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시를 말하다] 수 많은 건축물 총체 아닌 하나의 서사이자 캐릭터로 가능

영화 <옥희의 영화>
현대뿐만 아니라 역사 속 당대의 인간들은 도시의 삶 속에서 문명의 서사를 발전시켜 왔다.

영화가 인간사의 극적 단면을 담아내며 시대와 함께 할 수 있었던 데는 도시라는 공간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했다. 도시는 영화 속에서 단지 수많은 건축물의 총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이자 또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해 왔다.

영화사를 돌이켜 보면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나 장 뤽 고다르의 파리,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와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코시즈의 뉴욕, 왕자웨이의 홍콩이 그런 경우다. 인물들의 관계를 담은 도시는 공간이 갖는 자체의 성격과 함께 시대성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기도 한다.

국내에서 도시 속 현대인의 모습을 꾸준하게 비추고 있는 감독은 홍상수다. 그는 대도시의 화려한 일상이나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대담론을 말하지 않는다. 강원도(<강원도의 힘>, 부천(<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전주(<첩첩산중>), 제천, 제주(잘 알지도 못하면서>), 통영(<하하하>) 등 중소도시나 서울 아차산(<옥희의 영화>) 같은 서울의 주변부에서 소소한 일상을 담아낸다. 살면서 한 번쯤은 지나쳤을 도시의 일상공간에 대한 홍상수의 '낯설게 보기'는 관객에게 '생활의 발견'을 체험하게 한다.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퍼올린 영화들도 있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밀양이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통해 인간의 희망과 구원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형부와 처제의 금기된 사랑으로 개봉 전 흥미를 끈 박찬옥 감독의 <파주>는 사실 대도시의 자본이 유입돼 주민들의 삶이 급격히 변질되는 공간이다.

영화 <파주>
재중동포 감독 장률은 중국의 도시와 한국의 도시를 함께 담은 <중경>과 <이리>를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리(현재 전북 익산)에서 있었던 이리역 폭발사고 사건을 접한 그는 폭발 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도시를 그리기 위해 무섭게 변화하는 도시 '중경'을 동시에 스크린에 담아 세계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다.

한편 지난해에는 서울, 인천, 춘천, 부산, 제주 등 한국의 다섯 도시를 소재로 다섯 명의 감독들이 자신만의 개성으로 연출한 프로젝트 '영화, 한국을 만나다'가 선보여 관심을 끈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작비를 지원하는 이 프로젝트는 도시에 스민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문화를 영화에 담아내고자 기획됐다. 얼마 전 프로젝트의 시즌2의 시작과 함께 전남 여수와 경북 안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촬영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장 큰 울림을 준 영화는 지난 15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의 ACF(Asia Cinema Fund 아시아영화펀드)에서 배급지원작으로 선정된 다큐멘터리 <오월愛(애)>와 <꿈의 공장>이다. 5.18 광주 민주화항쟁을 민중의 입장에서 새롭게 조명한 김태일 감독의 <오월애>는 지난 9일 첫 상영에서 영화에 직접 출연했던 광주 시민들로부터 '이 영화가 바로 광주'라는 호평을 얻었다. 기타를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그 기타를 사용하는 국내외 뮤지션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그린 김성균 감독의 <꿈의 공장> 역시 잊힐 수도 있는 도시 주변인의 인권을 담아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