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는 시대의 거울] 백설희 '봄날은 간다' 압도적 1위,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2위

백설희
시에 멜로디를 붙인 노래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듯,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운율 즉, 음악성이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어떤 가요의 가사를 좋아할까?

문예지 <시인세계>가 2004년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설문조사했다. 신달자, 이근배 등 원로시인부터 이원, 이장욱, 진은영 등 젊은 세대까지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세 편씩을 추천받아 이를 분석했다.

조사에 참여한 시인들이 1위부터 3위까지 3곡을 추천하고 이를 각각 3점, 2점, 1점으로 매겨 점수화한 것. 결과는 어떨까? 1위는 의 '봄날은 간다', 2위는 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3위는 정태춘의 '북한강에서'이다.

압도적인 1위에 오른 의 '봄날은 간다'(34점)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대구에서 발표된 곡이다. 손로원이 쓰고 박시춘이 작곡했다. 작사가 손로원은 일제 치하에서 한 줄의 가사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선'(손석봉 노래)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천양희 시인은 이 특집에 실린 글 <이 노래만 부르면 왜 목이 메일까>에서 "그 노래(봄날은 간다)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른 첫 유행가였다. (…) 오늘도 우리네 여인의 애환이 담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여인의 애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불렀던 어린 시절의 '봄날은 간다'를 그리워한다"고 밝혔다.

조용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로 시작하는 의 대표곡 '킬리만자로의 표범'(23점)은 시로 치면 장편서사시라 할 만큼 긴 노래. 서라벌예대 문창과 출신의 드라마 작가인 양인자가 노랫말을 썼고 그의 남편 김희갑 씨가 곡을 썼다. 양씨가 "짧은 노랫말로는 성이 안찬다"고 해서 랩을 포함해 당시로서는 대곡인 6분짜리 곡이 나왔다.

시인들은 왜 이 곡을 좋아할까? 이선영 시인은 이 특집에 실린 글 <고독한 이의 불타는 영혼>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자극하는 것은 고독하고 더러 장렬하기까지 한 래퍼로서의 시인의 자의식과 멀지 않다. 중간 중간에 독백 형식을 삽입한 노래의 편곡조차 그 극적인 효과를 한층 배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위부터 6위까지는 모두 의 노래다. 이 직접 가사를 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5점)가 4위, 하덕규가 쓴 '한계령'(11점)이 5위, 김민기가 쓴 '아침이슬'(9점)이 6위를 차지했다.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과/ 의 비겁할 줄 모르는 통기타/ 치사할 줄 모르는 노래/ 이 셋이 시대의 자유를 꿈꾸었다 모두와 함께'라고 썼다. 신달자 시인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에 대해 "가사가 시와 맞먹는, 그래서 누구나 들으면 마음이 끌리는 가사이고 누구나 들으면 자신의 슬픈 사랑의 주제곡처럼 들리는 노래"라고 했다.

조동진의 '가시나무'(8점)와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가 공동 7위, '그 겨울의 찻집'(7점)과 '황성옛터'가 공동 9위를 차지했다. 6점을 받아 11위를 기록한 곡은 '떠나가는 배', '목포의 눈물', '서른 즈음에'가 있다.


양희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