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나르시시즘] 디지털·인터넷 결합으로 나르시시즘 극대화·개방화자기애 강한 셀프홀릭 세대 신세대 주류로, 소비가치 중시하는 에고노미 시대 진행

엣지녀, 건어물녀, 철벽녀, 초식남. 최근 신세대의 특성을 드러내는 신조어는 모두 자기애의 범주에 든 인물형들이다. 이상형이 아니면 철벽수비하는 철벽녀나 연애나 결혼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초식남이나 모두 자기애에서 정체성을 찾고 있다.

인간의 자기애는 본능적인 것이지만, "난 소중하니까요"를 대놓고 말하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간의 일이다. 이제 겸양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나르시스트들이 하나둘 커밍아웃을 하며 대중문화를 바꾸고 있다.

자기 피알(PR)의 시대, 나르시시즘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Style 1. 디지털 나르시시즘

김용석 영산대 교수는 칼럼 '디지털 나르시시즘'을 통해 이런 현상을 분석했다. 최근 휴대전화 광고 메시지에 주목하도록 고안된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애니메이션 등은 궁극적으로 나르시시즘의 극대화를 겨냥해 만들어 진다는 것.

지드래곤
김 교수는 "상호 소통기기로 휴대전화를 사이에 두고 나와 너를 함께 등장시킨 광고에서도 결국 너를 통해 부각되는 것은 나이다"고 말한다. 개인이 홀로 단말기를 조작 사용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나며 화면의 기능과 위상이 중요해졌다.

공공장소에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사람보다 자기 앞에 놓고 액정화면을 보며 손가락으로 작동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폰 카메라로 타인을 찍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찍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은 디지털 나르시시즘의 정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 교수는 "단말기 광고는 이런 기능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이 기능들이 결국 자기애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Style 2. 인터넷 나르시시즘

이런 나르시시즘이 독특하게 발현되는 공간이 인터넷이다. 이동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는 칼럼 '인터넷 나르시시즘'에서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자기 얼굴을 비추듯, 네티즌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린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블로그에 올리는 주부들,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스타일을 찍어 미니홈피에 올리는 셀카족들, 취미가 유사한 네티즌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정보를 주며 즐거워하는 네티즌들. 이들이 우리 시대 인터넷 나르시시즘의 주인공이라는 것.

이들과 기존 나르시스트들의 차이점은 소통과 공유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자기만족, 자기과시를 위해 만든 콘텐츠라도 타인의 관심을 끄는 '댓글'이 없다면 이 나르시시즘은 오래 가지 못한다.

포미닛
인터넷에서 자기과시는 하나의 게임과 같다. 디지털 카메라로 떡볶이를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 누군가가 더 맛있어 보이는 치즈 떡볶이로 응수하고 다시 나는 최고로 맛있어 보이는 카레 떡볶이로 응수하는 식이다. 이동연 교수는 "인터넷 나르시시즘은 배타적 폐쇄적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개방적, 다방향적 나르시시즘이다"고 설명했다.

Style 3. 셀프홀릭 세대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아. 아직 쓸 만한 걸. 죽지 않았어.' (G-드래곤,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진 않아, 나는 예쁘니까.'(씨야 '여성시대')
'너보다 잘록한 허리 쫙 빠진 매끈한 다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난 항상 핫 이슈'( '핫이슈')
'스키니한 바디라인과 눈부신 내 미소, pretty sweety sexy, 모두 바라보는 난 스타'(레인보우 '가십걸')
'잘빠진 다리와 외모 너는 내게 반하지, 내 앞에선 네 모든 게 무너지고 말 걸'(애프터스쿨 'AH')

최근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 가사는 하나같이 자기 자랑하기에 바쁘다. 아이돌 그룹을 관통하는 주제는 '당당하고 자기애가 강한 세대'의 자신감이다. 그들의 히트곡은 모두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 있게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신세대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자기애가 강한 이 세대를 일컬어 '셀프-홀릭(self-holic·자신에게 중독됐다는 의미)'이라 일컬으며 지난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렌드 코드 중 하나로 선정했다.

After School
김 교수는 "이들은 개인으로 자라난 첫 세대다. 형제가 적어 어릴 때부터 방을 혼자 썼고, 성인이 돼서도 하숙이나 룸메이트보다는 원룸을 선호한다. 또한 이들은 소비문화의 세례를 받은 행운아들이다. MP3플레이어·핸드폰·PMP 등 개인화된 기기로 무장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며 혼자서 논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고노미의 출현

'셀프홀릭' 세대의 출현은 범세계적인 현상인 듯하다. 진 트웬지 샌디에이고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책 <나는 왜 나를 사랑하는가>에서 '나르시시즘 전염병'을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나르시시즘적 성격 장애로 판명하기엔 낮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나르시시즘을 일컫는 말인데, 현대사회에서 이 현상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요컨대 지독한 자기애가 민폐를 끼칠 수준은 아니지만, 자신만은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젊은 나르시스트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

일례로 과거 미국 대학생들은 개인 사정으로 시험을 보지 못했을 경우 재시험 기회를 주면 고마워했지만, 요즘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심지어 '선생님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나는 셀프홀릭'이라고 혼자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진 트웬지 교수는 "나라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세계적 증후군"이라고 설명한다.

시대 변화를 가장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산업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불황으로 많은 분야가 침체를 겪었지만, 셀프홀릭족을 겨냥한 개성 강한 상품은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최악의 구직난, 경제 불황 등 팍팍한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세대들은 자기애를 자극할 위안 기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로 구성된 편집매장
김난도 교수는 "강한 개성과 자기애로 호된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는 나르시스트 소비자의 가치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대한민국은 '에고노미'(egonomy·개인을 위한 경제라는 의미) 시대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중장년층이 주로 타인지향적 관점에서 명품을 소비한다면, 이들 셀프홀릭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명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이 밖에도 큼직한 프린트, 커다란 액세서리, 글래디에이터 슈즈, 아프리카룩 등 최근 화려한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웬만한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알지 못하는 독특한 브랜드를 찾는 것이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죠셉 알투자라, 프라발 구룽, 알렉산더 왕, 마티 마르질, 카세트 플레야, 다미르 도마, 헨릭 빕스코브 등 기성세대들이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개되고, 폭발적인 반응을 모으는 것도 이런 현상의 하나로 풀이된다.

"386세대 이상은 경쟁에서 뒤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소비의 큰 동인이었습니다. 소비형태도 열풍, 유행으로 드러나는데 반해서 20~30대는 소비의 준거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성향이 강합니다. 트렌드가 점점 세분화하고 카운터트렌드라고 해서 오히려 반대되는 트렌드도 나타납니다."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 자신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정신분석학적 용어'

나르시시즘을 인간관계의 적으로 생각하던 시대에서 문화와 산업의 동력으로 파악하는 시대로 넘어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조히즘, 경쟁, 냉소적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즘의 어원이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 나르키소스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기애를 안고 사는 존재임을 뜻한다. 즉, 인간의 나르시시즘은 시대가 조장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잠재되어 있는 것이며 '어떻게 발현되느냐' 형식의 차이를 가질 뿐이다.

정신분석학 박사 맹정현 씨는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은 '마조히즘적 나르시시즘, 경쟁적 나르시시즘, 냉소적 나르시시즘'을 통해 우리사회 세대별 나르시시즘을 분석했다.

전쟁을 겪었거나 그 황폐함에서 멀지 않은 장년층의 경우 복수의 형제들 사이에서 모든 걸 나눠야 했던 유년기를 보냈고, 부모 세대의 결손에 스스로 부모 자리에서 가족을 돌보아야 했던 세대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타자에서 찾으며 자신이 봉사하는 대상에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마조히즘적 나르시시즘'의 특징을 보인다.

한편 386세대에서 나타나는 것은 '경쟁적 나르시시즘'이다. 이들은 장년층이 매달렸던 가부장제, 권위주의 등 수직적 위계질서를 평준화하는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수직적 질서의 붕괴는 모든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줌과 동시에 치열한 경쟁을 야기했다. 권위주의의 청산은 경쟁사회 내몰림과 분리될 수 없다.

지금의 10~20대들은 '스펙'(specification)이란 명목으로 스스로를 철저히 대상화하면서도 기업이나 국가 등 자신이 봉사하는 타자의 일관성을 믿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기업과 조국은 대의(大義) 없는 냉소적 대상일 뿐이다. '나는 타자를 위한 대상입니다'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했던 구세대의 마조히즘적 나르시시즘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맹정현 씨는 "하나의 세대는 자신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구축하고 그리하여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한 세대에서 두드러진 어떤 유형의 나르시시즘은 그 자체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온 어떤 토양, 전세대의 나르시시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