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면역력> 전

박주욱, violet air, 2010
이 시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세계가 얼마나 많은, 뿌리 깊고 거대한 환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폭로한다.

고도화된 테크놀로지가 점점 더 정교한 가상현실을 제공하고, 사회 영역들이 각각의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개발해 그것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전문화되어 온 사이 현실이란 살과 뼈에서 먼 어딘가에서 자가생식하게된 것은 아닌지, 내내 컴퓨터를 붙들고 일하던 혹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뉴스에 신경이 곤두섰던 우리는 의심한다.

영화만 예로 들어도, 현실이 실은 꿈임을 설파한 <매트릭스>에서부터 꿈들을 중첩함으로써 현실과 꿈의 관계를 더욱 배배 꼰 최근의 <인셉션>까지 우리의 의심을 구체화한 이야기들은 환영의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환영적 경험으로써 관객들을 매혹한다.

환영의 작동이 낳는 감각의 과부하 속에서 의식은 몸으로부터 분리되고 중요한 가치는 호도되며, 합의가 필요한 일들은 제각각의 말들로 분열되기 쉽다. 이런 판타스마고리아 혹은 바벨탑의 상황에 힘 입어 위세를 떨치는 것은 종종 돈과 유행을 비롯한 사려 없는 단순 명쾌한 자극들이다.

<면역력> 전은 이름 그대로, 이런 환영의 세계를 인식하고 자아를 지키는 공정의 작업들이다. 현실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해 자신의 손으로 뒤바꾸어 본다. 만들어진 상식에 대한 저항이다.

강유진, Alhambra, 2009
박주욱은 빛과 어둠, 색을 반전시키며 강유진은 원근법과 서사적 구성을 부수어 재조립한다. 이이립은 전통적 기법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이샛별의 미스터리는 현실 이미지의 콜라주다.

이는 단지 세계의 다양한 층들을 수평적으로 잇는 놀이가 아니며, 그 사이에 작가 자신의 의식을 위치시키는 주체적 노력이기도 하다. 구성연은 사탕으로 꽃을 만들고, 그것을 굳이 카메라로 재현한다. 그럼으로써 저 환영을 거리 두어 지켜 본다. 황선태는 유리라는 단단하고도 깨지기 쉬운 재료로 경전을 만든다.

우리가 각자 믿고 기대어 사는 무수한 현실들, 돈의 가치와 유행의 미학, 추상적이어서 종종 감상적인 이데올로그들이 사실은 저 모양이라고 각성시킨다.

환영이 점령한 시대에 처한 젊은 미술 작가들이 쓴 흥미진진한 처세술인 <면역력> 전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자하미술관에서 31일까지 열린다. 02-395-3222


한진수, Blossom red, 2008
황선태, 박제된 글자들-bible,2007
구성연, ht01, 2009
이이립, Evening Call, 2009
이샛별, 가짜왕lord of misrule, 201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