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8월의 역사를 보다]<붓 길, 역사의 길>등 당시 지식인들 마음 담은 글·그림 선보여

민영익, '붓 길, 역사의 길'
경술국치 100년을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가 올해 초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00여 년 전, 망국의 전조를 느끼던 지식인들. 이들 중 일부는 시대의 흐름에 편입했고, 또 다른 부류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시대를 살던 지식인들의 마음이 글 혹은 그림으로 남았고 좀처럼 대중에 선뵈지 못했던 이들의 흔적이 곳곳의 전시장에서 공개됐다.

'국가안위 國家安危 노심초사 勞心焦思'. 지난해 서거 100주년을 맞았던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휘호 중 여순 감옥에서 하급 검찰관인 야스오카 세이시로에게 써준 글이다.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운다'는 의미의 휘호는 야스오카 장녀가 가지고 있다가 66년이 흐른 후 동경국제한국연구원을 통해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었다.

당시 초대 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테러리스트'로 감옥에 갇혔지만 안중근 의사를 취조했던 야스오카를 비롯해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은 하나같이 안중근을 깊고 높은 교양의 소유자로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안중근 의사의 '국가안위 노심초사'가 전시 중인 곳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특별전>으로 마련된 <붓 길, 역사의 길>(2010. 7. 23~8. 31,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다. 한국 근현대사 굴곡의 주역들이 쓴 100여 점의 글은 망국(亡國)의 전후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 선 인물들이 필묵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낸 당대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쇄국과 개화, 매국과 순절, 친일과 항일 등 상반된 이념을 가진 이들의 글씨가 한자리에 모였다.

단재 신채호가 화사 이관구에게 보낸 한시
이토 히로부미의 '칠언시'를 비롯해 민영환이 을사조약 체결 사실을 알고 자결하기 전, 국민에 당부하는 글을 명함에 빼곡히 작성한 유서, 친일정권 수립 이후 상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던 민영익이 그린 '천심죽제'와 오창석과 합작한 '묵란', 만해 한용운과 여운형, 김구의 필적이 최초로 공개된다.

지난 5월,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조선망국 100주년 추념회화전>은 망국의 시대상황이 '글'이 아닌 '그림'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보여준 전시였다. 1910년 이순의 나이였던 서병건(1850~?)부터 20대 중반이었던 고희동(1886~1965) 사이, 당시 화단에서 활동하던 28명 작가의 100여 점이 선별됐다.

격랑의 시대, 하나의 이념이 화단을 지배하지 못하고 다양한 화풍이 혼재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전통을 계승하려 했고, 또 다른 부류는 중국이나 일본의 화풍을 따르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그림을 통해 항일정신을 표출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아예 세상과 절연해 자연을 벗 삼기도 했다.

상명대학교 학생들은 최근 만화를 통해 경술국치를 되짚어보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고경일 상명대 교수(만화디지털콘텐츠학부)가 올해로 네 번째 기획한 상명대 교수진과 학생들로 구성된 '야스쿠니 풍자 예술단'은 <만화로 본 경술국치 100년 전>을 열었다.

이들은 2007년부터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지적하는 순회 전시회를 열어왔다. 올해는 한일병합으로 인한 처절한 고통을 만화, 미술, 음악 등의 작품으로 완성하고 당시 동북아시아 지배의 야욕을 드러낸 일본 시사만화도 공개했다. 8월 1일까지의 국내 전시를 마치고 지난 9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도쿄, 후쿠오카 등에서 순회 전시를 이어가는 중이다.

운미 민영익 '묵란'
올해 탄생 130주년을 맞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단독 전시도 주목할 만하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었던 그는 1910년 국외로 망명해 연해주, 상해, 북경 등지에서 민족사 저술에 힘쓰며 항일 구국운동을 해왔다.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리는 <근대 한국사의 거목 혁명운동가 단재 신채호 특별전>(2010. 8. 11~11. 18)은 선생의 국내외 활동과 관련된 사진과 유물을 수집해 전시한다. 출생부터 성장과 독립운동 활동, 조선혁명선언과 아나키즘 활동, 그와 교류한 동지들 등으로 순차적으로 구성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친의 외조부 묘소와 가옥, 그리고 독립운동가 이관구에게 보낸 한시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채호 선생의 고향인 대전에서 열리는 첫 전시라는 점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안중식 '한산충무'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