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의 유혹] '마릴린' 뒤에 숨겨진 '노마 진'의 인생 조명

댄스 뮤지컬 '마릴린(Marilyn, The story of the Silver Screen goddess)
오늘날 '마릴린 먼로는 살아있다'라는 말은 팝아트나 패션 소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세기 이후 팝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마돈나의 인기 뒤엔 데뷔 때부터 차용해온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가 있다.

그 외에도 미국의 레이디 가가와 한국의 이효리 등 마릴린 먼로는 팝아트와 패션을 넘어 뮤지션들과 퍼포먼스의 영역까지 두루 영향을 미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전방위에서 수십 년 동안 '활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 대한 조명은 최근에 들어서야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무대에서 펼쳐지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배우 외적인 삶의 명암을 다룰 수밖에 없어 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조명하는 장이 되고 있다.

지난해 런던 아폴로 극장에서 공연된 댄스 뮤지컬 <마릴린(Marilyn, The story of the Silver Screen goddess)>은 발레리나 자라 디킨이 먼로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안무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덴마크의 안무가 피터 샤푸스가 안무를 맡은 이 작품에선 아버지의 사랑 없이, 정신분열증 어머니로 인해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친 먼로의 어린 시절이 담겼다.

뒤를 이어 역시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된 또 한 편의 작품 <마릴린(Marilyn: Forever Blonde)>은 1인극 뮤지컬로 유명하다. 2007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죽기 직전 사진 촬영장에서 마릴린이 자신의 이야기를 17곡의 노래로 그려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
국내에서도 마릴린 먼로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7월 1일부터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연출 조최효정)은 그의 인생을 콜라주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한 연극이다.

가난했던 고아 시절, 그를 농락하는 양아버지들, 몸만을 탐닉하는 남자들을 거치며, 마릴린은 스스로 자신의 치마를 점점 올려 짧게 만든다. 남자들은 마릴린에게 '어떤' 여성이 되라고 부추긴다. 유명세와 함께 거대한 부를 쌓아가는 동안, 그의 이름도 '노마 진 모텐슨'에서 '마릴린 먼로'로 바뀌고 만다.

흔히 마릴린 먼로에게 기대되는 모든 이미지가 이 작품에선 철저하게 전복된다. 결정적으로 이 연극에는 여자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10명의 남자배우 중 3명이 마릴린 먼로 역을 맡고 다른 배우들은 그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다. 섹스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가 덥수룩한 수염과 육중한 체격의 남자 몸에 갇혀있는 모습은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되돌아보게 한다.

연극은 '마릴린 먼로'에게 있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허상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활용되고 있는 사례들에서도 나타난다. '마릴린 먼로'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의 워너비로서도 고정된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인간 노마 진이 생전 마릴린 먼로의 굴레에서 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71년 독일의 다름슈타트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자국보다 외국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글래스고, 로스앤젤레스, 스톡홀름 등에서 공연되어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았다. 작가인 게를린트 라인스하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함께 독일어권 연극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공연하고 있는 여성작가다.

1인극 '마릴린(Marylin, Forever Blonde)'
작가는 이전 작품들에서 그래왔듯이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에서도 한 여성의 삶을 결론내지 않고 그것에 대한 비판이 관객 안에서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부와 명예를 다 얻었지만 마지막까지도 "난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난 여러분이 만들었어요"라고 말하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문화 산업의 폭력적 메커니즘을 깨닫는다.

영화 <노마 진 앤 마릴린>에서의 마릴린 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마릴린 먼로지만 노마 진 모텐슨 혹은 노마 진 베이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은 많지 않다. 영화 <노마 진 앤 마릴린>(1996)은 모두가 다 아는 대중스타 마릴린의 화려한 삶 대신 무명의 모델 노마 진의 참혹한 삶에 초점을 맞춰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두 인격이 분리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노마 진과 마릴린의 분열적 삶은 더욱 불행하게 느껴진다.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노마 진. 섹스와 에로티시즘을 대표하며 시대의 아이콘이 됐지만 성공은 파멸도 함께 불러왔다. 대중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한 번도 사랑하지 못했다. 결국 마릴린 먼로라는 허상 안에서 갈라진 노마 진의 인격은 계속해서 마릴린을 괴롭힌다.

그럼에도 <노마 진 앤 마릴린>은 동정의 시선을 거부한다. 감독은 마치 모든 결과는 마릴린 먼로 그 자신의 선택 탓이었다는 듯, 불우한 성장과정과의 연관성을 배제한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독사탕을 갖기 위해 지나친 욕망을 가졌던 자의 말로는 그래서 더욱 비참하게 다가온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