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8월의 역사를 보다] 문학·전시·공연·방송 등 봇물… 역사 반추하고 공존 모색

올해 2010년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한일강제병합(경술국치) 100년, 주권을 되찾은 광복 65년이 되는 해이다. 이들 한국 근현대사의 전환을 이룬 사건은 공교롭게 모두 8월에 일어났다.

역사의 연속성에 비춰 8월이란 달에 특별히 무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전과 이후, 일제강점 35년의 궤적은 뚜렷한 차별적 함의를 지녔다는 점에서 역사의 변곡점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다.

사실 일제의 핍박이 절정에 이르고 이에 대한 저항과 굴종이 극명하게 갈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역사에 뒤섞여 살아온 시기가 바로 이때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크로체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춰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때 현재에서 100년 전, 65년 전 우리 역사가 전하는 메시지를 찾아가는 일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탐색의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과 사회상을 꼼꼼히 살피고 '현재'를 바라보는데 '문화'라는 창은 까다롭지만 튼실한 매개다. 현실에서도 100년, 65년이라는 역사적 햇수 때문인지 그 시대를 다루는 문학과 전시, 공연, 방송 등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인물'에 초점을 맞춰 시대를 해석하고 역사의 아픔을 반추하면서도 종래 '가해자 일본, 피해자 조선'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탈피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 점이다.

먼저 '인물'과 관련해서는 의사 안중근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는데 접근 양태엔 차이가 있다. 이문열은 소설 <불멸>에서 안중근을 장군이나 영웅, 자객 등 '활동'에 집중한 인간상이 아닌 자신의 실존으로 설정한 '관념'에 헌신한 인간, 순직한 영혼을 지진 인간에 비중을 뒀다. 그러면서 그의 민족주의자로서의 삶을 심도있게 다뤘다.

연극 <나는 너다>는 안 의사의 아들 안준생의 굴곡된 삶을 통해 '영웅 안중근'을 드러내며, 뮤지컬 <영웅>은 안 의사의 영웅적 거사에 무게를 두어 일제의 폭압적 지배를 고발한다. 창작뮤지컬 <장부가(丈夫歌)>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기록을 재구성, 가족의 내면적인 고뇌와 주변 인물의 심리상태를 파헤친다.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황녀로 살지 못했던 덕혜옹주의 삶을 추적해 일제의 조선 지배의 일면을 보여준다. 조성기 작가의 <좌옹의 길>은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인 유학파 지식인 좌옹 윤치호가 친일을 선택하게 되기까지의 시대상황과 내면 갈등을 그렸다.

단재 신채호도 집중 조명돼 KBS의 광복절 특별기획 <신채호, 시대의 마음>은 신채호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했고,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리는 <근대 한국사의 거목 혁명운동가 단재 신채호 특별전>(2010. 8. 11~11. 18)은 신채호의 일생과 관련된 사진과 유물을 전시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기록들이 공개된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일강제병합100주년특별전'으로 개최하는 < 붓 길, 역사의 길>전은 망국을 전후해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들의 필적을 통해 나라가 왜 망했으며, 또 나라를 어떻게 되찾았는지를 보여준다. 쇄국과 개화, 매국과 순절, 친일과 항일 등 상반된 입장에 있는 인물들의 글씨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칠언시', 을사오적이 지은 '차운시'와 정반대인 민영환의 '유서명함', 민영익의 '천심죽제' 및 오창석과 합작한 '묵란'이 대조를 이루고, 항일의 한용운, 오세창과 친일의 최남선, 최린의 글이 대비된다.

지난 5월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조선망국 100주년 추념회화전>은 망국의 시대상황이 '그림'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안중식이 이순신 그림 '한산충무'를 통해 항일의식을 표출한 반면 매국에 앞장섰던 황철은 왜색이 강한 그림을 남겼다. 이경승, 서병건 등은 세상과 절연한 채 그림으로 울분을 달랬다.

경술국치라는 치욕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며 일제의 잔재를 정리하려는 시도는 여전하다. 연극 <아버지를 죽여라2>는 항일투쟁단체에서 활동하는 주인공이 친일파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라는 지령을 받게 되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통해 일제의 잔재가 여전한 현실을 고발한다.

광복 6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연극 <생쥐와 인간>은 일제강점에 맞서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민초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담아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KBS는 <국권침탈 100주년 특집,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 4부작을 통해 망국과 학살, 독도 문제 등 경술국치의 역사를 되짚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6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또 하나의 실크로드–동풍, 반도에서>는 문명교류의 장이었던 실크로드를 통해 한일 예술가들이 만나 문화교류를 하고, 동아시아 전통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일 공동제작으로 최근 막을 내린 연극 <내가 울어줄게>는 두 나라를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우정을 다뤘다. 한일 양국이 지난날의 원한과 상처를 딛고 공존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문화에 투영된 한일강제병합 100년, 광복 65년은 역사 이상의 의미와 무게를 전한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의사 안중근이 물질과 무력의 시대를 넘어 정신문화를 통한 인류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알린 것이나 백범 김구가 "내가 한없이 원하는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라고 한 것은 현재의 세대에 전하는 경구로 들린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