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재발견] 정소영, 로랑 페리에라 등, 다문화 지역 이태원 이미지 형상화

"This is real city."

벨기에 작가 로랑 페레이라에게 이태원은 진짜 도시다. 이태원의 그 말할 수 없는 혼재가 그에게는 너무 낯익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 눈에 이태원은 외국인 거주지처럼 보이겠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꼭 자기 동네처럼 보여요."

세계화 시대,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도시는 너무나 많다. 작가가 나고 자란 곳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사는 곳이었다. 그에게 있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에너지야말로 도시의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태원은 서울에서 발견한 몇 안 되는 리얼리즘 중 하나다.

숭실대학교 교수로, 한국에 온 지 5년째에 접어드는 페레이라는 현재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의 23번째 전시를 위해 작업 중이다. 정소영 작가가 기획하고, 페레이라를 비롯해 정소영, 이은실, 권재동, 김정민, 김보영, 박유리, 손상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제는 '섀도우 시티 인 이태원(Shadow city in Itawon)'.

로랑 페레이라(왼쪽)와 정소영
해밀톤 호텔에서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이르는 거리를 놓고 각자가 생각하는 이태원의 이미지를 그리는 작업이다. 방식은 지도를 펴 놓고 한남동 길의 윤곽을 그린 후 그 지도를 바닥 삼아, 그 위로 상상 속의 이태원을 입체로 키워내는 식이다. 작은 정사각형 바닥이 위로 올라갈수록 거대한 육각형이 되기도 하고, 동그라미 바닥이 뒤틀린 네모가 되기도 한다.

가분수가 된 조형물을 바닥에 밀어 넘어뜨리고, 바닥에 스티로폼 판을 댄 다음 꼭대기 부분에서 바닥 부분을 향해 조명을 비춘다. 그러면 스티로폼 스크린에 실제 한남동 길의 윤곽이 진한 그림자로 나타나고, 상상 속의 이태원의 윤곽이 연하게 그 위를 덮는다. 바로 그림자 도시다.

작업 대상으로 이태원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로, 이태원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 지역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듯하면서도 꼭 달라 붙어 있다. 회교도, 부자, 외국어 선생님들이 이 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딱 붙이고 살아간다.

이태원의 물리적인 모습이다(Physical Itaewon: 피지컬 이태원). 여기에서 에너지가 나온다. 이태원은 홍대, 압구정동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현대문화가 역동적으로 발산되는 곳 중 하나다.

'이태원 정글'
이태원의 문화가 전형적인 한국의 현대문화를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고 방치된 구역은 오히려 옛날 모습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 이태원 길을 기준으로 저 아래쪽(보광동 방향)은 영화 <오발탄>에 나오는 것 같은 70~80년대의 풍경 그대로다. 여기에 최근 한남동 길을 중심으로 유입되고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원주민들과 서로 얽히고 설키며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그 중에는 강남에서 놀러 오는 사람도 있고, 골목에 입주한 작가들도 있다. 이태원의 변화는 주로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저 위 부유층 사람들이 이쪽으로 내려올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아까 이야기한 피지컬 이태원은 무슨 뜻인가?

도시를 형성하는 건 건축가도 시멘트도 아니다. 사람들이 그 도시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 아이디어, 의식이 도시를 만든다. 물리적으로 공존하는 다양한 부류의 거주자들이 그 도시를 만드는 핵심 원동력이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계층으로, 섞이지는 않지만 계속 달라 붙어 있다.

'섀도우 시티 인 이태원'은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 각자의 아이디어를 형상화했다. 한남동 거리를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특별한 것이 없다. 다른 지역과 비슷한 모양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 이면으로 들어가면 특별한 모습이 나온다.

그럼 당신과 공동 참여자들이 이태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그건 각자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공동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내야 하니까. 거주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기억이 점차 쌓인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난 이들은 자주 가는 장소와 그 장소에 대한 이미지로 각자 다른 것을 선택할 것이다.

한국인은 한국인대로, 영어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대로, 회교도는 회교도대로 모든 선호하는 장소가 다르다. A가 생각하는 이태원은 게이바와 식당, 커피숍일 수 있고, B가 생각하는 이태원은 옷가게와 술집일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한꺼번에 담아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렇게 그림자로 그려진 이태원은 일종의 정글이다.

그럼, 페레이라 당신의 이태원은 뭔가

글쎄, 지금 당장 말하기는 어렵지만…내 기억 속 강렬한 이태원의 이미지는 새벽의 클럽이다. 새벽 2시에 이태원의 클럽에 가 본 적 있나? 도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건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클럽에 모여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그들을 보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조금 무섭기도 하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