 관련 정보 속 전쟁이 위험한 이유는 살과 뼈를 가진 채 숨 쉬며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대하는 작가들은 개개인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속내를 펼쳐 보인다.

진기종 작가의 'On Air'
나현 작가는 작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7명의 프랑스 군인들을 찾는 <실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군도 북한군도 아니고, 제2의 당사자였던 미국군도 아닌 프랑스군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당시의 지정학적 관계가 아닌 전쟁 그 자체를 돌아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인들을 인터뷰하고, 파리의 곳곳을 실종자들에게 은유하는 등의 일련의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미제로 남은 이들의 행방을 애도하는 의미로 물 위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붓이 닿는 길을 따라 물은 패였다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온다. 얼마나 많은 사연들에 대해서 역사가 저렇게 시치미 떼고 있을까.

2008년 말 박경태, 임흥순, 윤충로 작가가 마련했던 <귀국박스> 전도 공식적인 역사 뒤에 있던 참전 군인들의 기억을 꺼내는 시도였다. 이들이 주목했던 전쟁은 베트남전쟁이다. 국내에서 벌어지지 않았고 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치장되었기에 더욱더 추상화된 채 남아 있는 이 전쟁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이렇다.(임흥순 <도넛츠 다이어그램>) 용사들의 대다수는 고졸 이하 학력층이었고, 거의 70%가 무작위로 차출됐다. 애국심이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했던 이는 20%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에 대한 기억들은 이토록 어긋난다.

오늘날 전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전후 세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전쟁이란 소문과도 같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상은 현실이되 숱한 이해관계와 권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여전히 전쟁 이데올로기를 실감, 실천하며 사는 세대들의 모습도 이들에게는 일종의 가상 현실이다.

나현 작가의 '실종'
많은 젊은 작가들은 오늘날 전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드러내는 데 관심이 있다. 진기종 작가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9.11 테러, 이라크 바그다드 폭격 등의 미디어 스펙터클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촬영, 방송하는 작업을 통해 미디어를 거쳐 역사적 사건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풍자해 왔다.

이처럼 전쟁은 엄연했으되 전쟁의 진실은 멀고 구부러져 있다. 그 지난한 길을 현재에 되살려 끊임 없이 탐색하지 않는 이상 전쟁은 교훈으로 남을 수 없다.

이는 주명덕, 강운구, 구본창 등 10명의 사진작가가 한국전쟁 당시 주요 전적지와 민간인 통제 구역을 찾은 까닭이다. 사진심리학자인 신수진 연세대 교수가 디렉팅한 <경계에서-6.25 전쟁 60주년 사진전>은 "한국전쟁에 대하나 심리적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신수진 교수는 작품의 주요 무대인 남북의 경계, 민간인 통제 구역을 "아픔과 아름다움, 인간과 자연, 욕망과 금단, 분단과 통일, 한반도와 세계의 경계지대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들의 현재 모습에서부터 당시 사용된 무기, 전쟁통에 아들을 잃고 60년을 살아온 어머니, 분단된 지역에서 군 복무 중인 젊은이들의 모습 등이 작품이 되었다.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각자의 세대성과 개성으로 조명한 전쟁의 프레임들이 이어진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이 전시는 6월 24일부터 8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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