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테라피] 일상 속의 힐링 테라피휴양·문화예술 결합한 페스티벌, 힐링음악, 연극치료, 푸드 아트 등 다양

"당신은 행복합니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쉽지 않다. 자살, 성범죄, 우울증 등 요즘 사회를 뒤덮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를 불행한 기분에 몰아넣는다. 월드컵 16강으로 인해 며칠간 올랐던 행복지수는 우중충한 사회 분위기와 바쁜 일상 속에서 금세 하향세로 돌아왔다.

불행한 기분이 오래 지속되는 증상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별 즐거움이나 보람 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는 현대인은 누구나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최근 번성하고 있는 요가, 명상, 스파, 마사지 등 몸과 정신을 풀어주는 사업은 이런 세태가 낳은 블루칩이다. 서점가에는 수년째 심리학 책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문화평론가들은 이런 현상이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소위 '힐링 테라피(healing therapy)'를 받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인 셈이다. 전문가가 독자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분석하는 심리치료와 책들도 그 상처까지 보듬어주기는 어렵다.

이런 '마음병'을 치유하기 위한 문화적 테라피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은 많은 돈이나 시간이 소요되는 테라피가 아니다. 기존의 심리치료나 예술치료처럼 전문가의 상황설정과 분석 앞에 주눅이 들 필요가 없는 방법들이다.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일상적인 소품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이 테라피들은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보다는 '휴식'과 '자각'을 권유한다.

방에서 나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마음병'의 전문가들은 우울하거나 불행한 기분이 들 때는 전문적인 치료보다 휴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등산이나 산책, 음악이나 영화감상을 통해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그 순간에 깊이 빠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지방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휴양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형태의 힐링 테라피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물과 바람의 도시'로 유명한 제천은 국내 최대 크기의 청풍호반을 기반으로 국제음악영화제를 6회째 개최해오고 있다. 이 영화제는 관객들에게 영화제 기간만큼은 자연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사회제도나 관습, 관계와의 거리두기를 권유하며 '치유와 성찰의 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23일부터 열리는 진천 힐링뮤직 페스티벌은 아예 힐링에 초점을 맞춘 페스티벌이다. 충북 진천은 예부터 수해(水害)와 한해(寒害)가 없고 개발의 손길도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생태도시. 힐링뮤직 페스티벌은 이런 환경을 십분 활용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음악을 들으며 '그냥 쉴 것'을 권유한다.

다른 페스티벌과 달리 이 행사는 입장료가 없다. 말 그대로 휴가를 보내듯 공연장을 찾아 진천의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가만히 공연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이선미 예술감독은 "직장인들의 휴가 시즌과 맞물려 진행되는 이 페스티벌에서 힐링뮤직을 듣거나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들을 체험해보며 진정한 휴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힐링뮤직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자연친화적이고 부드러운 선율로 이루어진 음악이 주를 이룬다. 음악이 가진 속성 중 치유적 특성이 있는 악기나 음악가들이 마음의 평안과 치유를 연주하는 것이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음악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나왕케촉은 특유의 대나무 피리를 갖고 내한해 명상 치유 음악을 들려준다. 지금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친숙해진 오카리나는 이곳에서 원래의 음색을 들려준다. '흙 피리'라는 자연친화적 태생을 갖고 있지만 이마저도 디지털화된 오늘날, 흙냄새 나는 자연의 소리는 청중을 자연으로 되돌려 보낸다.

쌀 한 톨, 물 한 방울로도 치유는 가능하다

수많은 예술의 장르만큼 예술치료의 방법론도 많아졌지만 워크숍의 형태는 일반인들에게 아직도 친숙하기 힘들다. 주관 단체의 열악한 재정은 워크숍 진행 장소를 좁은 연습실이나 눅눅한 지하공간으로 이끈다. 또 처음 보는 사람들 옆에서 전문가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얼마 전 연극치료 워크숍을 다녀온 한 참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함께 갔던 친구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냥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라는 체험담을 올렸다. 예술치료의 효과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알려지고 있는 푸드 아트 테라피는 이런 예술치료의 대안이다. 푸드 아트 테라피는 이정연 목포대 아동학과 교수가 2005년에 개발한 새로운 심리치료 방법. 음식이나 식품 재료를 매체로 오감체험을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기존의 예술치료와의 차이점은 전문가의 역할이 작다는 것이다. 푸드 아트 테라피 역시 참가자들을 이끌어주는 전문가는 있지만 다른 예술치료처럼 처음부터 상황을 설정하거나 분석을 하지 않는다. 전문가는 그저 참가자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게끔 유도하는 일을 맡는다. 이들 '촉진가'의 배려로, 참가자들은 다른 치료처럼 위축되지 않고 주도적으로 창작을 할 수 있다.

음식을 통한 치유는 사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테라피다. 음식 자체가 원래 사람의 내면을 치료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면서 참가자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자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내면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게 된다. 과정에서 효과가 나타나니 사실 전문가의 개입도 필요 없다. 푸드 아트 테라피가 '셀프 힐링'에 가까운 이유다.

'셀프 힐링'으로서 음식을 통한 치료의 장점은 또 있다. 바로 어디서든 쉽게 구해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푸드 아트 테라피는 기존의 미술치료에서 재료만 음식으로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 음식이라는 재료가 중요한 차이다. 이정연 교수는 "미술치료는 재료의 특성상 어딘가에서 구해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푸드 아트 테라피는 집에 있는 어떤 음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과 음악, 영화가 어우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곡식, 채소, 과자, 음료 등 집안에 있는 찬거리들은 그대로 예술치료의 재료가 된다. 하는 사람의 나이와 직업, 성별에 따라 음식들은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과일로 첨성대를 쌓아 설치미술을 하는가 하면, 재료에 따라 '워터 테라피'나 '알코올 테라피' 등 변주도 무궁무진하다.

이 교수는 "원래 쌀과 물, 소금이 푸드 아트 테라피의 기본적인 아이템"이라며 "쌀 한 톨도 참가자가 개인의 의미를 담아 만들면 좋은 치료도구가 된다"고 말했다.


진천 힐링뮤직 페스티벌의 컬러테라피 행사
푸드아트테라피 작품 '누룽지로 만든 세계지도' (사진제공=이정연 목포대 교수)
푸드아트테라피 작품 '내 마음의 제단' (사진제공=이정연 목포대 교수)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