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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의 노랫말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중가요는 시대의 거울]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 변화 직접적으로 서술
  • 이미자
대중이 입고 먹고 듣고 말하는 것에는 한 시대의 문화와 한 사회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그 시대 변화를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에서 박현빈의 '샤방샤방'으로 건너오는 반세기 동안 우리 가요 노랫말은 어떻게 변했을까? 각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분석했다.

50~60년대 은유적 표현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많은 사람들이 '봄날은 간다'를 '봄날의 화사함과 이와 대비된 인간의 허무한 심정을 한국적 정서로 드러낸 노래'로 꼽는다. 1953년 발표된 이 노래는 한국전쟁이 가져온 이별과 그로 인한 여인의 한(恨)을 봄날 풍경과 대비시키며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밖에도 피난민의 애환을 담은 '굳세어라 금순아',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한국전쟁으로 미국 대중음악과 영어 제목을 차용한 '슈샤인 보이' 등이 1950년대에 선보였다.

  • 정수라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1964년에 발표돼 35주 연속 가요순위 1위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가사를 보면 당시 연애상이 그대로 보인다. 짝사랑에 순정을 바쳤다가 실연한 내용을 은유적 표현으로 드러낸다. 이는 또 다른 히트곡인 패티김의 '이별'에서도 마찬가지.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70~80년대 남녀상열지사 탈피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는 유신정권으로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이자 청년문화가 꽃피던 시기였다. 7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포크송은 한국전쟁에 관한 경험, 남녀상열지사 일색이던 한국 대중가요 가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 서태지와 아이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송창식 '고래사냥' 1975)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 '아침이슬' 1970)

1980년대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등 저항문화를 상징하는 상당수의 노래가 발표된다. 그러나 '서울 서울 서울', '아, 대한민국', '손에 손잡고' 등 이 시기 발표된 노래들의 대부분은 경제부흥에 따른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이 상반된 벡터의 노래들은 민주화운동, 유례없는 경제 호황, 올림픽 등 복잡다단한 80년대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1982)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나눌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정수라 '아, 대한민국' 1984)

90~2000년대 가사 일대 혁신

'단지 그것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 아무도 그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 둘 셋 let's go/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1992)

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입 속에 대중이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을 앞세우기 시작한 때다. 여기에 랩과 힙합의 등장으로 가사가 급변했다. 추임새형 후렴구가 부쩍 많아졌고 자아성찰적 고백의 가사가 주를 이룬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를 기점으로 랩 음악이 등장하고 자유분방한 X세대가 나타나면서 가사의 패턴이 급변했다"고 말한 바 있다.

'얼굴도 샤방샤방/ 몸매도 샤방샤방/ 모든 것이 샤방샤방// 얼굴을 브이라인/ 몸매는 에스라인/ 아주 그냥 죽여줘요/ 샤방샤방 샤방샤방 샤방샤방 샤방샤방/ 아주 그냥 죽여줘요'(박현빈 '샤방샤방' 2008년)

2000년대는 직설적인 노랫말이 대세다. 90년대 랩과 힙합 등 특정 장르에서 사회 비판조의 직설적 가사가 화제가 됐다면 2000년대에는 트로트, 발라드, 댄스 등 상당수 장르에서 이런 경향을 보인다. 박현빈의 '샤방샤방', 쥬얼리의 '원모어타임' 등은 이런 트렌드를 방증하는 사례다.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의 상당수는 이제 은유적인 사랑법을 대신해 직설화법으로 가득하다.

최근 노랫말의 또 다른 특징은 후크송. 지난해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와 '미인아', 티아라의 '보핍 보핍', 샤이니의 '링딩동' 등 최근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은 후크송(hook song) 일색이다. 후크송은 듣는 사람의 귀를 사로잡아 중독성을 유발하는 노래를 말하는데, 최근 국내 가요계에선 특정 가사와 멜로디를 반복하는 곡이란 의미로 쓰인다.

음악 시장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재편되면서 완결된 음반이나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휴대전화 벨소리나 연결음으로 끊어서 들으면서 대중은 이제 노래에 담긴 이야기(내러티브)를 기대하지 않게 됐다. 이 때문에 가수들이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길 후크송을 양산하는 것.

신승훈, 성시경, 김조한 등 주로 발라드 히트곡을 작사한 양재선 씨는 한 인터뷰에서 "가요계 자체가 한쪽으로 치중되어서 가사도 당연히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지나갈 것"라고 말했다.

'노래는 시보다도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을 반영한다. 시보다도 훨씬 대중적인 매개체인 노래가 시대를 재빠르게 반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스피드가 미덕인 시대에 댄스음악이 유행하고,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시대에 랩이 각광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느릿느릿 살아가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온다면 다음 세대들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면서 완상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오광수 시인이 에세이 <시인들의 18번>에서 남긴 말이다. 누군가 대중가요 가사는 왜 그리 하나 같이 유치하냐고 묻는다면 이제 대답하자. 우리 사는 인생이 본래 그러한 것이라고.

대중가요 가사는 왜?

믿기 어렵겠지만, 시인이 시집으로 1년에 버는 인세는 200만 원이 채 안 된다. 3~4년에 걸쳐 시집 한 권을 내고, 이 시집을 1만 권 팔면 대략 700만 원을 버는 데 한 해 1만 권을 파는 시인은 손에 꼽힐 정도다. 시인들에게 "작사를 해서 생활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시인 생계에도 도움이 될 게고 '오오오오빠를 사랑해, 오오'같은 유치한 가사도 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에서. 여기에는 '시와 가사의 본질은 같다'란 명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시인과 작사가들은 "시와 노래가사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시는 읊어지는 것이지만, 가사는 불리는 것이라는 점. 즉 가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사가 얹어지는 곡이다. 아무리 애절한 사랑시, 그럴듯한 잠언도 곡의 멜로디, 리듬과 맞지 않으면 가사가 될 수 없다. 시는 내러티브의 기승전결에 따라 방점을 두지만, 작사가들은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강렬한 느낌의 가사를 배치한다. 김현정의 노래 '멍'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놔'로 기억되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트로트, 발라드, 댄스까지 시대별로 유행하는 곡에 따라 가사가 달라지고 최근 후렴구가 많아지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시가 1인 예술이라면 작사는 작곡가, 가수, 프로듀서의 긴밀한 관계 아래 만들어진다. 때에 따라 작사를 하고 가사에 따라 작곡을 할 때도 있지만, 통상 곡이 나오고 그 곡에 맞춰 작사가가 가사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작사가는 노래라는 한정된 음률 체계에서 작곡가, 제작자, 가수와 대중의 입맛을 고려해야 한다.

작사가 박창선 씨는 "가사에 있어서 중요한 건 멜로디이다. 아무리 말이 멋있어도 노래를 떠나면 가사가 아니다. 노래에서 후렴구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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