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로 사는 법] 동성애 담론 드라마·영화에 비판광고, 1인시위 등 잇따라에이즈 원인, 성경근거한 죄악론… 사랑은 아닌가?

SBS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단지 보는 것만으로 시청자의 성 정체성을 바꿔버리는 놀라운 드라마가 등장했다?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이하 바성연)은 얼마 전 한 일간지 하단에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가 책임져라"라는 광고를 내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일부 네티즌은 '이런 논리대로라면 를 보면 범죄자가 되나', '<제빵왕 김탁구>를 보면 제빵왕이 되겠네?'라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홍석천, 이송희일 등 게이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인물들도 자신의 트위터에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10년 전 사회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동성애 담론은 영화와 드라마 등 각종 문화 속에서 다루어지며 한국사회 속으로 조금씩 녹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통해 동성애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음이 드러났다. 인정과 혐오의 극단에서 게이들은 어떻게 오늘의 한국을 살아갈까. 왜 사람들은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없을까.

서초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영화 <친구사이?>(감독 김조광수) 청소년 관람불가 결정 행정 취소 처분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김조광수 감독을 비롯해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회원들이 행정취소처분을 요구하고 있다./배우한기자
동성애와 불화하는 사회

"난들 좋아서 했겠어요?"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나온 영화배우 주진모는 자신을 '게이'로 소문나게 한 많은 동성애 장면들을 설명하며 억울하다는 듯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공감한다는 듯 낄낄대는 무릎팍 도사와 건방진 도사. 이성애자에게 동성애자 취급은 일종의 놀림감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성애자 일반의 암묵된 공감은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동성애자 시청자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하나의 성적 취향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동성애 논란이 다시 불거진 지난주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다시 동성애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짐작케 해주는 장면이 등장했다. 태섭과 경수 커플의 관계를 모르는 동료 의사가 "두 분이 굉장히 친하신 것 같다. 꼭 사귀는 사이 같더라"라는 농을 던지자, 태섭이 그 순간 얼어붙고 만 것. 이는 커밍아웃 이후에도 그것을 모르는 이들 앞에서는 늘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게이들의 고충이 묻어난 장면이었다. 아울러 자신들의 당당함과는 별개로 여전히 공고한 세상의 편견을 재확인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17일 서울 종로1가 보신각 앞에서 개최한 국제 동성애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참석자들이 각종 차별에 고통받는 성소수자의 모습을 표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박서강기자
최근 광고 논란은 이 같은 편견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게다가 <인생은 아름다워>에 관련된 광고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5월 '동성애 허용 법안 반대 국민연합'(이하 동반국)은 보수성향 일간지에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광고를 실은 바 있다.

지난 5일에는 바성연의 회원인 김 모 씨가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김 씨가 시위를 펼친 이유는 서울행정법원이 동성애 영화 <친구 사이?>에 15세 관람가를 허락한다는 법원 판결을 내렸기 때문. 바성연은 지난달 발표한 성명서에서 "우리는 20대 초반 남성들의 노골적인 동성 성행위 장면을 담고 있는 '친구사이'에 대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법원에 대해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동성애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렇다면 이들이 이처럼 동성애에 대해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내는 데는 어떤 근거가 있을까. 바성연을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동성애가 에이즈(AIDS) 발병의 주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에 낸 광고에는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730배', '에이즈 환자 중 50%가 동성 간 성접촉에 의한 것'이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과 동성애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우석균 정책실장은 세계보건기구의 '안전한 성(safe sex)'의 기준에 따라 피임기구만 제대로 사용한다면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별은 안전한 섹스와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이 모 일간지에 낸 광고
그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HIV 감염이나 에이즈는 이미 치료법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일상생활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질병으로 바뀐 지 오래"라면서 "남들에게 바른 성문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최소한의 인권의식부터 가지셨으면 한다"고 바성연 측을 성토했다.

보수단체들이 피력하고 있는 또 하나의 동성애 반대 입장은 그것이 비정상적이고 나아가 그 자체로 죄악이라는 주장이다. 동성애=죄악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성경 근거설'이다. 동반국 단체 소속의 에스더기도운동은 레위기의 '남자와 동침하는 것이 가증한 것'이라는 부분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역시 동반국 소속인 한국교회언론회도 논평을 통해 "동성애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시각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거나, 뒤틀린 성의식을 소유한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기독교 내에는 다른 주장도 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이하 차세기연)의 공동대표인 임보라 목사는 동성애=죄악론은 시대를 감안하지 않은 잘못된 이해라고 설명한다. 그는 "지금 이 시대에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인 태도"라고 지적하며, "동성애 문제는 이미 성서 해석의 문제라기보다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됐다"고 말한다.

퀴어신학의 권위자인 시카고 신학대학의 테드 제닝스 교수는 차세기연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그는 지난 6월에 열린 해외석학초청 한국강연회에서 교회 내 동성애 혐오론자들은 성서의 한두 구절만 떼어내 인용함으로써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서는 사실 권력층의 오만과 폭력이야말로 죄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교회가 이들 권력층과 한 편이 되면서 보통 사람들의 성, 그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동성애자들의 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왼손잡이들의 '아름다운 인생'은 언제쯤 올까

영화/김조광수 감독 <친구사이?>
최근 출간된 루이 조르주 탱의 <사랑의 역사>(문학과 지성사)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중세 이후 역전됐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이성애 문화가 등장한 것은 12세기 초 무렵이다. 그 이전까지는 남녀 커플이 일반적이거나 관심을 끄는 관계가 아니었고, 오히려 남성들 간의 우정이 고양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것.

저자는 12세기에 등장한 궁정식 사랑으로 인해 동성애 커플은 이성애에 밀려나게 됐다고 설명한다. 즉 오늘날 이성애가 일반적인 사회가 된 것은 성적 취향의 문제가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헤게모니 다툼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19세기 말에는 이성애가 정신병 전문의들에 의해 잠시 치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문의들은 새로운 정신 질환들을 설명하며 미친 사랑이나 연애망상, 위험한 병리를 지칭하기 위해 '이성애'라는 용어를 썼다. 이성애는 오늘날 동성애와 흡사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던 것이다.

한때 기성세대들은 자식들이 왼손을 쓰면 야단을 쳐가며 오른손을 쓸 것을 강요해 왔다. 이들에게 왼손은 '쓰지 말아야 할' 손이다. 왼손은 왠지 불길하고, 오른손은 옳은 손이자 바른 손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나 이유가 없는 이런 편견은 왼손잡이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반인권적 인식이다.

이런 점에서 동성애 문화는 또 하나의 왼손잡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수십 년 동안의 생의학적 연구 끝에 1990년에 마침내 동성애는 질환이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원상회복'을 위한 노력과 주장들이 실행되며 끝이 없는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잡음의 반복 속에서 동성애자들은 묵묵히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홍석천, <커밍아웃>(tvN제공)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나치 통치 하의 유대인들의 고통을 따뜻한 가족애로 그려냈다. 역설적이고 슬픈 제목과 감성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며,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상을 수상하며 관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역시 이성애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의 고난과 역경을 '사랑'이라는 큰 시각으로 재조명했다. 하지만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인식에서 동성애자들의 '아름다운 인생'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