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아시아 리얼리즘>

판깨안, 베트남, 1972년 하노이 크리스마스 폭격, 1985
리얼리즘은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미학적 태도다. 리얼리즘의 프리즘으로 아시아 미술사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7월26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 마련되는 <아시아 리얼리즘> 전이다.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 등 10개국의 106점 회화 작품은 각 사회의 이슈와 아시아 공통의 역사를 동시에 담아낸다.

원근법으로 대표되는 서구 리얼리즘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대부분 식민지 상태였던 아시아에 일종의 근대 문물로써 수용되었다. 당시 회화에는 문화적 충격과 새로운 문물에 대한 매혹이 반영되어 있다.

이 새로운 시각은 예술가들이 아시아의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 의식을 찾는 도구가 되었고 미술의 주체도 주제도 되지 못했던 민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917년 러시아 혁명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런 경향은 강화되었다. 영웅화된 노동자의 이미지가 대거 등장했다.

아시아의 리얼리즘 회화가 맥을 이어온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전쟁이었다. 제국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냉전의 대리전장으로 무수한 비극을 겪는 와중에 리얼리즘 회화는 전쟁을 기록했다.

다카하시 유이치, 일본, 오이란(花魁), 1872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베트남 작가 판께안의 '하노이의 크리스마스 폭격'이 한 예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이 하노이를 11일 동안 공격한 일을 기억한다. 작가는 베트남 전통 공예 기법인 옻칠을 도입해 역사를 서술하는 자주성을 강조한다.

아시아가 식민지 상황에서 벗어난 20세기 후반 이후 리얼리즘의 화두는 보다 확장된다. 식민지 경험이 남긴 상흔을 돌아보는 동시에 제도화된 추상미술에 대한 대안으로 활발히 재구성되었다. 한국,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새로운 리얼리즘 운동이 일어났다.

이번에 전시되는 아시아 리얼리즘 회화는 곧 예술가들이 아시아의 지난한 100년 역사 속에서 고뇌하고 분투한 증거이기도 하다. <아시아 리얼리즘> 전은 10월10일까지 열린다. 02-2188-6000


페르난도 아모르솔로, 필리핀, 모내기, 1924
이인성, 한국, 해당화, 1944
추아미아티, 싱가포르, 말레이 대서사시, 1955
이반 사기토, 인도네시아, 나는 누구인가!, 1988
쉬베이홍, 중국, 우공이산(愚公移山), 194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