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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가 아직도 출판계기대주인 까닭은?

[르포르타주] 단편적 정보보다 사건에 대한 심층적 진실 알고 싶은 욕구 높아
르포작가 발굴 육성 등 투자부족에 문단의 평가도 부재한 상황
# 문예지 <문학동네>는 지난해 겨울부터 '작가의 눈' 코너를 통해 르포를 싣고 있다. 이 코너에서 황정은, 김연수, 염승숙 소설가가 차례로 용산참사를 비롯한 사회 이슈를 문인의 눈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코너는 2004년 겨울호부터 간헐적으로 연재됐는데, 당시에는 작가들의 일상을 자유롭게 그린 산문 형식이었다. 출판사 문학동네 조연주 부장은 "지난해 겨울호부터는 컨셉트를 달리 해서 작가들에게 글을 의뢰하고 있다. 가을호에는 4대강에 관련한 르포를 청탁한 상태다"고 말했다.

# 출판사 후마니타스는 지난해 봄부터 '사회과학이 있는 문학'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박상훈 대표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르포처럼 문학작품 중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번역, 소개하거나 직접 이런 작품을 쓸 작가를 발굴하고 책을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중 아서 퀘슬러의 <한 낮의 어둠>(Arthur Koestler, Darkness at Noon)이 번역 출간될 예정이고, 추가로 3권의 르포물이 올해 안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출판사는 르포 모임도 열었다. 노동운동가, 대학졸업생,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매주 수요일 저녁 모여 르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후마니타스 편집팀 정민용 씨는 "르포는 안정된 집필, 편집 모델이 없기 때문에 초기 훈련비용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현재 필자들의 고민, 경험들이 우리 사회 보편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 그 우스꽝스러움에 대하여>, <법과 싸우는 법> 등 4~5권의 르포물이 기획, 집필 단계에 있다.

르포에 관한 관심이 시나브로 늘고 있다. 과거 1970~80년대 노동문학이 잠시 주목을 받았지만 르포는 아직 한국에서 생경한 장르다. 최근 상당수 출판사와 언론이 르포에 다시 관심을 두는 이유가 뭘까?

르포에 눈독 들이는 이유

출판사와 언론이 르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4, 5년 전부터다. 출판사 삶이보이는창은 2003년부터 매년 가을 두 달간 르포문학 교실을 운영해 왔는데, 2006년 강연장이 모자라 수강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이 르포문학상을 공모하기 시작한 것도 2007년이다.

출판사 우리교육이 르포 <길에서 만난 세상>(박영희 저)을 출간해 주목받은 것도 2006년. 박영희 씨의 또 다른 르포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는 2007년 출간돼 현재 누적판매 1만 권을 넘은 상태다. 잘 기획, 집필된 르포의 경우 독자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스테디셀러가 되는데, 이런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이 시기인 셈이다.

후마니타스 편집팀 정민용 씨는 "보통 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초판에서 재판, 1000~2000부 정도 팔리면 양호하다고 하지만, 르포는 그에 비해 반응이 좋은 편이다. 편차는 있지만 누계로 5000 부에서 1만 부 사이, 그 가운데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2만 부 가까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삶이보이는창 편집팀 엄기수 씨는 "시대적 요청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최근에 단편적인 정보보다 당면 사건에 대해 심층적인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더 높아진 것 같다. 몇 년간 지상파 방송에서 기획 다큐멘터리가 인기를 모으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오마이뉴스도 500만 원 상금의 르포공모전을 열고 있다. 김미선 오마이뉴스 편집부장은 "르포공모는 잠재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시민기자들로부터 기성언론인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슈에 대해, 기성언론이 시도하지 않았던 형식의 글을 뽑아내자는 데 의미가 있다.

공모전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그래야 새로운 스타,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한기 출판교육팀 국장은 "수상작은 인터넷 메인 화면에 연재형식으로 소개하고, 사전 검토와 수상자와 협의를 거친 후 오마이북(오마이뉴스 출판 브랜드)에서 단행본 출판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르포에 주목하는 출판, 언론은 늘어났지만 정작 서점에 르포 코너는 없다. 논픽션의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정의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문예지 <문학동네>에 실린 르포와 격월간지 <녹색평론>, <삶이보이는창>에 실린 르포 사이에는 영겁의 간극이 있다.

  • 조지 오웰
출판사 삶이보이는창의 엄기수 씨는 "매년 르포문학 교실 첫 시간에 강사들이 르포 정의를 설명하지만, 결론은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을 르포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르포는 아직 도서코드 분류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도서 선정과정에서 르포는 에세이, 사회과학, 문학 분류 코드를 찾지 못해 종종 '탈락'하고 만다. 한국에서는 무엇을 르포라고 하는 걸까?

문학인가? 저널인가?

'보고기사(報告記事) 또는 기록문학.'

인터넷 백과사전에 뜬 르포르타주(reportage)에 관한 정의다. 르포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지만, 단순 기록이 아니라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비허구문학으로 불린다. 국내에서 심층취재, 탐사기사로 알려진 르포는 '사실의 재현'이란 측면에서 문학의 한 장르로 논의되기도 한다.

혹자는 '기자가 쓴 르포'(보고기사)와 '소설가가 쓴 르포'(기록문학)가 독자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 소설가 조지 오웰과 프랑스 작가 장 주네 등 순수문학 작가들 역시 상당수의 르포를 남겼다. 국내에서는 황석영과 조세희 등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이 80~90년대 르포를 쓰기도 했다.

  • 존 리드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외국의 경우 르포 양식에 대해 한국보다 평가가 높고 문인보다 저널리스트나 르포 전문 라이터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기록문학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요한 르포는 '역사적 순간'에 나온다.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 Ten Days that Shook the World>(1919),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Red Star over China>(1938),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Hamage to Catalinia>(1938)를 3대 르포 정수로 꼽는데 각각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스페인 내전에 관한 일련의 사건에 작가들이 참여해 기록, 분석한 책들이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북한 방문기> 역시 작가가 광주민주화운동과 북한을 직접 발로 뛰어 쓴 기록이다. 참고로 존 리드와 에드가 스노는 모두 미국 출신의 저널리스트이고, 주지하다시피 조지 오웰과 황석영은 소설가, 즉 문인이다.

기자가 쓰는 저널 형식의 르포든, 작가가 쓰는 문학 형식의 르포든 공통점은 있다. 이명원 평론가는 "특정한 사건 현장에 작가들이 뛰어들어 쓰는 논픽션인 만큼 취재, 자료조사, 가치판단, 문학적 형상화를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평계가 보는 '작품성 있는' 르포의 기준이다.

르포가 문학이라면 문학평론가들의 평론이 있어야 할 테지만, 기자는 이에 관한 제대로 된 평론을 본 기억이 없다. "왜 르포는 비평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명원 평론가가 대답했다.

  • 에드가 스노
"한국에는 대표작가가 없습니다." 관심은 높지만, 정작 읽을 만한 '거리'는 없는 아이러니. 르포가 몇 년째 출판 기대주로 머문 이유다.

딱 1천만 원만 투자해라

"사건에 대한 생생한 재현이나 폭넓은 맥락에서 사건을 의미화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현재 한국에서 나오는 르포는 우선 분량이 원고지 100매에서 200매 내외로 협소합니다. 사건이나 역사적 측면에 처한 사람들의 주관적 체험을 객관화하고 사건 이면의 다채로운 시각을 재가공해서 역사적 판단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르포의 역할인데, 그렇게 되려면 장편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장편 르포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이명원 평론가는 국내 르포 한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마디로 일개 사건을 총체적 맥락으로 연결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고로 비평계가 주목할 만한 걸출한 작품과 작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단편 사건에 매몰돼 넓은 영역을 보지 못하고 사실 보고에 멈추어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내 발표된 르포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사후적으로 쓴 작품이 많다. 지난해 용산참사를 주제로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쓴 <여기 사람이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책은 용산참사 3 달 만에 나왔다. 기획과 기민성에서 출판계 호평을 받았고 1만 권 이상 팔리는 등 시장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현재 국내 르포가 구술취재 등 사건 당사자들의 육성을 담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작가가 직접 사건 현장에 뛰어드는 경험은 부족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물론 참사를 예견할 수 없지만, 촛불시위와 천안함 사태 등 일련의 사회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르포 작가나 작품은 전무하다.

앞서 소개한 <세계를 뒤흔든 10일>, <카탈로니아 찬가>, <중국의 붉은 별>등은 모두 저자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사건을 기록한 작품들이다.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쓴 존 리드는 작가 자신이 미국 사민당 당원으로 러시아 혁명을 직감하고 르포를 쓰기 위해 러시아로 들어갔다.

때문에 르포를 기획하거나 출간을 준비 중인 출판사 편집인들은 하나 같이 "작가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박영희, 오도엽 등 몇몇 르포전문 작가들에게는 청탁이 줄을 잇는다. 삶이보이는창 엄기수 씨는 "7년간 르포문학 교실을 운영했지만, 수료 후 계속 르포작가로 활동하는 분은 많지 않다. 현장취재가 필요한 장르 특성상 다른 책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고, 확보된 지면도 불안정하다. 작가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때 금전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르포전문 작가가 독립적으로 활동하기에 매체와 지면이 제약돼 있고, 르포 작가를 발굴, 육성할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매체가 극히 드문데다 문단의 평가도 부재한 상황이다. 한 마디로 투자가 부족하다.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르포는 몇 년째 기대주에 머물고 있다.

"한국만큼 중요한 사건과 문제가 많은 나라에서 르포 하나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르포에 대한 비평계의 지적이다. 그러나 대스타가 없다는 말은 아직 성장 가능성이 많은 분야라는 반증이다. 몇몇 문예지와 인문사회 잡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출판 기획 모임, 강연회가 꾸준히 늘고 있다. 광우병, 촛불시위, 용산참사와 천안함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국내 상황은 르포가 성장할 더 할 나위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 출판계와 언론이 르포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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