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도시, 대구] <딤프>개막작 <앙주> 리뷰

16세기 이후 프랑스를 좌우했던 한 사람이 있다. 정치, 종교, 문화, 예술, 요리, 패션 등 다방면에서 프랑스의 역사를 바꿔놓은 이 인물의 이름은 '카트린 드 메디치'다.

카트린 드 메디치의 이름이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은 발레 교과서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딸이었던 그는 프랑스로 출가해 앙리 2세의 왕비가 됐다. 이때 혼수로 가져갔던 것이 이탈리아의 발레와 요리다.

역사상 최초의 발레로 평가되는 '왕비의 희극 발레'는 전쟁과 내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여전히 부유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쇼였다.

그에 대한 역사의 인식은 부정적인 평이 지배적이다.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의 배후, '피투성이 검은 왕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들까지 독살하는 악녀 등 당시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카트린 왕비에 대한 평은 이중적이고 냉혹하다.

제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개막작으로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멕시코의 호러 뮤지컬 <앙주(Anjou)>는 바로 이 카트린 드 메디치라는 인물의 악한 이미지에서 출발하고 끝을 맺는다. 칼뱅과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왕권을 위협받던 16세기 프랑스 왕가에서 카탈리나(카트린) 대비의 권력을 향한 암투와 주변인물들의 비극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막이 오르면 형형한 눈빛의 시체들이 일어나 기괴한 몸짓과 함께 노래를 시작한다. 그들은 야망만을 좇다가 인간성을 잃어버릴 때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관객이 그들이 그 끔찍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순간, 그들 역시 "이 공포스러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러분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을 중심으로 구교도와 신교도의 대결 양상이 전개되는 가운데 <앙주>가 보여주는 카트린은 전형적인 악녀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둘째 아들 카를로스(샤를 9세)에게 독약을 먹이고, 셋째 아들 엔리케(앙리 3세)를 옹립한다.

신교도들을 말살하기 위해 딸 마고 공주와 신교도 아르투로의 결혼을 허락한 그는 결국 대학살을 성사시킨다. 검은 그물로 끌고 나타난 카탈리나 대비가 신교들을 직접 몰살시키는 검은 장면은 <앙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다.

음모와 암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이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조금도 처지지 않는다. 여느 비극과는 다르게 완급 조절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팝 오페라가 한 가지 이유이고, 프랑스 역사극을 멕시코배우들이 스페인어로 표현한다는 낯섦이 또 다른 이유다.

하지만 엔리케가 아르투로를 몰래 흠모했다는 동성애적 설정이나, 훗날 앙리 4세로 왕위에 오르는 아르투로(앙리 드 나바르)를 과감히 사망시키는(?) 결말은 다소 급박한 마무리로 느껴진다.

포스터 이미지와는 달리 작품의 무게감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치지만, 14세에서 21세 사이의 어린 배우들이 보여주는 과잉의 연기들은 '호러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특히 뉴욕뮤지컬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한 리즐 라(카탈리나 대비 역)의 표독스러운 연기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배우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대구=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