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시를 말하다] 인간과 도시의 관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다양한 연극들

연극 <서울소음>
고속성장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도시는 개인을 더욱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드는 곳이다.

오랫동안 무대는 이런 인간과 도시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조명해왔다. 특히 연극은 최근 몇 년 동안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암울한 자화상을 성찰하며 관객과 그 고통을 분담해왔다.

연극 <이발사를 살해한 한 남자에 대한 재판>(선욱현 작, 연출)은 가수라는 꿈을 키우기 위해 각박한 일상을 버티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실제 연예인 지망생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것도 해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경쟁에서 도태되며 좌절된 이들은 결국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이를 각색한 <바이올렛 시티>(선욱현 작, 연출)는 원작보다 도시의 어두운 면모를 더욱 강조해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아픔과 상처를 더 부각시켰다. 10년 동안 서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 벌레가 되어버린 이발사, 자기 욕망을 표현하는 여가수, 본능에 희생당하고 만 정희의 모습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서울소음>(조 펜홀 작, 박재완 연출)은 도시의 소음에 짓눌려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도시인의 비정상적 단면을 성찰한다.

연극 <잠 못드는 밤은 없다>
박재완 연출은 원래 '런던 위기 드라마(London crisis drama)'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의 인물들에서 서울 소시민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정신분열증세 자체를 사회적 이슈로 삼거나 소시민의 삶의 아픔으로 대입시키기보다는 공허의 속내를 진단하고, 같은 아픔에 빠진 이들과 그 아픔을 나누고 싶다"며 연출의 변을 밝힌다.

오늘날 거대도시의 공동화(空洞化)에서 불거지는 관계 단절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고독의 문제는 전 지구적인 문제다. '히키고모리'나 '이지메' 같은 소외의 문제가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은 <잠 못드는 밤은 없다>(히라타 오리자 작) 같은 작품으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박근형 연출로 국내에서도 선보인 이 작품은 말레이시아 리조트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을 통해 현재 일본사회의 폐단을 담아냈다. 자국 음식을 먹고, 자국 DVD를 빌려보는 일본인들은 자기네끼리 모여 살면서도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일본사회가 가진 시스템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울림이 컸던 것은 히키코모리와 이지메 등 일본사회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 역시 소통의 부재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여성이 겪는 스트레스를 발랄한 감성으로 그려낸 작품도 있다. 2006년 초연 후 매년 업그레이드를 거듭하고 있는 <도시녀의 칠거지악>(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유수미 연출)은 여성에게 '엄친딸', '골드미스', '동안' 등을 강요하는 도시생활을 7가지 에피소드로 담아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안나는 보편적인 도시여성들의 처지를 대변한다. 뚱뚱하면서도 발레를 하고 싶은 안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애를 하는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 안나, 도저히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어 낙태시키는 안나가 보여주는 일상은 외롭고, 무기력하며, 자만심에 빠지기도 하지만, 죄책감도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도시인의 삶을 비춘다. 그러나 세 명의 캐릭터는 그런 씁쓸한 삶 속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살아내야 하는 33살 도시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의 릴레이 공연- 백호울의 스피릿 탱고
한편 요즘 지역 예술공간으로 활발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문래동 철제공장 주변에선 '물레아트페스티벌'로 또 한번 도시 공간의 의미를 파고들었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은 2001년 무용과 퍼포먼스 등 젊은 예술가들의 거리춤판에서 시작되어, 2007년 문래동에서 실험적인 예술가들이 뜻을 모아 개최한 축제로, 올해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 함께 행사를 치렀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이 이 공간에 꾸준히 주목하는 이유는 문래동 철공장 거리가 우리 역사에서 잊혀져서는 안 되는 삶의 진실이 살아있는 공간이라고 여기기 때문. 페스티벌 관계자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에서 우리의 삶이 도구화되지 않고 생활인으로서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오래된 공장촌의 삶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사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등 모든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하고 색다른 사랑이나 진실,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일상생활 속에 있는 '사이'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상상력을 공유하자는 의도였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은 이와 관련해, 사진감성 그룹의 <문래-도시경관프로젝트> 기획사진전도 함께 개최했다. 이번 사진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문래동 도시공간이 갖는 역사성과 특수성을 담아내며, 일상에서 지금도 무수히 변화하고 있는 도시경관의 사이에 작가적 시선과 상상력을 담아냈다.


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
연극 <바이올렛 시티>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