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열풍]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온 빈티지, 패션에서 라이프스타일까지 점령

"그는 가장 비밀스러운 영혼 깊이 숨겨져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 같았다…전 세계의 모든 물건들이 이 먼지 쌓인 가게에 쌓여 있듯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도덕과 지혜가 이 사내의 냉담한 안색에 다 요약돼 있었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 <들나귀 가죽>에서 어느 빈티지 상점의 주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의 모든 도덕과 지혜는 어디에 쌓여 있을까?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국내의 빈티지 시장은 그러나 그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아직 빈약하기 짝이 없다. 거래되는 물건의 95% 이상이 해외에서 건너온 것으로, 한국에 최초의 패션쇼가 열린 지 50년이 넘었건만 지금까지 보존된 의상은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하다.

그것을 재활용하여 입고 다니는 일은 더더욱 없다. 70년대에 접어 들어 기성복 시대가 막을 올린 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 놈의 '창고 대개방'은 한국 빈티지의 씨를 말렸다.

서구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수집벽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나폴레옹이 걸쳤던 스카프에만 스토리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연쇄 살인범의 영수증에도 소장 가치를 인정한다. 100년 된 기차 좌석의 가죽을 벗겨 의자를 만드는 일은 원가 절감을 위한 꼼수가 아닌 세월의 가치를 물건에 입히는 특별한 작업이다.

오래 된 공장이 예술의 거리로 둔갑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흔한 일로, 구로공단이라는 단어가 부끄러워 디지털단지로 바꾼 한국의 기성세대들로서는 아무래도 쉬이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티지 시장은 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젊은 세대의 주도 하에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10년 전 동대문 거평 프레야는 빈티지 천국이었어요."

19살에 거평 프레야 5층 구제옷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효미 씨는 지금 홍대 빈티지 숍의 사장이다. 그 당시 빈티지의 가장 큰 특징은 싸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옷의 특별함을 즐기는 이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그래도 가격이 비싸면 빈티지라고 볼 수 없었다. 취급하는 품목도 비슷비슷했다. 오리지널 리바이스와 랭글러 청바지, 구제 신발을 싸게 사려는 이들이 피어 오르는 먼지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그때에 비하면 최근의 빈티지는 브랜드에 가깝다. 숍 주인의 감성에 맞게 바잉된 옷들은 콘셉트가 뚜렷하다. 홍대 로미와는 '샬랄라'한 공주 드레스로 유명하고 문래동 비옥은 과감하면서도 시크한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매장을 낼 수 없을 만큼 작은 곳은 에이랜드 같은 대형 편집숍에 들어가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처럼 수수료를 내고 자리를 받는다. 구획 정리 없이 행거에 걸려 있지만 대충 선을 그을 수 있을 만큼 각자의 색깔이 분명하다. 당연히 가치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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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의 가격은 원래 상품 가격보다는 소장 가치에 따라 달라져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빈티지 매장을 운영하는 김효진 씨의 말이다. 소장 가치라는 주관적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샤넬 빈티지와 보세 빈티지의 가격 차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옷이라고 해도 어떤 지역에서 누구에 의해 팔리느냐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각기 다른 지역의 빈티지 매장 세 곳을 통해 현재 한국 빈티지 마켓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살펴봤다.

"세상을 널리 빈티지하게 하라"
홍대앞- PAGE ONE

홍대앞 놀이터 뒤쪽에 있는 은 문을 연 지 채 3개월이 되지 않았다. 이곳이 표방하는 바는 '웨어러블 빈티지'다. 빈티지는 더 이상 마니아 패션이 아니라고 말한다.

"위 아래 전부 빈티지로 입는 것보다는 요즘 나오는 옷들과 매치하는 것을 추천해요. 빈티지 옷들은 보통 색깔이 굉장히 강하니까 포인트로 사용하면 초보자들도 쉽게 소화할 수 있어요. 아주 특이한 빈티지 코트, 튀는 색깔의 구두, 옛날 스타일 모자, 이 중 1~2개 정도만요."

들여오는 옷들은 대부분 일본 백화점에서 15~20년 전에 팔던 옷의 재고들로, 새 옷에 가까운 훌륭한 상태와 한국인들의 취향에 크게 엇나가지 않는 감성이 특징이다. 50년대 풍의 하늘하늘한 레이디 라이크 룩부터 시작해서 키치한 티셔츠, 마담 풍의 핑크색 투피스 등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해 있다. 이리저리 흠집이 난 앤티크 진주 반지와 한껏 닳은 아디다스 운동화, 길이 잘든 가죽 지갑들은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일본에서 재고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기업과 거래를 터 대량으로 저렴하게 공급해 오며, 국내 디자이너들과 요지 야마모토 같은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의 옷도 일부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의 홍대 빈티지와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일단 넓다는 것. 당구대를 들여 놔도 손색 없을 만큼 널찍한 매장에 피팅룸까지 갖춰놨다.

"빈티지 매장은 대부분 협소해 이것저것 입어 보기가 어렵잖아요. 작은 가게에서 주인과 오래 마주하다 보면 안 사고 나오기도 민망하고. 주인과 눈 마주치지 않고 오래도록 쇼핑하면서 입고 싶은 건 다 입어볼 수 있도록 배려했어요."

빈티지 대중화에 기여한다고 한 만큼 인심도 후하다. 원피스와 스커트, 셔츠는 5000원부터, 재킷은 1만 5000원부터 시작하며 2만 원 안팎의 옷이 대부분이다. 이것도 모자라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과감하게 3000원을 깎아준다. 1만 3000원짜리 옷을 고르면 1만 원만 내면 된다. 한 켠에는 균일가 코너가 있다. 특별히 사이즈가 작은 옷이나 수선비가 들어갈 것 같은 옷, 아니면 그냥 멀쩡한 옷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 5000원, 1만 원에 판다.

"매장 크기나 창고 같은 부대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 좋은 물건을 안정적으로 들여올 수 있어요. 이전에는 업데이트나 심지어 매장 운영 시간도 들쑥날쑥하는 등 불안정한 곳이 많았다면 이제는 홍대 빈티지도 조금씩 체계적이고 대중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나인 아울즈
"빈티지는 간직할 가치가 있는 보물"
가로수길- NINE OWLS

"이효리 씨가 여기 단골이에요."

묵직한 여우털 코트를 살펴 보는 기자에게 직원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구경하고 있자니 가수 보아의 스타일리스트와 모 TV채널의 카메라진이 들이닥친다. 아마도 스타일리스트의 비장의 쇼핑 장소라는 콘셉트로 촬영을 하는 모양이다.

는 가로수길 빈티지 숍의 원조격이다. 세로수길에 처음 문을 연 2008년에 빈티지 숍이라고는 와 벨앤누보밖에 없었다. 사실 강남은 빈티지와는 좀 거리가 있는 곳이다. 옛날엔 동대문, 요즘엔 홍대로, 구제는 강북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최근 가로수길 등지에 늘어나고 있는 빈티지 매장들은 들여오는 옷이나 가격, 손님의 나이나 취향에 있어서 강북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너무 어린 친구들보다는 20대 후반에서 40대까지, 구매력을 갖추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와요. 가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빈티지의 소장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죠."

황학동 벼룩시장
일상복보다는 시상식에 어울릴 만한 화려한 시퀸 드레스, 선명한 색감의 퍼 코트 같은 하이패션 스타일의 옷이 많다. 드레스는 30만 원대부터 시작하며 전부 밍크로 만든 롱 코트의 경우 300만 원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오리지널 샤넬 빈티지 컬렉션도 충실하게 갖춰져 있는데 보통 70만 원에서 100만 원대다.

빈티지 주얼리 컬렉터인 주인이 연 곳답게 소품도 옷 못지 않게 많다. 50년 묵은 빈티지 앨리스 인형, 한정판 바비, 60년도에 제작된 카파 시계, 40년대 코카콜라 빈티지 포스터, 매장에 있는 의자와 테이블까지 모두 골동품 수준이다. 비록 싼 곳에서 횡재하는 맛은 없지만 주인이 엄선해서 모아 놓은 보물들은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충분한 것들이다. 주 수입처는 미국으로, 1년에 두 번 정도 나가 직접 사온다.

홍대가 빈티지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면 강남은 빈티지의 고급화, 다양화에 기여하는 중이다. 50년대 헐리우드의 글래머러스함, 60년대의 모즈룩, 80년대의 파워풀한 록 무드를 망라한 의상들을 보고 있으면 '빈티지=꽃무늬 원피스'라는 공식은 금세 무너진다. 주인은 현재 국내에 전무한 빈티지 웨딩 컬렉션도 계획하고 있다. 몇 십 년을 견딘 고아한 아이보리 빛의 웨딩 드레스, 우아한 베일, 빈티지 부케 등이 이미 매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리마인드 웨딩 등이 유행하면서 빈티지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커지고 다양해지고 있어요. 옷뿐 아니라 액세서리, 가구, 차,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라이프 스타일에서 빈티지한 감성을 추구하는 거죠."

"여기는 무(無)바잉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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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최근 부쩍 가격이 오른 빈티지에 대해 원조 마니아들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재래시장은 그들에게 빈티지 본래의 장점인 횡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자 훌륭한 쇼퍼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곳이다.

은 광장주식회사가 1905년에 세운 첫 상설 시장으로, 한국 전쟁 때 무너졌다가 피난민들의 생활 필수품과 군수품을 거래하면서 수입구제시장으로 부활했다. 1962년 동대문시장과 으로 나눠지면서 동대문은 대형 쇼핑몰이 지배한 패션 타운으로 발전하고, 광장은 한복, 침구, 그리고 빈티지의 천국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이 많기 때문에 예전부터 연예인과 스타일리스트들의 비밀스런 쇼핑 장소였다. 미국, 일본, 유럽에서 들여온 중고 의류가 주를 이루며 단골 가게가 정해지면 '밀수하듯' 거래가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명품을 싸게 사기 위한 손님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빈티지 그 자체에 매력을 느낀 고객들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빈티지 열풍은 에도 영향을 미쳐 독특함이라는 코드가 살짝 희석됐다는 의견이 있다. 매장 주인들이 이 정도면 팔리겠다 싶은 상품을 골라 앞에 진열해 놓고 비싸게(그래도 3만 원 정도다) 받기 때문이다.

여전히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희한한 아이템들이 많지만 본래의 야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향하는 곳은 이다. 한국의 모든 오래된 것들의 출처인 만큼 옷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정수를 느끼려면 바닥에 늘어 놓고 파는 매장을 찾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옷이 패션이 아니다.

부가가치를 완전히 빼버린 옷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이리 던져지고 저리 던져진다. 천막에서 물이 떨어지면 주인은 옷가지 중에 하나를 집어 들어 물기를 닦고 버린다. 모두 1000원. 여기서 옷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은 파는 사람이 아닌 사는 사람이다. 상인들은 옷의 가치를 가늠할 시간도 없고 필요도 못 느낀다.

이른바 완벽한 무-바잉(無-buying) 지대다. 자기 스타일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곳의 옷들은 헌 옷 수거함에서 건져 놓은 쓰레기 더미에 불과하지만 취향이 확고하고 쇼핑에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여기만한 신세계도 없다. 장폴고티에 점퍼와 알렉산더 맥퀸 셔츠가 빨래처럼 널려 있기 때문이다. 씨가 마른 한국 빈티지를 그나마 엿볼 수 있는 곳도 이곳뿐이다. 얼마 전 부도가 난 톰보이와 한때 중고생들의 유니폼이었던 A6, 예복의 대표주자로 불렸던 베스띠벨리가 황학동에서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위용을 뽐내고 있다.

참고서적: <한국의 시장>, 기분좋은 QX 저, 시드페이퍼
<마이 빈티지 로망스>, 바버라 호지슨 저, 북노마드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박상준 저, 한길사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