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역사를 바꾼 존 레논] 비틀즈의 리더, 뮤지션이자 평화주의자… 끊임없이 재평가탄생 70주년, 타계 30주기 앨범 제작 등 세계적 추모 행사

"그가 살아 있었다면 70세가 되었겠지요. 전 이번 프로젝트의 제목을 'Gimme some Truth(진실을 보여주시오)'로 정했습니다. 가장 심플하면서도 직설적인 이 문장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었지요. 한때 인류애를 이끌었던 그의 큰 힘을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노 요코는 올해 탄생 70주년과 타계 30주기를 맞은 존 레넌을 이같이 추모했다. 그녀가 여기에서 밝힌 프로젝트는 올해 디지털 리마스터링해 발매한 존 레넌의 전곡 앨범을 말한다.

1980년 12월 8일, 앨범을 제작하고 활동을 시작하려던 시기에 존 레넌은 한 열혈 팬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황망히 곁을 떠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지난 10월 9일, 그의 탄생일에 전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존 레넌의 고향 리버풀에서 레논의 첫 부인인 신시아와 장남 줄리언 레넌이 참석해 존 레넌을 기념하는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존 레넌이 세상을 떠나기 전 9년 동안 살았던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팬들이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을 부르며 뮤지션이자 평화주의자였던 그를 기억했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는 오노 요코 사이에서 낳은 션 레넌이 자선 콘서트를 열어 www.imaginepeacetower.com을 통해 생중계됐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팬들이 트위터와 이메일을 통해 존 레넌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세계 최대 인터넷 포털인 구글과 유튜브의 메인 화면까지도 존 레넌의 캐리커쳐로 장식됐다.

존 레논과 오노요코 사진제공=EMI. Iain Macmillan. © Yoko Ono
유튜브는 공식채널 www.youtube.com/johnlennon을 개설해, 오노 요코의 영상 메시지와 링고 스타, 브라이언 윌슨, 조나스 브라더스, 에어로스미스 등의 축하 영상을 게재했다.

비틀즈의 리더였지만 존 레넌은 홀로서기를 한 이후의 활동과 사후에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있다.

존 레넌, 록의 전설 되다

"우리는 신세계를 찾기 위한 60년대라는 배에 승선했다. 그리고 비틀즈는 그 배의 망루에 있었다." -존 레넌

1960년대는 비틀즈의 세상이었다. 1963년 이 리버풀 촌뜨기들은 처음엔 영국을, 이듬해에는 미국을, 이어 전 세계의 대중음악계를 장악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접수했던 세계의 대중음악은 비틀즈가 나타나면서 그 흐름을 미국이 아닌 영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존 레논의 청소년기와 밴드 '비틀즈' 결성 과정을 다룬 영화.
1964년 2월 9일 비틀즈가 처음으로 출연했던 CBS 텔레비전의 '에드 설리번 쇼'는 7300만 명이 지켜봤고, 이 시간 10대 청소년 범죄율이 제로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전설처럼 전해진다. 존 레넌은 이 밴드의 리더였다. 비틀즈의 전신으로 불리는 쿼리맨을 1957년에 결성했는데,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스튜어트 서프클리프, 피트 베스트 등이 그 멤버였다. 이후 링고스타가 합류해 완벽한 비틀즈 멤버가 탄생하기까지 존 레넌은 밴드를 제법 긴 시간 동안 이끌어왔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비틀즈란 위대한 밴드의 리더였다는 점만으로도 존 레넌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존 레넌이 정말로 위대한 이유는 비틀즈 출신이 아니라 오히려 해체 후 비틀즈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있다"고 강조한다. 존 레넌은 뮤지션이자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를 또 한 번 유명하게 한 것은 당시 닉슨 정부에 대한 강한 반골 기질과 반전의 메시지들이었다. 그가 생각했던 유토피아는 국경도, 종교도 없이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솔로앨범에 실은 'God'에서 "난 비틀즈가 아닌 나를 믿는다"고 말한 정도로 독자적인 그의 음악세계는 비틀즈 이후에 더욱 본격적으로 발현된다. 그의 첫 솔로 앨범 는 평단에서 그룹 출신 가수의 가장 뛰어난 앨범으로 꼽힌다. 저명한 비평가 로버트 힐번은 이 앨범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와 도덕시간에 배운 위인들의 어떤 저서보다도 진실을 전해주는 다시없는 소중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아티스트로서 그의 위대함은 현대의 음악인들에게도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김작가는 "그는 당시에 누릴 수 있던 각종 부와 안정적인 지위 대신에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민중들과 함께하면서 반전과 평화 등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실천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팝의 양심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존 레넌의 노래는 무엇일까? MBC 라디오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청취자를 대상으로 '존 레넌의 명곡 5곡'을 조사했다. 1위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Imagine'. 레넌의 무신론자, 반정부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곡이다. 뒤를 잇는 곡들은 'Love', 'Oh My Love', 'Woman', Stand by Me' 등이다.

존 레논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 <존 레논-In His Life> 사진제공=오픈하우스
김작가는 "그는 소리의 근원을 많이 연구한 사람이다. 컨츄리뮤직 같거나 아방가르드적인 음악도 많이 시도하면서 전방위적인 음악적 호기심을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고 전하며 "내가 생각하는 존 레넌의 최고의 명곡은 'God'과 'Power to the People'이다. 전자는 존 레넌 사상의 진수고 후자는 철학의 진수다"라고 극찬했다.

존의 영원한 뮤즈, 오노 요코

비틀매니아들에게 종종 '마녀' 혹은 '일본 잡귀'라 불려온 오노 요코. 7살 연상의 그녀에게 푹 빠졌던 존은 첫 부인인 신시아와 이혼했고, 결국 비틀즈와도 결별했다. 오노 요코는 존 레넌이 품은 거대한 세계의 두 가지 큰 축의 하나였다. 하나가 세계 평화였다면 다른 하나는 오노 요코였던 것. 그는 그녀를 만난 후 '존 오노 레넌'이란 이름을 갖게 됐고 'oh Yoko!', 'Yoko, Yoko', 'Dear Yoko' 등 그녀에 대한 사랑을 노골적으로 노래한 곡들을 지었다.

오노 요코는 존 레넌에게 신성한 뮤즈였다. 전 세계의 작가들이 자유롭게 협업하며 예술 장르간 경계를 허물려던 플럭서스 운동의 초창기 멤버였던 오노 요코는 설치미술과 영화를 제작한 것은 물론 프로그레시브,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적잖은 영향을 준 예술가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중요한 예술 파트너였는데, 이는 지난 6월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열린 <오노 요코> 특별 기획전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었다. 두 부부 예술가가 공동 작업한 19분 30초짜리 영화 <두 동정녀 Two Virgins>에는 둘의 모습이 두 화면으로 겹쳐진 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진다.

존 레논 탄생 70주년, 타계 3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 앨범 출시 사진제공=EMI. Iain Macmillan. © Yoko Ono
그들이 가장 야심 차게 만든 작품은 76분짜리 영화 <폭행 Rape>이다. 유산한 오노 요코가 존과 함께 병원에 머물 때 촬영된 것으로, 영어를 하지 못하는 헝가리 출신의 어린 배우를 카메라에 의해 집요하게 추격당하는 상황이 잡혀 있다.

존과 오노 요코는 암스테르담에서 일주일 동안 침대에 머물면서 비폭력 평화시위인 '베드인 Bed-in'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보낸 시간은 <존과 요코, 평화에 노래를 John & Yoko Give Peace a Song>의 다큐멘터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75년부터 사망까지 약 5년 정도 존 레넌은 외부 활동을 쉬고 '하우스 허즈번드(house husband)', 즉 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집안일을 하고 아들 션 레넌을 키우면서. '우먼 이즈 더 니거 오브 더 월드(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처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많은 화두를 던졌던 그의 실천적 행위 중 하나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책, 음반, 영화 속 존 레넌은…?

지난 10월 4일 발매된 존 레넌의 디지털 리마스터드 전곡 앨범은 벌써 2만 장이 출고됐다. 예약판매만 1만 장. 지난해 7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비틀즈의 디지털 리마스터드 앨범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존 레넌의 콜렉션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오노 요코의 총 지휘 하에 야심 차게 진행된 이번 콜렉션은 런던의 EMI 애비로드 스튜디오 엔지니어 팀들도 함께했다.

존 레논 사진제공=EMI. Iain Macmillan. © Yoko Ono
일단 구성이 다채롭다. 그가 생전에 남긴 8장의 스튜디오 앨범 외에 CD, CD+DVD 두 가지 버전의 베스트 히트곡 컴필레이션 을 내놨다. 여기에 4가지 테마로 선곡된 4CD 박스 , 8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미발표 음원 2CD를 수록한 11CD의 박스 등 2종 박스세트가 새로운 콜렉션으로 추가되어 있다.

그의 유작 앨범이 된 는 오리지널 버전과 함께 오노 요코와 잭 더글라스가 리믹스한 새로운 버전이 추가되어 2CD의 로 발매됐다. 오노 요코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면서 기존의 세션 연주보다는 존 레넌의 목소리가 한층 선명하게 들리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혔다.

존 레넌은 책으로도 나왔다. 물론 이전에도 그의 전기가 없지 않았지만 이번에 출간된 <존 레넌 - In His Life>(존 블래니 저, 서강석, 조소영 옮김, 오픈하우스 발행)은 존 레넌 전기의 '마침표'라고 표현될 만큼 그의 일대기가 사진과 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존 레넌의 유년시절부터 솔로활동 이후에 이르는 사진이 넓은 판형으로 시원시원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 책은 이미 미국, 일본, 독일, 브라질 등 1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있으며, 최근 한국에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됐다. 오노 요코는 <존 레넌 - In His Life>에서 "여기 담긴 사진은 경이로 가득 찼던 존의 삶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그의 인생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며, 또 여러모로 마법과 같았습니다. 존이 말했지요.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할 때 스쳐가는 순간들이 바로 당신의 인생이다'고"라는 서문을 적었다.

존 레넌이 떠난 12월에는 비틀즈 탄생 이전의 존 레넌이 스크린으로 공개된다. <노웨어 보이>는 존 레넌의 이복동생 줄리아 바드가 쓴 존 레넌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평범한 영국 소년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비틀즈의 전신 '쿼리맨'의 결성 과정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유년시절이 그려진다. 여기에 그가 늘 가슴 속으로 그리워한 엄마와 친엄마처럼 그를 보살폈던 이모와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더해진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