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한 새로운 보고서]사회학·정신병리학·심리학·철학·미디어 이론 등 다면적 접근

자살을 소재로 한 영화 <4요일>의 한 장면
"여자와의 사랑 때문에 자살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랑이든 그 사랑이 우리의 비참함, 나약함, 공허함, 알몸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다. 이유 없는 자살은 없다." – 파베스

자살은 하나의 이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학, 정신병리학, 심리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이 자살에 대해 연구하며 해석하려 했던 것도 자살이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방증이다. 이들 학문은 자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자살'이라는 주제를 처음 사회학에 들여온 이는 뒤르켐이다. 그는 직접적인 자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살이 자신의 사회학적 방법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2만 6000건의 자살기록 분석을 통해 그는 '아노미(anomie)'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사회의 무규범 상태를 이르는 '아노미'는 자살이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적 변동'이 자살에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살 연구에 있어 여전히 확고부동한 '아버지'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 계승한 머튼의 이론은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간 이후 국내 자살률의 급증을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자살의 가장 일반적인 요인이 정신과적 질환이라는 사실은 1959년에 이미 보고된 바 있다. 1990년, 유사한 연구에서도 자살자의 90%가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자살자의 45~70%가 우울증 환자였다고 조사됐다. 정신병리학 입장에서는 우울증이나 약물남용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고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통해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조기 우울증 치료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자살을 소재로 한 영화 <킬 미>의 한 장면
심리학에서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따라서 그들 내면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지 않는 이상 자살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원인에 대한 설명은 정신병리학과 같은 선상에 있다. 이에 대해 연구했던 프로이트는 파괴본능을 가진 인간의 '극단적인 파괴 행위'를 자살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론은 우울성에 기초하는데, 외부로 공격성을 표출할 수 없는 우울증 환자의 특성상 그 공격성이 내부를 향하게 되면서 자살에 이른다는 해석이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자살은 '개인의 의식적, 의도적 행위'이며 그런 점에서 도덕적 행위로 정의된다. 사회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1976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오스트리아 작가 장 아메리는 <자유죽음>에서 자살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적지 않은 자살자들이 오해한 '실존'에 대해 설파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자살은 삶을 부조리 속에 몰락하게 만드는 부조리이므로 자살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이 미디어 이론이다. 미디어의 광범위한 자살보도가 '모방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란은 이전부터 있었다. 1774년,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되자, 유럽의 도시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유명한 '베르테르 효과'란 용어의 탄생 배경이다.

현대에 이루어진 자살과 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연구자료는 미디어를 통한 자살관련 뉴스의 보도가 잠재적 자살 시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지한다. 국내에서도 이은주와 안재환의 죽음 이후 이들을 모방한 자살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