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시를 말하다] 도시화 그림자 기록하며 보편적 삶의 자리임을 되새겨

리슨투더시티의 '리버풀-도시 교환' 프로젝트 중
예를 들면,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는 현대 도시에서의 삶을 집약한다. 신에게 도전하듯 나날이 높고 거대해지는 그 위용은 문명의 구조적 지지대이자 공장, 광고판이자 결과물인 도시의 이상향을 가리킨다.

그 의미는 단지 시각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선과 습관을 특정하게 조직하는 내부 구조는 그들의 시야와 가치관을 반영하는 동시에 만들어낸다. '주상복합'이다.

잠자고 먹고 사랑을 나누는 집안일과 장 보고 옷 사고 헬스클럽에 가는 소비문화가 엘리베이터로 이어져 있다. 이 자족적이고 폐쇄된 구역에는 맨 땅과 가난한 사람들, 공사장과 낡은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없다. 도시와 자연의 관계,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는 불편한 일들, 역사와 풍속은 상기되지 않는다.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시야는 도시의 바닥으로부터 멀어진다.

'투자불패'의 신화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초국적 자본은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이 완벽하게 편리한 인공 환경을 증식시켰다. 지역 나름의 사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상표만 다른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지역성을 밀어내고 휘황찬란하게 들어선다. 한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분하도록 도왔던 고전적인 랜드마크의 정반대 지점에서, 이 반(反)-랜드마크는 기존의 삶들을 광고 이미지 같은 삶의 방식으로 통일시키고 있다.

오늘날 도시를 다루는 미술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이런 삶의 조건에 대면한다. 뒷골목의 더러움과 작은 구역의 전통, 길거리에서 잠든 사람들로부터 눈 감아 버린 거대한 환영이 이제 단지 도시의 야경일 뿐 아니라, 노골적인 일상문화로 등장한 사태에 대해 분석하거나 근심하거나 집요하게 기록하고 때론 저항하는 것이 미술의 주요 테마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정정주 작가의 '젠다이 플라자 상하이'
올해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정정주 작가의 작업은 오늘날 도시들의 보편적 속성을 거시적으로 보여준다. 자본의 이해에 의해 전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곳 중 하나인 중국 상하이를 미니어처로 재현한 작업은 단지 지형지물을 옮겼을 뿐 아니라, 그곳의 정서까지 고스란히 살려낸다. 웅장한 건물이 빽빽이 들어섰는데도 어쩐지 허하고 스산하다. 미니어처 내부에 설치된 조명, CCTV 카메라를 통해 영사되는 이미지들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환영임을 더욱 강조한다.

이런 자리에서 우리의 삶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 당하는 것이다. 아무리 슬럼가에 지어졌다고 해도,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에 입주할 수 있는 계층은 정해져 있다. 열외의 삶은 떠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지역의 연속성도 사라진다. 이런 이주와 단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상시적이다.

이를테면 유령 같은 현상이다. 임민욱 작가의 비디오 작업은 이 점을 드러낸다. '뉴타운 고스트'와 'SOS-채택된 불화'는 한국 개발주의의 상징적 장소인 신도시와 한강의 주변을 떠돌 듯 포착했다. 11월 17일까지 열리는 미디어시티서울2010에서는 신작 '손의 무게'를 선보였다. 4대강 공사 현장, 폐쇄된 한강유람선 선착장, 폐허 같은 아파트 단지 등을 적외선 카메라로 '순례'한 화면은 도시의 모순과 균열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우선 우리 자신이 도시에서, 그러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와 광고 밖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오늘날 도시 환경에 대처하는 기본적 방법이다. 강홍구 작가는 10년 넘게 재개발에 밀려나는 오래된 집과 동네를 찍어 왔다. 그것은 단지 감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지난 9월 이제는 사라진, 주변과의 관계와 생활의 자취가 어우러진 개별적인 집들 사진에 채색을 한 작업을 모아 <그 집> 전을 열면서 강홍구 작가는 말했다.

"고유의 개인적 삶을 포기하는 데서 한국의 현대화는 시작된다. 자발적으로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난 철거민이거나 강제된 유목민이 되어 도시로 몰려든다. 힘겹게 버티며 살아남아 아파트라도 가져야 약간 불안이 가시고 정체성이 형성된다. 성공한 후발 천민자본주의에서 비롯한 뒤틀리고 왜곡된 욕망이다. 사라져버린 집들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제 얼굴과 몸을 스스로 지워 기형으로 만들면서 행복해 하는 괴이한 세계다."

이수진 작가의 'Blind City-Beyond the Landscape'
도시와의 인간적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들은 때때로 전시장에 도시의 물적 토대를 재현한다. 가깝게는 재료부터, 멀게는 역사까지 관객이 직접 만지거나 생각할 수 있는 도시의 구성 요소를 작업에 끌어들인다. 그럼으로써 도시로부터 일방적으로 선택받거나 배제당하는 것이 아닌, 도시에 개입하고 자신의 삶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돌아보는 관계를 제안한다.

이수진 작가는 10월 30일까지 열리는 청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에 청계천의 풍경을 다시 펼쳐 놓았다. 그는 정치권력과 대중매체의 호객성 합작품인 복원된 청계천 이미지와 그 둘레에서 지속되고 있는 생활과 산업의 광경을 깍지 끼듯 합쳐 놓았다.

인근 종이 도매상과 인쇄소에서 가늘고 길게 잘려진 채 버려진 종이를 주워 와 층층이 쌓았고, 트로피 가게와 유리 가게에서 얻은 자투리 유리들을 모아 군데군데 풀숲처럼 세웠다. 양옆으로 '흐르는' 이 작품 'Blind City-Beyond the Landscape'는 복원된 청계천과 근처 빌딩숲을 은유하는 동시에 그곳에 내재된 문화와 속도까지 담고 있다.

올해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로 선정된 방병상 작가 역시 꾸준히 도시의 풍경과 문화를 탐색해 왔다. 'SHE IS...' 연작을 통해 당인리 발전소 수증기의 모양, 겨울 기후 데이터 등을 통해 서울의 단면을 드러내 보였던 그는 11월 7일까지 열리는 전에서 서울 근교이면서 군사지역, 농촌 같은 다양한 정체성이 복합되어 있는 도시인 파주시에 대한 신작을 선보인다. 개발을 지향하는 도시의 속성과 군사 문화, 자연환경의 상업화 등이 얽혀 만들어내는 이곳의 경관은 도시와 인간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생해 온 과정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지난 여름 서울 곳곳의 재개발 현장을 '관광 코스'로 개발해 관객들에게 체험시키는 작업을 했던 리슨투더시티는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이 세계의 도시들을 일률적으로 재편해 가는 현황에 맞선 초국적 미술 프로젝트 '리버풀-서울 도시 교환'이다.

서울의 참가자와 영국 리버풀의 참가자들에게 서로의 도시 이미지를 바탕으로 드로잉과 소설, 모형을 만들도록 했다. 서울의 참가자들은 지명 때문에 리버풀을 강(river)변의 한적하고 낭만적인 도시로 상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는 리버풀(Liverpool)의 철자를 잘못 안 결과다. 리버풀은 사실 쇠락한 공업 지역으로 영국 내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다. 도시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상상된 것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시에 대해서는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서울에 살면서도 정작 지자체의 슬로건이나 대중 매체의 스펙터클, 마천루와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로만 서울을 떠올린다면, 그 앎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리슨투더시티가 굳이 도시 이미지를 교환하는 것은 이런 질문을 상대방에 비춰 보기 위해서다. 그 결과도 리버풀과 서울에서 번갈아 열린다. 서울에서는 11월 3일부터 19일까지 공간해밀톤에서 볼 수 있다.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 디렉터는 "오늘날 도시 행정부는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상징과 슬로건을 제시하며 시민들이 그것을 믿고 따르기를 원한다. 일부 시민들은 이 상징에 동화되며, 일부 시민들은 상징과 실재 사이 균열을 발견한다. 정부에 의해 어느 날 탄생한 도시의 상징들, 혹은 상업광고와 언론에 의해 조장된 도시 대표 상징들은 사실 나르시시즘적 이미지일 뿐 실재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도시를 다루는 많은 미술 작업들은 환영이 아닌 환경으로서의 도시를 경험할 것을 요청한다. 도시의 변화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그 이해관계와 영향력에 대해 예민하게 느끼고 골똘히 헤아려볼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도시가 우리 사회와 시대의 보편적인 삶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습관이나 욕망까지도 특정한 방향으로 꾀려는 힘들이 작동하는 물리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이 복잡다단한 환영의 층들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