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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이 바라본 서울의 모습은?

[서울을 정신분석하다]
전우택 교수 등 7人 도시화 과정 속 부작용과 치유책 책으로 펴내
부산에 사는 한 사진작가는 개인전 혹은 강연을 위해 자주 서울을 찾지만 서울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 역시 서울의 풍족한 문화적 인프라를 누리고 싶기는 하지만 자신 삶의 템포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5년 전 한 조사에 따르면 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80%는 서울에서 살기를 희망하고 있었고 반대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이 아닌 타 지역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비율이 10명 중 8명이었다.

과도한 인구포화 상태. 서울은 끊임없이 인구 분산을 연구하고 서울 사람 역시 타 지역으로의 이주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막연한 희망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서울 사람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설문조사에서 사람들은 10년 후에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대답하고 있다. 이는 서울에 집중 육성된 각종 문화 인프라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고 했던가. 서울은 이제 한국의 인구 5분의 1이 살아가는 초 거대 도시가 되었다. 이 안에 사는 사람들은 누가 밟고 있는지도 모르는 폐달에 몸을 맡기며 바삐 움직인다. 자신이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울이란 도시의 리듬이 개인의 리듬을 좌우한다. 도시화로 인해 겪는 많은 변화는 비단 서울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19세기 초까지 세계 인구의 5%만이 살던 도시에 이젠 세계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다. 도시화는 비단 사람들의 유입만을 불러오지 않는다. 거주 공간, 일자리, 각종 기반시설, 서비스 등을 동시에 갖춰가야 하지만 이는 사람의 유입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세계의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국내외에서 모여든 낯선 사람들과 살아가며 벌어지는 일들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빈부의 격차가 생겨나고, 그 안에서 범죄와 폭력이 생겨나고 인간 소외 현상도 발생한다. 최근 서울 신정동에서 일가족을 해친 혐의로 붙잡힌 범인은 범행동기를 '나보다 행복해 보여서'라고 밝히며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실업, 빈부격차 등으로 상대적 불행감에 빠져든 사람들. 연일 들려오는 사건 사고에 개인적인 범주를 넘어선 사회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전우택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를 비롯해 송도영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효관 서울시 하자센터장, 유시은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소ᆞ통일학 박사 등 7명의 학자가 서울의 문화와 서울시민의 정신건강을 분석한 <서울을 정신분석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서울은 현재 어떤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는가.

서울의 도시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 서울시의 정신건강브랜드 블루터치
사실 서울의 특수성을 떠나 대도시는 태생적으로 지역생활에 비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농경생활이 아닌 계획적인 조직생활은 곧 전문화와 계층화를 가속시키고 문명을 발달시켜 자연스럽게 도시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계층은 나눠지고 직업은 분화되며 불평등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도시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경쟁과 창조로 인한 스트레스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서울은 지난 5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뤄낸 도시다. 그 성장 속도에 맞춰 사람들의 생활도 빠르게 변화했다. 50년도 안 돼 서울은 인구를 50배로 불렸고 수도권에는 한반도 인구의 절반 정도의 몰린 초거대 도시가 형성됐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송도영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초스피드로 변화해온 사회 구성의 각 영역들이 각기 다른 속도와 정도로 움직이며 공존하는 극단적 이행기는 각종 인체질병과 사회병리현상, 그리고 개인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부산물로 낳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현재 서울시민들이 갖고 있는 정신적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시문명 일반의 속성을 넘어 서울이 가진 특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14세기 말부터 서울은 조선의 수도(당시는 한성)가 되면서 오랫동안 권력의 중심무대로 기능해왔다. 서울은 신분상승과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선망의 지역이었다. 신분의 제약이 사라진 후 경제와 문화 등 모든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는 서울로 사람들이 모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인구 팽창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다. 세계적으로 인구 팽창과 도시인구 증가가 보편적인 흐름이 된 20세기 도시들 중에서도 서울은 유독 그 팽창 속도가 빨랐다. 이 같은 흐름은 인구 구조와 생활양식의 변화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 교수는 특히 가구당 인구수 변화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인구 증가 속도가 한참 빠르던 1960년대의 가구당 인구는 5.47명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가구당 평균 가구원수는 3명 이하다. 이는 집안 생활에서 맺는 인간관계의 내용이 질적으로 크게 변화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물자의 소비량도 현재 서울의 변화를 가늠하는 한 척도다. 2009년 현재 서울시 자동차 등록대수는 3백만여 대로, 평균 한 가구당 한 대 정도의 보급률을 보인다. 이는 계층 차이와 불균등 분포를 감안할 때 한 가구에 두 대 이상의 자동차를 소유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또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 수송인구도 지하철이 하루 473만 명, 버스 567만 명으로, 서울시민 대부분이 하루에 두세 차례 이상을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은 세계에서 유례 없는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한 서울이라는 표상의 자랑스러움보다, 그런 압도적인 변화가 서울시민의 존재 안에서 부담과 중압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서울시민의 정신건강 상태는…

이런 서울의 변화 양상에 따른 부작용들은 오늘날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지배하고 있다. 유아기 시절부터 청장년기를 거쳐 노년에 이르는 생애사가 온전히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진행 패턴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화'라는 명목 아래 맹목적으로 확산되어온 사교육 열풍은 아이들을 영어학원과 논술학원, 태권도장, 피아노 레슨 등으로 몰아넣어 낙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한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한 전 단계로 간주하는 기성세대의 인식은 아이들의 건강한 가치관 형성에 구조적인 병폐로 자리잡게 한다.

인터넷은 이미 원래의 용도를 벗어나 일탈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의 아이들은 클릭 몇 번만으로 선정적인 영상과 사진들을 접할 수 있다. 가장 폭넓게 이용되는 놀이가 된 비디오 게임이나 인터넷 게임의 과도한 집중은 인간 관계의 결핍과 왜곡으로 인한 정신적 이상마저 초래하는 경우가 흔한 사례가 되고 있다.

경쟁사회는 아이들에게 인생의 모든 것이 대학입시에 걸려있다고 강요한다. 인생의 성패가 대학의 서열에 따라 정해진다는 무언의 진리는 원하지 않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을 일찍부터 루저로 낙인찍는다. 이는 그대로 개인에게도 내면화돼 수많은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을 패배의식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평생 직장은 이제 구태적인 의미가 됐다. 대학입시 못지 않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취업시장은 갈수록 첨예한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 직장을 잡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다른 한편으론 기존의 서울 직장인은 자리를 고수하기 위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게 됐다.

올해 초 국내 한 대기업의 고위직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기업의 근속연한은 평균 약 7년 정도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로 평가되는 곳이다. 이 사건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중심에 있는 대도시 서울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자기 한 몸도 건사하기 어려운 세상은 자연스레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1.22명으로,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한 인간으로서 살기 힘든 곳이라는 자각과 동의가 전제된 결과이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는 2007년부터 '블루 터치'라는 정신건강 브랜드를 만들어 정신건강 인식도 조사 등을 통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홍보해오고 있다. 블루터치 캠페인을 통해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선도적인 모델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작업 등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신건강과 관련된 문제들은 단순히 의료적 처방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신건강과 관련된 환경의 문제, 자기조절 기술의 문제, 치료 기술의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조절하는 기술을 배워나가는 사회조직을 설정해 서로 치료를 위해 도움을 주고받는 활동에 동참하는 치료 공동체(therapeutic community)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해결방안들의 핵심은 '치유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다. 치유하는 문화는 관계가 형성되는 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작업뿐 아니라 다양한 실천적 행위들을 포함하는 배려와 실천을 강조한다. '치료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한 전효관 서울시 하자센터장은 "정신건강의 문제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도시 환경을 정신건강 친화적으로 바꾸는 사회적 문화적 정책과 연관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참고서적 : <서울을 정신분석 하다> - 전우택 외 6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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