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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 살롱 3곳을 엿보다

[살롱의 부활]
  • 더 피크
마담, 공간, 먹을 것과 마실 것, 소통과 교류. 이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한국의 살롱들을 소개한다.

평창동 언덕에서 - 더 피크 The Peak
18세기 유럽식 살롱 모습 그대로

평창동 언덕 꼭대기, 북한산을 뒤로 하고 강북이 전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더 피크는 현재 주인이 거주 중인 집을 모임 공간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실질적으로는 18세기 유럽식 살롱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주인인 김태풍씨는 1988년 이 집을 사서 지난 해 말부터 개방했다. 물론 모임은 그 전부터 계속 해왔다. 열 댓 명의 지인들과 함께 와인을 놓고 프랑스 뮤지컬 품평회를 2년 정도 했는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의 교류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그는 좀 더 폭넓으면서도 친밀한 교제를 기대하는 마음에 지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문을 열기로 마음 먹었다.

"찾아 보면 모일 장소는 많지만 집처럼 편안한 곳이 없죠. 호텔 같은 곳에서의 미팅은 아무래도 경직될 수 밖에 없어요.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업소보다는 프라이빗한 살롱을 생각했습니다."

  • 김태풍 씨와 그의 아내 클레어
멤버십제로 운영하므로 레스토랑처럼 아무 때나 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멤버로 등록되면 주인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주최하는 모임에 초대된다. 모임의 내용은 당연히 호스트인 김태풍씨의 관심사와 네트워크에 맞춰져 있다. 와인 애호가답게 지난 4월에는 프랑스산 알로 샴페인 시음회를 가졌고, 패션 한류에도 관심이 많아 5월에는 한복 디자이너 이순화씨와 함께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모든 모임에는 와인이 풍족하게 나오고 음식 역시 코스부터 뷔페까지 상황에 맞게 서브된다.

"일반적인 시음회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적극적인 참여자와 아웃사이더로 반드시 갈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재미가 없죠. 하지만 30명 안쪽으로 적게 모이면 뒤로 빠지는 사람 없이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샴페인 회사의 오너가 직접 들려주는 와인 이야기와 섬세하게 매치된 음식을 맛보는 기쁨도 있지만, 더 피크의 진짜 매력은 집처럼 꾸민 공간이 아닌 실제 집이 뿜어내는 친화력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주인 내외의 푸근한 접대에 마음을 놓다 보면 모임을 마칠 때쯤에는 내 집처럼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호스트는 자칫 어색한 침묵이 감돌거나 대화가 중심 없이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트렌디한 이슈를 선정하고 발표자를 둔다.

외교관 부친 덕에 손님 맞이에 능한 호스티스는 모인 멤버들을 살피며 한 사람도 마음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금융인 출신이지만 가수 '사월과 오월'의 보컬이기도 한 김태풍 씨는 모임 마지막에는 손님들과 자주 '가라오케 타임'을 가지며 격 없이 어울린다.

"최고만 지향하는 한국 사회에 여유를 부여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문화적 움직임은 정부 주도보다는 더 피크 같은 개인의 공간에서 일어날 때 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라비따
소규모 파티, 동창회, 방송 촬영 등을 위한 대관도 가능하다.
문의: 02-395-9600, http://blog.naver.com/atthepeak

예술의 전당 앞 작은 '예당' - 라비따 Lavita
클래식 음악가들의 참새 방앗간

남부터미널 근처 예술의 전당 맞은 편에는 또 하나의 예술의 전당이 있다. 문을 연 지 1년도 채 되기 전에 클래식 음악가들의 참새 방앗간이 된 라비따다. 영화사 '소풍'의 대표이자 라비따의 여주인 김현신씨는 18세기 살롱의 마담과 꼭 닮았다. 라비따에는 오디오, 클래식 음악, 영화, 춤, 요리를 망라하는 그녀의 다양한 취미가 집대성 돼 있다.

오디오 마니아인 김현신씨가 원래 꿈꾼 공간은 음악 살롱이었다. 음악인들이 모여 연주도 하고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그런 곳을 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아 여기에 음식을 더해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탄생시켰다. 대신 식당 한 켠에 무대를 설치해 연주할 공간을 마련했다.

무대에는 판소리부터 클래식까지 모든 소리를 소화한다고 해서 '명기'라 불리는 JBL사의 파라곤 스피커를 포함해 가치를 따지기 힘든 빈티지 오디오 3대가 있다. 듣고 싶은 CD를 가지고 오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

  • 라비따 공동대표 김현신(좌) 씨와 이명주 씨
라비따에서는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정기 연주회를 열지만 무대가 사용되는 것은 이 때뿐이 아니다. 리허설 장소가 없는 음악가들, 기업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연주가들, 아니면 그냥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싶어하는 손님 등 원하는 이에게는 누구에게나 무대를 오픈한다.

이렇게 음악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다 보니 일반인 대상의 레스토랑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 안면을 익히는 진기한 상황이 발생했다. 한 단골의 말에 따르면 "돌돌말이 문화"로 "와서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다 아는 사람이라 다 같이 앉게 돼버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나 새로운 팀이 결성되는 경우도 생겼다. 원래 듀오로 활동하던 바이올리니스트 허희정 씨와 기타리스트 배장흠 씨는 라비따에서 소프라노 권성순씨를 만나 트리오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지난 월드컵 때는 다 함께 경기를 지켜보다가 지는 바람에 한 시간 동안 슬픔을 달래기 위한 연주를 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쿵'하면 '짝'하는 맛이 있다. 음악 외에도 시낭송회, 독서 모임, 사장이 요즘 한창 흥미를 보이고 있는 라틴 댄스 공연도 열렸다.

"객석에 앉아서 공연을 보는 것과 와인 잔을 들고 보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오랜만에 문화 생활하려고 예술의 전당에 왔는데 얼른 공연만 보고 부리나케 햄버거나 먹고 가면 너무 슬프잖아요. 천천히 음식도 먹고 와인도 즐기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오리지널 앤티크 가구로 채워진 고풍스런 공간과 클래식 공연이라는 점 때문에 가격이 비쌀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의외로 음식 가격은 합리적이다 못해 저렴한 편이다. 마르게리따 피자 한 판에 1만3000원대. 사장은 콜키지도 따로 받지 않는다.

  • 이리카페
"바라는 건 여기서 훌륭한 연주자가 나와서 나중에 라비따를 회상했으면 하는 거에요. 그곳에서 했던 연주,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음악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문의: 02-522-7475, www.lavita.kr

낯 가리는 예술가들의 사랑방 – 이리카페 Yricafe
한국형 살롱의 표본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곳이 넘쳐나는 홍대에서 이리카페가 소중한 이유는 그들이 한국형 살롱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올 초 상수동으로 옮겨 새로 단장한 이리카페는 돋보기 쓴 문인의 서가처럼 고즈넉하다. 한국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공동주인이자 화가인 이주용씨는 창에 문살을 달았다. 그 속에서는 오늘의 한국을 사는 예술가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모여 들어 참으로 한국적 교류를 나눈다.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마담도 없고 화려한 언변과 우아한 예절도 없다. 오직 시간의 흐름에 의지해 서서히 말문을 트고, 술이 들어가면 좀더 쉬워지고, 같이 작업이라도 하게 되면 어느덧 어색함이 사라지는 식이다. 이리카페가 지향하는 것은 60~70년대 문인과 예술가, 룸펜들의 피난처였던 사랑방이다.

  • 이리카페 공동 운영자 김상우 씨
"그때는 누가 굳이 모으지 않아도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와서 서로 영감을 주고 받았죠. 창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런 공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리카페의 또 다른 사장 김상우씨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이자 시인이다. 그는 카페에서 매주 한 번씩 열리는 공연의 기획을 주로 담당하는데 그의 섭외는 이리카페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류의 주요 통로다. 예를 들면 소설가의 낭송회에 배경 음악을 연주할 뮤지션을 섭외해 서로 자연스레 안면을 트게 하는 것.

이런 식으로 올해 6년째에 접어드는 이리카페는 시인, 작가, 음악가, 화가들 - 소통을 원하는 젊은 창작자들의 구멍가게 앞 평상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페 곳곳에는 함께 호흡하는 예술가들과 손님들에게 전하는 주인의 메시지가 묻어 있다.

한쪽 공간을 꽉 메우고 있는 600여권의 예술관련 서적들은 '좋은 건 공유하자'는 뜻이기도 하고, '소비보다는 생산하는 공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하며, '예술적 감성에는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김상우씨의 표현에 의하면 '인문학적 마음씨'다.

"가수는 가사로 말하고 그림쟁이는 자기만의 색깔을 표현하죠. 이걸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 철학을 정립하는 일이에요. 예술적 감성에는 인문학이 기본이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소외된 장르, 인지도가 낮은 예술가들에게 이리카페는 특히 후하다. 살롱의 마담들이 학비를 대주며 신진 예술가들을 후원했다면 이들은 설 무대가 없는 신인 연극배우라든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에게 비용을 받지 않고 장소를 내준다. 한국 문화의 사각지대를 공간으로서 메우겠다는 의지로, 전문 공연장이 아니면 보기 힘든 가곡, 판소리 공연도 종종 유치해 관객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좁은 공간임에도 오페라 공연까지 했다. 맛이 유난히 진한 3000원짜리 커피 역시 할 말이 있다.

"예술가라고 해도 돈이 없으면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없어요. 이전 장소에서 부당하게 나오고 나니 문화도 좋지만 수익을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술 하는 사람들은 특히 물질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득이 있어야 다음이 있고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아요. 책임이 있는 자유가 멋있잖아요?"

문의: 02-323-7861, www.yrica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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