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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원하는 서점을 향하여

[서점의 변신] 지식과 의견 교류의 장, 본연의 역할에 맞는 공간조성 필수
서점연합회, '모델 서점' 선정 지역사회 거점 문화공간 육성도
  • 리모델링 후 다시 오픈한 교보문고 광화문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제임스 조이스 등 당대 지성들의 발길이 머물렀던 파리 센 강변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영화 <비포 선셋>의 두 남녀 주인공이 9년 만에 재회하는 장소로도 등장한다.

1921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어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 영문학 전문서점 겸 도서대여점으로 문을 연 이곳은 애서가와 문인들의 쉼터로 자리해 왔다. 천장에 닿을 듯 책장을 가득 메운 책들과 바닥부터 쌓아 올려진 책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독자들의 발길을 이끈다.

서점이란 어떤 곳이어야 할까. 2010년을 <국민독서의 해>로 정한 일본의 출판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전국의 중고등학생 1239명과 성인 1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대인의 독서실태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한 달에 1회 이상 서점에 간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고 싶은 이상적인 서점'에 대해 묻자 '서서 읽기 쉬운 분위기의 서점'이라는 답변이 40.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부가 밝고 깨끗한 서점'(18.8%), '서점 직원이 손으로 쓴 책 추천문이 붙어 있는 서점' (11.7%) 등의 결과도 나왔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서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지식의 창고이자 정서 교류의 장이기도 한 서점은 우리에게 어떤 장소일까. 혹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최근 본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모습이 이런 서점 본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 서울 성동구 금호동3가 도원문고에서 시낭송회가 열리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저자와의 만남이나 아카데미 등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배움 아카데미'와 매달 주제를 정해 각 분야의 인사들에게 추천받은 도서를 정리한 '삼환재'와 '구서재', 품절이나 절판된 도서를 복간해주거나 원하는 내용의 책을 만들어주는 '책공방'(POD서비스)에 기대를 품고 있었다.

특히 해외 서점의 모델을 벤치마킹한 '책공방'의 경우 서비스 신청이 들어온 도서가 한 달여 만에 2만 권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반응이 좋다. 작은 서점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대형서점이 과감하게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반면 카펫이 있던 자리에 매끄러운 마룻바닥이 깔려 바닥에 앉을 수 없다는 점이나, 작고 단단한 나무의자가 비치되어 있어 불편해하는 이도 적지 않다. 칸막이를 없애 화사한 분위기는 있지만 공간이 혼재된 느낌이고, 동선이 분산되어 있어 집중하고 책을 읽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 서점 내 보강된 푸드 코트와 문구점 때문에 쇼핑몰에 온 듯한 인상을 받는 이들도 있다.

이 같은 독자들의 아쉬움에 대해 교보문고 정길정 브랜드홍보파트장은 "1년 동안 고객들의 동선을 분석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는 책을 읽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주변 광화문 광장이나 상권이 발달한 을지로 일대에서 놀고 쉬면서 서점까지 오는 분들이 많아졌다. 서점도 이젠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휴식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의자는 이전보다 1.5배 늘렸음에도 분산시켜서 적어 보이는 것 같다. 통로를 일원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젊은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일시 휴점 기간 동안 특수를 누렸던 영풍문고 종로점은 이처럼 책을 읽을 공간과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광화문점 재오픈 이전에 흡수됐던 고객들이 오픈 이후에도 생각보다 많이 빠져나가지 않아 다행스럽다는 반응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점을 찾는다는 조주희 씨는 "광화문 근처에 회사가 있어서 교보문고만 이용하다가 휴점을 계기로 이전에는 찾지 않던 영풍문고에 오게 됐다. 교보문고처럼 관련행사가 많지는 않지만 붐비지 않고 차분히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계속 이곳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지식의 최전선에서 동일한 희열을 맛보는 이들을 보기 위해 서점을 찾고, 또 어떤 이들은 그 기쁨의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 서점까지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다. 더욱이 도서관보다도 20여 일 빠르게 신간을 접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서점이다.

대개의 독자들은 서점에 원하는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지만, 서점은 많은 것들이 고려되는 곳이어야 한다. 시각과 청각, 촉각 등의 감각과 사고가 예민하게 활동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 쾌적한 공기, 찾기 편하게 정돈된 책처럼 하드웨어적인 부분도 있지만, 책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소프트웨어적 측면도 중요하다. 문인이나 애서가들이 모이는 장이어야 하고,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형서점과 중소서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과 의견 교류의 공간이라는 서점 본연의 특성은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2008년부터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문화관광체육부의 지원을 받아 전국의 '모델 서점'을 선정했다. 서점을 지역사회의 거점 문화공간으로 육성하겠다는 '출판인쇄문화산업진흥계획'의 10대 과제의 일환이다. 모델 서점에 지정되면 문화공간 개선비 2500만 원 정도와 연간 문화행사비로 200만~500만 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2008년 서울의 '도원문고', 울산의 '도담도담 책놀이터'에 이어 2009년에는 부산의 '다대서점', 대전의 '대견서점', 충주의 '책이 있는 글터'가 선정됐다. 각 서점에서는 인문학 강좌가 열리기도 했고, 학교 밀집지역에 위치한 특성을 살려 '자기 주도적 학습코칭' 등 학생을 위한 강연과 해당 지역의 문인들이 참여하는 '저자와의 대화'가 열리기도 했다.

무미건조하게 책이 판매되었던 공간에 지역 주민들이 모이고 서로 소통하는 계기가 마련되어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남은 숙제는 지원이 끊긴 후에도 이런 분위기를 계속해서 이끌어나갈 수 있느냐일 것이다. 올해의 모델 서점은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춘천광장서적', 대전의 '명동서적', 전북 익산시의 '광일서점' 등 세 곳이다.

일본의 작은 오라이도 서점의 점장으로 일하다가 대형 온라인 서점 BK1의 사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화제가 되었던 안도 데쓰야 씨는 민법 입문서 옆에 가정 내 폭력에 관한 책을, 그 옆에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정신요법 책과 전업주부라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 관련도서를 진열했다고 한다. 이러한 '정보의 불규칙성'이 독자의 상상력에 불을 지르고,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식의 교류와 소통이 비단 강연이나 이벤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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