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변신] 대형·온라인 서점에 밀려 존폐위기… '도서정가제' 시정 요청 등 노력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점은 곧 '책방'을 가리켰다. 대학가의 유명한 서점들은 지금의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못지 않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책방이었다.

고려대 근처의 '장백서점', 성균관대 앞의 '논장'과 '풀무질', 연세대 근처의 '오늘의 책', 한국외대 근처의 '죽림글방', 전남대 근처의 '청년글방' 등이 그런 책방이었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들 서점은 그 존재 자체로 문화공간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집 근처에도 하나씩 있었던 동네 서점들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책을 볼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활성화에 따라 서점은 점차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상업적 공간으로만 축소, 변질되고 있다. 그 결과 지역문화의 모세혈관이었던 작은 서점들은 존폐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가의 유명 서점들도 이제 풀무질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1996년 5378개나 되던 서점은 2000년대 들어 줄곧 하향세다. 2년마다 발간되는 한국서점편람(2010년)에 따르면 2007년 3247개이던 서점은 2009년 2846개로 줄었다. 서울에서 서점은 500여 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종로구는 도매 위주의 책방거리로 유명한 대학천이 있고 중구 을지로 6가 평화시장에는 헌책방이 모여있는 덕에 각각 70개와 48개라는 수치가 나온다. 이들을 제외하고 30개를 넘는 구는 양천구뿐이고 20개를 넘는 곳도 송파구, 강서구, 노원구, 강남구, 서초구 정도다.

이들 서점 중에서도 집과 가까워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동네 서점은 해마다 수백 개씩 사라지며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한 출판 관련 단체들이 지난 9월 28일, 행동에 나섰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등 8개의 단체가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그동안 동네 서점을 멸종 위기까지 몰아갔던 변질된 도서정가제에 대한 시정 요청이 그 내용이다.

온라인 서점의 할인으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던 동네서점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 중인 법안으로 존립에 더욱 위기를 겪고 있다. 발행일로부터 18개월 미만인 신간에 대한 10% 할인이 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규칙에 경품고시가 옮겨오면서 총 19%의 할인이 법으로 허용됐기 때문이다. 같은 책이라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고 싶은 독자들을 나무랄 순 없다. 문제는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이 현실적으로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도서정가제 시행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을 싸게 사는 것 같지만 출판사에서도 할인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거품가격이 형성된 상태다. 처음엔 서점이 타격을 입지만 이런 피해는 출판사에게 가고, 또 다시 저자에게로 간다. 이는 결국 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도서정가제 시행은 궁극적으로 보다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 그리고 출판사의 존립을 가능케 한다."

동네 서점을 위협하는 것은 온라인 서점만이 아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대형서점과 교육방송의 북몰의 등장도 위협적이긴 마찬가지다. 물론 경쟁사회에서 경쟁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각자 동네 서점이 작은 문화의 발원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는 더 중요하다.

그래서 최근엔 이런 작은 서점의 생존을 위한 여러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 지역 주민의 예산으로 구입하는 각종 기관의 장서를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는 방안은 동네 서점 살리기의 아이디어로 주로 논의되는 것 중 하나다. 실제로 지난해 제주도와 공공도서관 15곳에서는 작은 도서관 조성 사업에 필요한 도서를 지방 서점을 통해 구입하기도 했다. 지방 경제 살리기에서 작은 부분일 수 있지만, 지역의 작지만 문화적 생태환경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는 평가다.

서점이 문화 거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독자와 저자 간의 소통에도 민감할 필요가 있다. 많은 독자들이 작가들의 강연을 듣거나 그들과 담소를 나누며 양방향 소통의 기회를 갖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현재 유명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동네서점에서의 문화 프로그램 활성화 지원책의 하나로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한 문화 프로그램 지원 센터를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소서점의 신청을 받고 출판사와 연계해 저자 섭외를 하기까지를 중계하고 지원하는 센터는 서점 문화를 한층 풍성하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사양산업으로 인식돼 노후화되어 있는 서점 창업에 감각 있는 젊은이들의 도전을 돕는 창업 지원프로그램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고용창출의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국내에 인문과학 서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여타 전문 서점은 불모지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네 서점의 자구책이다. 학습참고서와 베스트셀러가 어느 정도의 매출을 지지해주던 시대는 지났다. 온라인 서점을 비롯한 할인 업체의 등장으로 무너진 도서정가제는 10여 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서점의 환경을 재구성했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넘어서서 무한 경쟁체제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버렸다. 정책 못지 않게 개별 서점의 노력이 중요한 몫이 된 것이다.

석사 논문으로 서강대 심소영 씨가 발표한 <중소형 서점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이용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2008년)에서 이뤄진 설문(20대 이상 성인남녀 213명 대상)에서 동네 서점의 장점으로 '가까워서 좋다'를 꼽은 사람이 106명으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반대로 단점에 대해서는 '원하는 책이 없다'고 지적한 사람이 143명에 달했다. 이는 커뮤니티 안에서의 인접성을 최대한 활용하되, 공간의 제한으로 책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인근 서점과의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시사해준다.

여기에 서점주의 개성과 아이디어에 따른 플러스 알파요소가 더해질 수 있다. 일본의 한 소형 서점은 손님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원하는 테마의 책을 추천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하고, 미국의 한 동네 서점의 경우 인근 학교와 협약을 맺어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책을 구입할 때마다 마일리지를 적립해 학교 도서관의 장서를 구입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사례도 있다. 결국 이들 사례는 지역 주민들에게 능동적으로 다가가고 교류하려는 노력이 그들의 발길을 동네서점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서점 인근의 약국에 건강 도서를, 옷 가게에 스타일에 관한 책을, 식당에 음식과 웰빙에 관한 책을 몇 권쯤 꽂아두며 지역 내에서 타 업종과 연계하는 방식도 동네 서점의 존립을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도움말 : 백원근 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