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면역력> 전
고도화된 테크놀로지가 점점 더 정교한 가상현실을 제공하고, 사회 영역들이 각각의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개발해 그것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전문화되어 온 사이 현실이란 살과 뼈에서 먼 어딘가에서 자가생식하게된 것은 아닌지, 내내 컴퓨터를 붙들고 일하던 혹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뉴스에 신경이 곤두섰던 우리는 의심한다.
영화만 예로 들어도, 현실이 실은 꿈임을 설파한 <매트릭스>에서부터 꿈들을 중첩함으로써 현실과 꿈의 관계를 더욱 배배 꼰 최근의 <인셉션>까지 우리의 의심을 구체화한 이야기들은 환영의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환영적 경험으로써 관객들을 매혹한다.
환영의 작동이 낳는 감각의 과부하 속에서 의식은 몸으로부터 분리되고 중요한 가치는 호도되며, 합의가 필요한 일들은 제각각의 말들로 분열되기 쉽다. 이런 판타스마고리아 혹은 바벨탑의 상황에 힘 입어 위세를 떨치는 것은 종종 돈과 유행을 비롯한 사려 없는 단순 명쾌한 자극들이다.
<면역력> 전은 이름 그대로, 이런 환영의 세계를 인식하고 자아를 지키는 공정의 작업들이다. 현실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해 자신의 손으로 뒤바꾸어 본다. 만들어진 상식에 대한 저항이다.
이는 단지 세계의 다양한 층들을 수평적으로 잇는 놀이가 아니며, 그 사이에 작가 자신의 의식을 위치시키는 주체적 노력이기도 하다. 구성연은 사탕으로 꽃을 만들고, 그것을 굳이 카메라로 재현한다. 그럼으로써 저 환영을 거리 두어 지켜 본다. 황선태는 유리라는 단단하고도 깨지기 쉬운 재료로 경전을 만든다.
우리가 각자 믿고 기대어 사는 무수한 현실들, 돈의 가치와 유행의 미학, 추상적이어서 종종 감상적인 이데올로그들이 사실은 저 모양이라고 각성시킨다.
환영이 점령한 시대에 처한 젊은 미술 작가들이 쓴 흥미진진한 처세술인 <면역력> 전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자하미술관에서 31일까지 열린다. 02-395-3222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