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아티스트 정은혜미술치료 공부하며 사람 살리고 소통시키는 '예술의 힘' 체감

커뮤니티아트 작업을 하는 작가는 많아도 정작 커뮤니티아티스트는 드물다. 정은혜 작가가 스스로 커뮤니티아티스트라고 '선언'하는 까닭은 모든 작업의 기본이 커뮤니티아트의 핵심인 관계지향성이기 때문이다.

여러 명이 서로 이어지도록 뜨개질을 하며 대화 나누는 워크숍, 아이들이 자신의 몸과 주변의 모든 물건을 동원해 마음껏 노는 창작 프로그램,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명상과 요가를 하는 치유 프로그램 등이 작가의 전작들이다.

정은혜 작가의 또다른 직함인 미술치료사는 그의 커뮤니티아트의 뿌리를 짐작하게 한다. 예술이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는 언어로 쓰이는 것이다.

작가는 미술치료를 공부하던 미국 유학 시절, 소외된 아이들이 만들기를 하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벽화를 그리면서 온순해지는 것을 보았다. 스스로도 예술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 이런 경험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아트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정은혜 작가의 작업들은 스스로 돌보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고, 관계 맺는 경험으로 자신을 들여다 보도록 격려한다. 예술이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삶의 기술임을 알게 한다. 이것이 커뮤니티아트의 '실용성'이다.

미술치료를 전공하고 커뮤니티아티스트가 됐다. 계기가 있었나.

두 가지 꿈이 있었는데,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것과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커뮤니티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두 꿈을 모두 실현하고 있다. 미술치료는 커뮤니티아트를 하기 위한 가장 좋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미술치료를 공부하며 사람을 살리고 소통시키는 예술의 힘을 봤다.

미술치료사라는 점이 작업에 어떻게 반영되나.

아무래도 참여자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작가로 커뮤니티아트에 접근할 때보다 고민할 거리가 많다. 이 작업이 참여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작업을 공개하는 것이 참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을 답답할 만큼 따져 물어야 한다. 치료사로서 지켜야할 '보살핌의 윤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자유롭지는 않지만 따라야 할 원칙이 있다는 게 좋다.

커뮤니티아트는 어떻게 접했나.

알아서 하게 되었다기보다 하고 싶었던 일이 커뮤니티아트임을 알게 됐다. 예전에 한 미술관에서 근무할 때 '희망숲'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에 부과된 환경부담금을 모아 숲을 만들고, 참여자들의 휴대전화에 점점 자라는 나무 이미지를 전송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술적 행위로 미술관과 커피 전문점, 환경 관련 단체를 잇고 참가자들의 관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10여 년 전 한 외국인 활동가가 자신의 활동이 "예술을 통해 커뮤니티를 잇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을 들었는데 바로 저거다, 싶었다.

커뮤니티아트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적은.

미국에서 미술치료사로 일하다가 2년 전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 동안 쌓였던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 작업은 참여자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창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숙제하는 것처럼 접근해올 때는 막막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무척 속상했던 적이 있다. 악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악기가 없다"고 대답하더라. 그 중 한 명이 어디선가 배운 솜씨로 '난타'를 하고 컵에 돌을 넣어 흔들자 다들 정답을 찾은 것처럼 따라 했다. 몸에서 우러나와 창작하고 예술을 하는 기쁨을 모르는 거다. 제대로 놀아본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

커뮤니티아트의 의의는 뭐라고 생각하나.

미술사적으로 봐도 최첨단의 미술 형태라고 생각한다. 흔히 미디어아트가 최첨단 미술이라고 하는데, 거기서도 중요한 건 상호작용이다. 참여자가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 것이다. 미디어아트가 작가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비교적 단순한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커뮤니티아트는 적극적 참여가 없으면 시작도 되지 않고, 감동도 없다. 참여자가 손가락 역할을 넘어서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작업은 평가 기준도 다르다. 결과가 아닌 과정,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 자체가 작품인 것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