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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살롱은 어떤 모습일까?

[살롱의 부활] 18세기 프랑스 문화와 지성의 산실, 예술의 대한 열정과 소통의 장 역할
개인 집은 업장으로 마담은 사장으로 음식은 공간 유지 수단으로 바뀌어
아름다운 여주인의 손길이 묻은 아늑한 공간, 철학과 유머를 겸비한 재담꾼들, 치열한 토론, 지적인 분위기, 신분을 초월해 공유되는 예술과 사상. 18세기 프랑스 문화와 지성의 산실인 살롱이 부활했다. 300년 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 땅에서.

지난 4월 삼성동에 올림푸스 홀이 개관했다. 디카업체 올림푸스가 신사옥을 지으면서 내부에 조성한 것으로, 음악뿐 아니라 전시, 퍼포먼스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방일석 올림푸스한국 대표는 200~300명이 앉을 수 있는 작지만 내실 있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외국에 보편화 된 살롱 문화를 한국에도 보급하고 싶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살롱이라는 단어가 최근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비단 방 대표의 입을 통해서만이 아니다. 영천에 있는 시안미술관은 지난해 말 20명 내외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모던살롱콘서트'를 열었다.

굳이 살롱이라는 단어를 집어 넣은 미술관 측은 "수동적이고 일회적인 감상에서 벗어나 멤버십을 가지고 교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몇 달 전 압구정동에 있는 카페 아티제에서 열린 정혜윤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에도 역시 '살롱드아티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비따의 공연 모습
모인 이들은 카페에서 준비한 따끈한 차와 달콤한 마카롱을 먹으며 작가가 쓴 새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살롱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룸살롱과 헤어살롱만 난무했던 이 나라에서 살롱이라는 단어에 다른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돈보다 재치가 중요했던 시대

국내에서는 적잖이 왜곡됐지만 프랑스에서 살롱이라는 말은 아직도 가장 빛나는 단어 중 하나다. 그 짧은 말 속에는 18세기의 우아함과 꽃처럼 아름다운 마담들,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 당대의 진지한 지성들, 수식과 반어법 없이는 못 사는 멋쟁이들, 문학, 미술, 음악은 물론이고 과학까지 포괄하는 그 시대의 모든 지식과 문화가 녹아 있다.

귀족 출신 여성들이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살롱은 처음에는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수준의 소박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살롱의 주인인 마담의 고상한 취향과 지식에 대한 열정은 살롱을 그저 그런 장소로 머무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1608년 랑부이에 부인이 파리에 최초로 살롱을 열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마담 랑부이에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저택을 개축하고 여러 개의 조명으로 실내를 환하게 밝혔다. 값비싼 장식품들과 꽃다발, 짙은 향수로 꾸민 화려하고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그녀는 10~15명 내외의 귀족, 작가, 법관, 철학자, 성직자들을 불러 함께 교제했다.

그들은 책을 읽고 함께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빼어나게 노래를 잘 하는 이가 있으면 둘러 앉아 가만히 듣기도 했다. 만남은 오락에만 그치지 않고 곧잘 깊은 대화로 이어지곤 했는데, 그들은 우아하고 정제된 화법으로 일상적 화제로 담소를 나누거나 새로운 문학 작품에 대해 토론했다. <살롱문화>의 저자 서정복 교수에 따르면 '사교장이자 동시에 지성인들이 모인 사상의 거래소'로의 기반을 닦은 셈이다.

마담 랑부이에가 돈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당시 그곳처럼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살롱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궁 주변, 왕족과 영주들의 저택 등 파리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살롱이 생겨나면서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살롱의 개수가 800개가 넘을 정도였다.

"정신이 아름다운 여성은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 친구들, 하인들 그리고 모든 세상에게는 재앙이다."라는 루소의 악담에도 불구하고 랑부이에 부인 이후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많은 '스타 마담'들이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여성 해방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마담 랑베르, 정계 진출의 야망을 가졌던 마담 탕생, 순박하고 겸허하며 예술가 후원에 적극적이었던 마담 조프랭, 새 옷 갈아입듯이 애인을 갈아 치웠지만 재치와 지성으로 충만했던 마담 데팡 등. 그녀들의 관심사는 곧 살롱의 관심사로, 그곳에 들락거리는 멤버들을 결정지었으며 살롱의 성격과 역할을 좌우했다.

살롱이 무엇보다 멋진 점은 직위나 출신 성분, 성별 등 당시의 계급을 결정 짓는 기존의 강력한 질서를 벗어났다는 데 있다. 마담과 그녀의 게스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무용한 것들로, 얼마나 재치 있고 세련되게 말하는 지와 사상의 진솔함 또는 참신함(심지어 반사회적인 내용이 있더라도), 예술에 대한 열정이었다.

나중에 점차 정치색이 짙어지면서 계몽주의 전파의 본거지, 프랑스 혁명의 진원지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살롱의 정체성은 누가 뭐라 해도 문화지향적인 사람들이 모여 순수하고 즐겁게 교류했다는 점이다.

마담, 사장이 되다

남부터미널 앞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때아닌 즉흥 음악회가 열렸다. 누군가 바이올린을 켜자 다른 한 사람이 기타를 잡았고 중년의 신사가 노래를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유명한 프로 연주자에 기타리스트는 아직 공부 중인 학생, 중년의 신사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법조계 인사였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통성명도 이루어지기 전에 아름다운 선율에 흥이 난 이들은 자연스럽게 음을 맞췄고 곧 다른 테이블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나 그 뒤를 이었다. 클래식 음악인들의 둥지가 된 레스토랑 라비따의 어느 저녁 풍경이다.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도 참여해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전문직 종사자들과 기업인들의 모임인 도산영리더스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는 권병규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최근 신임 회장이 된 후 모임 장소를 물색하느라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가격도 적당해야 했지만 무엇보다 시 낭송과 음악을 주로 즐기는 모임의 특성상 피아노가 있고 좋은 스피커에 프로젝션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편안한 장소여야 했다.

"호텔도 많이 알아 봤는데 200명 정도가 모이려면 거의 1200만원 가까이 들더군요. 그보다 가격이 낮더라도 시간 제한 때문에 편안하게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라비따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멤버들끼리의 친목은 물론이고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살롱 문화가 꽃 피기에는 척박한 조건이다. 문화에 대한 욕구는 하늘을 찌르지만 일단 공간이 부족하다. 기꺼이 자기 집 대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아들이기에 사회적 신뢰도는 땅에 떨어져 있고, 집값은 하늘 끝까지 치솟아 있다. 물론 이런 가운데에도 돈키호테처럼 홀로 외로이 시행하는 이도 있다.

부암동에 있는 김정남 씨의 집, '엘림인우'는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하우스 콘서트 장소다. 그는 이곳에서 4년째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 클래식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가 직접 연주하는 것은 아니고 전공 학생들부터 프로 연주자들까지 다양하게 무대에 오른다.

서구에서는 흔한 하우스 콘서트가 국내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리처드 용재 오닐처럼 유명한 뮤지션들이 자청해서 엘림인우 콘서트에 서기도 했다. 오직 음악에 대한 사랑과 사람들과의 공감대 때문에 모든 불편을 감수하며 꿋꿋하게 진행해 왔지만 작년부터는 콘서트 횟수를 격주에서 연 5회 정도로 대폭 줄였다. 일부 게스트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사생활이 침해를 받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살롱은 여러 가지 조건들에 의해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먼저 개인의 집은 업장이라는 형태로, 마담은 사장으로, 그리고 음식과 음료는 공간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바뀐 것. 그러나 살롱을 떠받치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부동의 공간, 부지런히 그 공간으로 모여드는 문화계 인사들, 그들 사이를 활발히 오가는 마담, 그리고 예술에 대한 충만한 열정과 소통이다.

싸구려 소통으로 멍든 사회를 치료하다

"글쓰기 이전에 말하기가 있었고 창작 이전에 대화가 있었는데 이것이 곧 살롱이었다."는 클로드 뒤롱의 말처럼 살롱의 본질은 대화다. 문화 공간을 자처하며 전시와 공연을 병행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은 많지만 그들을 살롱과 구분 짓는 것은 소통의 여부다.

끼리끼리 몰려 다니는 한국인의 특성상 자연스러운 소통이 쉽지만은 않은데 이때 필요한 것이 사장의 탈을 쓴 마담이다. 음악인들이 모이는 살롱을 염두에 두고 라비따를 연 김현신 씨는 자칭타칭 소개의 달인으로, 그녀와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머지 않아 모두 지인이 된다.

"한국인들이 사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널리 알고 지내기 보다는 자기 사람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편협함을 버리면 더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살롱 안에서 나누어지는 이야기의 내용도 그때와는 180도로 달라졌다. 프랑스 혁명을 앞두고 폭풍전야에 이루어졌던 치열한 토론 대신 지금은 정치적 색깔을 완전히 배제한 음악, 미술, 문학, 와인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진지함이 사라졌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는 살롱 문화 역시 기존의 것들에 대한 진지한 반발이다.

온라인 상에서의 무책임하고 난폭한 소통으로 병든 한국 사회를 향해, 살롱 문화는 직접 얼굴을 보고 어루만지는 소통의 가치에 대해 일깨운다. 한치의 여유 없이 성과 위주로만 판단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대한다. 더 피크의 대표 김태풍 씨는 살롱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살롱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이와 이야기들을 어떻게 보면 가볍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음악이나 미술은 지금 당장 없다고 해서 죽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예술을 통한 마음의 정화도 정치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그룹 안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교류하는 것으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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