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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잉, 춤바람 다시 불어라

[비보잉, 무한질주] 뜨겁고 순수한 젊음의 표상 '병역 기피' 기획사 간 내분 등 얼룩
'비사발' 성공 영광 재현 위해 광고, 공연, 영화 통해 바람몰이
헤드폰을 끼고 걸어가던 청년이 때마침 흘러나온 클래식 음악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TV 광고의 한 장면이다. 이 광고엔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청년' 외에는 별다른 콘셉트가 없다. 하지만 광고는 이 설정만으로도 제품과 딱 맞는 젊음과 흥겨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제품과 연관성이 없어도 비보이들은 광고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예전의 한 아파트 브랜드는 아파트에 대한 언급 없이 가야금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비보이만으로 광고 한 편을 만들었다. 가면을 쓴 비보이들이 춤을 추다 햄버거를 먹으며 끝나버리는 햄버거 광고도 있었다.

광고 외에도 다양한 공연, 영화에서도 비보이들의 활약은 여전하다. 비보이 문화는 왜 이토록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을까. 언론에서 비춰지는 비보이들의 모습이 늘 그대로인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한류 이후의 비보잉이 '아직도' 대중문화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류에서 하류로, 추락한 피터팬들

지금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춤에 목숨을 건 열혈남아들의 도전기는 한때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 무대를 지배했다. 고난도의 기술을 단련하기 위한 그들의 땀과 눈물은 대중문화의 어떤 분야에서도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비보이들은 '저항'과 '비주류', '젊음', '열정' 등의 수사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집약하면 이들은 기성사회에 물들지 않은 뜨겁고 순수한 젊음의 표상, 현대의 피터팬이었다.

  • 영화 '플래닛 비보이'
하지만 지금 인터넷 뉴스 검색창에 뜨는 '비보이'의 연관검색어는 '병역 기피' 혹은 '병역 비리'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얼마 전, 한때 한류를 이끌었던 유명 비보이들이 정신질환을 연기해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가족들마저 철저히 속이는 치밀한 연기에 그들의 우상으로 삼았던 젊은이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순수한 열정의 상징이 왜 이렇게 변질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이들이 '몸의 예술가'라는 점에 있다. 신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영역을 가장 거칠게 활용하는 예술인 만큼, 비보잉을 할 수 있는 나이의 한계는 짧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은 몸이 곧 재산인 다른 예술가들이나 연예인들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그 활동 기간 동안이나 은퇴 이후의 삶에 있어서 비보이들은 사회적, 경제적 대우가 훨씬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최대의 힘을 낼 수 있는 20대라는 시간이 더욱 절박하고 소중하다.

물론 이런 이유로 병역 기피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한 1세대 비보이는 "어쨌든 이 길을 선택한 것도 자신의 몫이고, 어떤 형태로든 병역을 마치는 비보이들도 많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그는 다만 비보이의 사회문화적 기여를 볼 때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비보이 붐은 어떻게 꺼져갔나

'비보이 한류'의 소멸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비보이의 실력은 국제 비보이 대회에서의 수상 소식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세계 정상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실력을 바탕으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홍대 앞을 새로운 외국인 관광 코스로 만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마리오네트>는 해외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한국 비보이의 우수성을 알렸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하나의 작품을 둘러싸고 저작권 침해와 비슷한 브랜드의 파생 등 제한된 파이를 둘러싸고 연달아 잡음이 불거졌다. 비보잉 내부의 문제도 있다. 일부 비보잉 전문가들은 한국 비보잉의 특징에 대해 신체적 조건이나 기술 면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창의적인 표현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해외에서의 평가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한류'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두 작품을 제외하면 한국산 비보이 작품이라고 내세울 만한 작품이 아직 없다. 1세대 비보이들은 "기존의 히트작에만 매진하다 보니 새로운 작품을 짜는 노력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30대에 접어든 한 비보이는 "요새 어린 비보이들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주위 환경에 휩쓸려 끌려가기만 하면 비보이로서의 생명도 짧아진다. 폭넓게 시야를 확보하고 다른 장르와 교류하려는 시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2000년대 이후 이공계 인력이 벤처 붐에 고무돼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경영 수완 부족으로 줄도산을 했듯이, 기술력만으로 시장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비보이들도 공연 환경에 대한 식견과 창의성을 키워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비보이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한편 거품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비보이들은 착실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왔다. 지난해 개봉된 두 편의 비보이 영화는 비보이들의 삶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005년 독일에서 펼쳐진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를 소재로 만든 <플래닛 비보이>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비보이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그려냈다. '갬블러즈'와 '라스트 포 원' 등 두 한국 비보이팀이 세계 각국의 비보이 크루들과 펼치는 배틀은 국적을 넘는 보편의 감동을 선사한다. 바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춤과 함께 살아가는 비보이들의 존재 이유가 그것이다.

<올웨이스 비보이>는 이상한 비보이 영화였다. 비보이와 발레리나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떠오르지만, 이 영화는 둘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며 통일 문제까지 건드린다. 맥시멈 크루의 멤버들이 출연해 연기까지 해낸 이 영화는 철학적인 고민보다는 스폰서를 갈구하는 등 실제 비보이들의 삶도 담아내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현재 춤영화의 첨단에도 비보이는 빠지지 않는다. 특히 3D 기술과 접목한 최근의 영화들은 비보잉이야말로 몸의 역동성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매체을 입증하고 있다. 무대에서 발레리나와의 미팅에 성공했던 비보이들은 다음 상대로 다양한 아이템들을 선택해 공연계를 서서히 고조시키고 있다.

순수예술이 '찾아가는 공연', '해설이 있는 공연' 등으로 대중과 가까워진 동안, 비보이는 가깝고도 먼 존재가 되어버렸다. 잠시 주춤했던 이들은 과연 또 한번 새로운 춤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길거리에서도 끊임없이 긍정의 메시지를 날렸던 비보이들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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