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의 유혹] 허구의 초상, 우리시대 자화상으로 책·전시·공연 통해 다양한 변주

강형구 '마릴린 먼로'
6월, 마릴린 먼로가 돌아왔다. 정확히는 먼로가 태어난 6월(1일)을 기해 신화속 그녀를 지상으로 초대, 추억을 떠올리거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사회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방식이다.

책과 전시, 공연 등 먼로와의 대화는 시대의 화수분처럼 뿜어나오고 그녀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가 이렇듯 시공을 넘어 끊임없이 현대인을 유혹하며 문화 아이콘으로 남은 경우는 먼로가 거의 유일하다. 동시대의 오드리 햅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등 쟁쟁한 배우가 있었지만 먼로처럼 대중적 신화로까지 부상하지는 않았다.

먼로를 시대적 아이콘으로 만든 배경은 무엇일까? 먼로는 일반 대중에게 드라마틱한 삶과 섹스 심볼 이미지로 어필하고 작가들에겐 예술적 영감을 주는 뮤즈로 다가온다. 하지만 먼로의 진짜 힘은 스스로 지닌 상징성과 메시지에 있다. 먼로가 활동한 시대와 삶의 과정에 내재된 함의 말이다.

먼로가 활약하던 1950년대는 30년대의 공황기와 40년대 전쟁을 지나 바야흐로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경제적인 붐과 소비가 미덕이 되는 대중문화(Pop art) 전성기였다. 대량 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적 구조에 TV, 잡지 등 대중미디어가 확산되고 광고가 홍수를 이루는 물신(物神) 지배의 시대였다. 이런 풍토에서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플레스리 등이 스타로 부상했다.

앤디워홀 팩토리전시회 '마릴린 먼로'
특히 앤디 워홀은 그림 소재로 먼로를 자주 모티프로 삼았다. 워홀의 가장 큰 업적은 미술사에서 대중성, 예술성, 상업성의 경계를 허문 것이다. 코카콜라, 캠벨 수프, 영화 스타를 차용한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판화로 재생산하면서 전통적 예술의 가치 기준에 어퍼컷을 날렸다.

너무나 일상화되어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을 예술로 다시 환생시킨 것이다. 워홀은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고 이용당하며 인기와 명성 뒤에 숨어 불안과 고독으로 얼룩진 먼로를 통해 소비사회의 위선과 욕망을 조롱했다.

워홀의 먼로에 대한 시선은 최근 나온 J.랜디 타라보랠리의 <마릴린먼로 THE SECRET LIFE> 전기에서도 발견된다. 먼로가 화려한 외피와 달리 세상의 환호와 내면의 고독, 당당한 자신감과 뒤돌아 웅크리는 두려움 등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생을 산 점이다.

1974년 출간된 자서전 에서 먼로는 대중들의 이중적 시선,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매스미디어의 허상을 속 깊게 짚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본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나를 멋대로 지어낸다. 그러고는 자기들의 환상이 깨지면 내 탓으로 돌린다."

먼로는 국내 작가들에 의해서도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김동유는 한 인물의 초상화를 모아 다른 인물의 초상화를 만드는 '이중그림' 연작에 먼로를 자주 소재로 삼는다. 먼로의 얼굴이 모여 마오쩌둥과 박정희 전 대통령,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그려지고, 반대로 케네디의 얼굴이 모여 먼로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196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작된 마릴린 먼로 사진
이들은 대중들에게 이미지가 중요한 연출된 삶을 살아야 했던 점에서 먼로와 닮았다. 정치 지도자들과 먼로의 중첩은 정체성의 혼란, 서로를 해체하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는 강형구의 먼로 시리즈가 먼로에 대한 고정된 미적 개념을 뒤틀어 새로운 언어를 건져내는 것이나 작년 갤러리고도에서 열린 <마릴린 먼러>전에서 도식화된 이미지를 깨는 다양한 시도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같은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이태량의 '나눌 수 없는(indivisible)' 타이틀의 전시는 먼로와 워홀을 끌어와 상업주의의 토양에 뿌리를 내린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을 표상한다.

먼로에 대한 변주는 무대에서도 이뤄진다. 지난해 런던 아폴로 극장에서 공연된 댄스 뮤지컬 <마릴린>이 먼로의 불우한 성장을 중심으로 삶의 명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오는 7월 1일부터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은 먼로의 정체성을 극단적으로 해체하는 문화산업의 폭력적 메커니즘과 관객집단이 만들어내는 신화의 허상을 고발한다. 또한 관객집단이 만들어내는 신화와 그 신화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있다.

미디어와 소비사회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Simulacra)가 리얼리티를 주도하는 세계, 즉 가상으로서의 이미지가 오히려 현실을 조정하는 현상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먼로는 그러한 이미지에 의해 대중 스타라는 아이콘으로 군림했지만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정체성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37살의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60년대 팝아트 이후 90년대 들어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면서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타인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파괴되는 먼로의 삶의 여정은 비단 그녀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허구의 초상인 마릴린 먼로는 오늘날 우리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니까.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