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의 재정의] '착한 태도'로 살아가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 찾는 일

# 간단한 테스트 하나. 다음 항목 중 당신은 몇 개나 해당될까요.

-가족이나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그들을 실망시킬 때,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친구들이 나를 챙기는 것보다 내가 더 많이 그들을 챙긴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경우에도 일에 몰두한다.
-상사나 동료가 놓친 일들을 도왔지만 그로 인해 칭찬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나는 늘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의견이 다를 때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침묵한다.
-가족과 친구들의 카운슬러가 되어주지만, 정작 나의 힘든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다.
-결국 모든 문제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와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 중


지금도 본심은 그게 아닌데, 순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예!'라고 대답하고 있지는 않은지? 위의 항목은 모두 착한 사람의 기질을 나열한 것이다. 해당사항이 많을수록 당신의 몸과 마음은 자신의 착한 태도 탓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착한 태도는 루이비통, 에르메스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규율을 따르기 위해 부르카로 꽁꽁 싸매야 하는 이슬람 여성들의 갑갑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 신드롬은 어쩌면 이에 대한 반동일 수 있다.

착한 태도는 주변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무방비 상태에 놓아두지만, 자신의 내면 역시 갉아먹는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외적으로 착한 태도를 유지해갈수록 심적 공허함은 커져만 간다. 착한 사람이 쉽게 우울증에 빠져드는 이유다.

심지어 이것은 몸에 지방질을 빠르게 채워가기도 한다. 최근 착한 여자와 비만의 상관관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의 등장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30년 경력의 미국의 심리치료사 캐런 R. 쾨닝은 주위 사람에겐 시종일관 따뜻하게 배려하면서 스스로에겐 음식으로만 보상하는 착한 여자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들이 날씬한 몸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식이요법이 아니라 성격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처방이다.

그녀의 저서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에서 '너무 착한' 여자들은 남들 비위를 맞추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일 중독자로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홀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지친 자신을 다독여줄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는다. 그 결핍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달디단 초콜릿이나 폭신한 머핀처럼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조용한 음식'밖에 없다는 것이다.

착한 태도에서 비롯된 심리적 억압 기제는 과거엔 주로 여자에 한정됐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착한 태도는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에게 주입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나 착한 딸 콤플렉스 심리학 서적이 많았던 이유도 이런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점차 남녀 간의 교육방식이나 사회참여 영역이 크게 다르지 않은 현대에서는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여자들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현대사회에서 착한 사람은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될까?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이유를 현대사회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풍토 탓에 '희생'의 가치가 폄하된다는 데에서 찾았다.

가족의 단위가 작아지고, 사람 간의 교류기간이 짧아지면서 착한 사람의 희생이 기억되고 보상받을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 같은 희생의 여운을 곱씹어볼 시간도 물론 줄었다. 또한 현대사회의 대부분 인간관계가 '파워-지향적(power oriented)'으로 변하면서 사람관계도 '누가 더 우세한가', '누가 이기고 지는가'와 같은 파워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도 큰 몫을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손해 보거나 희생한다는 것은 지는 것과 동일시된다. 여기에 빚진 느낌이 들게 하는 희생이란 행위 자체도 현대인들에겐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덕목이 되었다는 것이 김 전문의의 설명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자는 착한 것이 곧 독한 것이라며 '착함'을 재정의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한 테크닉을 전수하기도 한다. 또 다른 심리학 전문가는 아예 '착한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인생이 달라진다'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 '착하다'라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긍정의 힘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흔쾌히 자신의 재산 일부를 기부하는 것,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에게 골수를 기증하는 것, 배움에 목마른 이들에게 무료강습을 하는 등의 착한 행실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훈훈한 감동을 주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분명한 것은 착한 심성과 태도의 일치가 아니라, 마음과는 따로 움직이는 착한 태도에서 '불편한 인생'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아는 착한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결국 그는 그 집단의 중심에 서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돌보고 남들보다 더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능력이 있고 여유가 있다는 의미거든요. 착한 사람의 제 의미를 찾아야겠지요."(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이는 착한 사람이란 정의에 대한 진정한 의미찾기이기도 하고, 착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괴로운 현대인들이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던 불편하고 어색한 '가면'을 거두고 진정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