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예술이다] 김자림의 작품, 사이의 음악, 이종구의 시, 다큐영화 <땅의 여자> 등농촌에 살며 길러낸 말, 가락, 경관들 자연과 조화의 행복함 일깨워

"자연을 벗 삼아 욕심 없이 살리라-나중에 애들 대학까지 다 보내고 난 뒤에/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하고 나서" (, '귀농통문' 중)

우리는 자연에 대해 가장 이율배반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강이 파헤쳐지고, 친환경 상품이 인기지만 자동차 판매 대수도 여전히 늘고 있다.

숨 가쁘고 팍팍한 일과에 지친 도시인들은 귀농을 꿈꾸지만,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능력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기후의 급변을 근심하면서도 GDP 증가에 대한 욕망을 놓지 못하는 '녹생 성장'의 시대.

농사에 주목하는 예술은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예술가들이 직접 작물을 심고, 농촌에 살며 길러낸 말과 가락, 경관들은 인류가 땅과 더불어 살아온 기술로서의 농사의 의미를 되살린다.

그 과정 안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있고, 생명체로서 인간의 운명이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모든 살아 있는 것에는 한도가 있으며, 자연의 순환과 조화 이룸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게 한다. 도시 문명이 잊어버린 이 여정의 체험이야말로 이율배반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 중 하나다.

김자림, Organic garden_아버지를 위하여, 2009
농부의 마음으로 삶과 죽음을 기리다

"풀이 많은 데에, 특히 풀들이 말라 있는 11월 말쯤에 가보세요. 귀를 기울이면 톡, 톡, 톡하는 소리가 들릴 거예요."

김자림 작가가 처음 그 소리를 들은 것은 2003년 여름이었다. 막 할머니가 돌아가신 참이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삶을 휩싼다. 오리무중이던 작가는 배추밭에서 길을 찾았다. 씨앗 터지는 소리가 들린 순간 "저렇게 생명이 순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추를 쓰다듬었더니 부드러운 촉감 로 가시처럼 따끔따끔한 생명력이 전해져 왔다. 이후 배추는 작업의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김자림 작가는 연작 'Organic garden'에서 배추 안에 뇌와 심장, 자궁을 그려 넣었다. 자연과 사람 간 불가분의 관계를 상징하기 위해서다. 특히 간을 지닌 배추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린 것이다. 아버지의 간암 투병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농사가 힘이 되었다.

"씨앗이 뿌리 내리고 살고 죽는 과정에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작물을 기르고 지켜보다 보면 사람들이 북적북적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느껴지죠. 그래서 더 넓게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김자림, Organic garden_나를 위하여, 2009
외할머니는 평생 농부의 마음을 지켰다. 서울로 온 후에도 아파트 발코니와 동네 공터 등에 텃밭을 가꾸고, 거둔 것들을 주변에 나누어 주었다. 그 성실하고 베푸는 마음이야말로 작가가 농사를 통해 배웠고 작업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이며, 땅으로부터 멀어진 도시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다.

작년 김자림 작가가 재개발을 앞둔 서울 북아현동을 기억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골목에서 주름잡기>에 참여했을 때도 눈에 밟힌 것은 골목과 마당 틈틈이 자리한 텃밭이었다. 그것은 도시화의 유산이기도 했다. 고향은 떠났어도 농부의 마음은 꾸려온 전 세대의 흔적이었고, 동네를 지탱해준 정서이기도 했다. 작가는 그곳에서 씨앗을 모아 기록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작업을 했다.

이런 관심은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한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주말마다 경기도 파주에 마련된 한 생태 공동체의 밭에서 농사지으며, 환경 운동에도 참여한다.

"작업을 통해서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생활 속에서는 이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연은 인간을 치유하니까요."

이는 작가가 지난 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사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골 생활, 석유 문명의 대안 찾기

뮤지션 의 시골 인생은 올해 5년째에 접어들었다. 서울 홍대 앞을 주무대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겨울 결혼을 하며 지리산 산청으로 떠났다. 그 후 섬진강 하동을 거쳐 충북 괴산에 터를 잡았다.

농사도 짓고, 근처 폐교에 열린 '마을공동체학교' 신기학교의 일도 돕고, 자신의 음악을 청하는 전국 각지를 다니며 산다. 세간에서 그를 부르는 애칭은 '귀농 뮤지션'이다.

"농부라고 하기엔 너무 게으르죠. 하루 3~4시간만 일하고 놉니다. 농사지어 팔 생각이 없으니까요.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살면 되죠. 그래서 스스로는 '수퍼 백수'라고 부릅니다(웃음)."

음악을 들으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생활에서 우러나온 가사들은 정직하고 담백하고 통쾌하다. "사람들은 도대체 내 말을 믿지 않아/ 돈 없어도 시골에서 팔자가 늘어진 걸/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전기세 1600원/ 텔레비전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없어도 좋아/ 농사로 돈을 벌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그냥 줄이고 덜 쓰고 가난해도 괜찮을 걸."('아방가르드 개론 제1장')

'땅의 여자'
에게 귀농은 석유 문명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었다. <교외의 종말>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후 문제는 보수나 진보, 특정한 정치체제 이전에 한정된 석유에 의존하는 문명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도시에 사는 한 이 거대한 시스템에서도, 부속품이자 껍데기인 처지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는 천상배필을 만나 독립을 실천할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음악의 통쾌한 통찰은 우리에게 꿀밤을 먹인다. "21세기는 과소비 과인구 과속도/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들이 비웃는 걸/ 우주와 깨달음을 찾아 헤매는 이여/ 자유와 고독을 노래하는 방랑자여/ 그대는 석유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나/ 그대는 진정 쓸모 있는 남편인가."('아방가르드 개론 제1장')

"시골에서 산다는 건 단지 장소만 바뀐다는 게 아니에요. 삶의 패턴과 스타일, 개념까지 바뀐다는 뜻이죠. 예를 들면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병원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얼마나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죠."

집짓기부터 밥하기, 빨래와 땔감 모으기까지 최대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생활을 꾸려 본 덕분에 삶에서 필요한 많은 것을 익혔다. 이상과 현실 에서 최선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도시에서 생긴 습관이 참 버리기 어렵다는 것과, 불편한 것은 끝이 있지만 편한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사백오십만 원으로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자연이 무섭다는 것, 사람이 사랑받지 못하고 너무 외로우면 이상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그래서 시골에 살기 위해서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권우정 감독
사회를 보는 눈은 되레 밝아졌다. 정보의 홍수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중요한 일의 맥락을 더 잘 짚을 수 있게 됐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현장, 인권을 생각하는 행사들이 그의 노래를 찾는 이유다. 아직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그의 노래를 동지 삼는다.

"시골에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변했죠. 제대로 한번 살아보는 것 같아요. 영리하고 겸손해진데다 음악도 더 좋아졌죠."

인생은 악착같은 돈벌이나 네 편 내 편 나누는 싸움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사랑하는 생활이라고, 의 음악은 가르쳐준다.

은유와 상징으로부터 농촌의 현실 구하기

"아직도 철 지난 격문으로 엄살을 떤다고 나무란다면 대꾸는 못하겠다. 하지만 농업은 늘 절박한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때로는 한 걸음 비켜 서서 헐렁해지고도 싶었지만 농사가 영 나를 못 살게 굴었다고 핑계를 대겠다."(<다시 격문을 쓴다> 서문)

경북 영천에서 농사 지어 사는 시인 이종구의 문체는 격렬하다. 대중 매체가 전해주는 농촌 판타지를 가차 없이 깨버린다. 그게 농촌의 현실이다. 도시인의 휴양지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농촌은 그 어느 곳보다도 위태로웠다.

시대의 경전이 된 경제적 잣대는 농사의 가치를 단순하게 재평가했다. 시장에서의 교환의 효용을 가리키는 수치는 오랫동안 땅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 온 습속, 공유된 정서와 질서 같은 것들은 헤아릴 줄 몰랐다. 우리가 통상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논과 밭을 경전 삼아 "쌀은 지난 여름 땡볕이 번역해낸 인간의 경전/ 끓어 넘치는 밥물은 농부들 너털웃음이다/ 다섯 살 저 아이 숟가락질이 지구를 자전시킨다"('우선 허기는 끄고 봐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온 이에게 이는 통탄할 노릇이다. 이종구 시인의 시가 도시인들의 밥상에서부터 농업 정책과 관련한 집회 현장까지 누비는 이유다. 차고 넘치는 은유와 상징 속에서 농촌의 현실을 구해내려는 시도다.

오는 9월9일 개봉하는 <땅의 여자>는 이종구 시인의 시와 짝지어 볼 만하다. 대학 졸업 후 귀농해 농촌에서 살아온 세 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들이야말로 이상과 현실의 접점이다. 농촌에서의 삶에 대한 막연한 꿈은 10여 년 동안 매일 돌봐야 하는 밭과 소, 가족과 이웃 관계, 농업을 지키려는 활동으로 바뀌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농촌의 일과에 아직도 적응이 덜 된 소희주 씨는 종종 남편과 비닐하우스보다 여성농민회 활동이 우선이고, 농사지으며 농민 운동 하는 게 목표였던 강선희 씨는 자신이 농사에 영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린이 공부방 운영으로 눈을 돌렸으며, 고3 시절 농촌총각의 자살 뉴스를 보고 농촌 총각과의 결혼을 결심한 변은주 씨는 가부장적인 시댁 분위기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은 1년 반 동안 이들 곁에서 살며 그 좌충우돌을 정직하게 담았다. 수식과 기교, 대중 매체적 상상력을 빼고 본 농촌에서의 삶은 도시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시에 크게 다르다. 사람들 의 갈등,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 예기치 않은 사고 같은 것은 익숙하나 인물들의 씩씩함은 남다르다.

영화 촬영 중 불거진 한미 FTA 협상 반대 집회에서도 가장 활기 넘치는 이들이 이 여성 농민들이고, 강선희 씨는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기도 한다. 좌절하고 고민하면서도 현실을 거름 삼아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의지를 길러낸다. 작물처럼 땅에 단단히 뿌리 내린 사람들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도 그 지점이다. "소득이 적어도 농사 지으며 맺는 관계들이 소중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내 꿈은 지금 사는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같이 좋은 세상 만들고 그 과정과 결과도 같이 느끼고 싶다"는 소희주 씨의 말과 마을 여성 농민들이 노동요를 흥얼거리며 너른 밭을 함께 거두어 가는 장면에서 인물들의 씩씩함은 단지 개성이 아닌, 농촌의 문화로 보인다. 은 "주인공들이 보여준 '인간의 힘'이 모든 이들에게 위안과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땅의 여자>는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서 최고 인기작이 되었다. 귀농을 꿈꾸는 관객들은 주인공들에게 조언을 청하러 왔고, 한 출판사가 강선희 씨의 공부방에 책을 기증했으며 인권 단체가 주인공들의 마을에서 캠프 진행을 기획하고 있다. 사람과 사회, 자연을 살리는 농사의 지혜가 예술을 매개로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다.

<땅의 여자> 인터뷰

<땅의 여자>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여성 농민 커뮤니티에 대한 영화를 기획하고 있었다. 농촌 사회가 정치적으로는 남성 농민 위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여성 농민들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주인공들을 만났을 때 좌충우돌하는 게 매력적이었다.(웃음) 농촌의 현실이 어렵다고 하는데도 스스로 선택해서 살고 있는 여성 농민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다.

농촌에 거주하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것이 2004년작 <농가일기> 이후 두 번째다. 농촌이라는 삶의 공간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농촌은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다 끌어안는 공간이 된 것 같다. 양극화의 현장이기도 하고, 이주 노동자와 이주 여성도 많다. 하지만 농촌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 보려는 의도보다는 농촌 자체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없다는 문제 의식이 더 컸다. 농촌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들인데 그 간극이 너무 크고 안 알려져 있지 않나.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주인공들의 건강함이 인상적이었다.

희주 '언니'에게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이냐고 물어봤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대답하더라. 그게 농촌에서 사는 동력인 것 같았다. 선희 언니가 (영화 촬영 중)형부를 잃은 후에도 씩씩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희주 언니는 자기라도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 농촌에서 맺은 관계들, 그로 인해 생긴 사회적 위치가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는 설명이었다. 선희 언니는 지금 형부가 맡았던 이장 역할까지 물려받아 하고 있다.

농촌에 대한 대중 매체의 피상적인 시선에 불만이 있을 것 같다.

농촌의 향토성을 강조하고, 귀농을 이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 같다. 귀농은 웰빙 고급 문화가 아니라 소수자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땅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건 맞다. 꼭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농촌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더 있었으면 한다. 젊은 층이 유입되지 않고 농촌의 가치를 헤아리지 않는 농업 정책이 계속된다면 농촌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