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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관람형식을 바꾸다

경기창작센터 <섬>, 강진 세라돈 아트 프로젝트 등 선보여
  • 경기창작센터 <섬> 전에 전시된 카멜 그레코 작가의 '노래하는 마을'
'답사'가 고색창연한 일이던 시절은 지났다. 적어도 미술 영역에서는 그렇다. 관객이 작품을 찾아다니며 걷고, 마주치고, 느끼는 답사의 형식은 다양하고 흥미롭게 응용되고 있다. 답사를 통해 관객은 미술을 더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 작가들 역시 답사의 특징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여행 가이드가 된 작가들

지난 10월 22일과 23일, 한 무리의 관객들이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와 선감도를 답사 중이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관객이다. 이곳에 위치한 미술 작가 레지던스 기관인 경기창작센터의 지역협력 프로젝트 전시 <섬>을 보러 온 길이다. 작가들이 이 일대 전체를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직접 작품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경기창작센터 입주 작가들이 관객들을 골탕 먹이려고 한 일은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현장에 설치된 작품은 지역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답사 형식으로 체험하는 미술은 한정된 공간에서 만나는 미술과는 확실히 다르다.

미국 작가 카엘 그레코는 대부도 펜션촌을 전시장으로 삼았다. 미국 교외의 집을 본떠 만든 이곳에 꼭 어울리도록 영어 노래 합창을 '설치'했다. 그는 매주 펜션 입구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숙박객들을 초대하는 '이웃집 노래방'을 진행해 왔다. 이 행사를 통해 녹음된 영어 노래 소리를 합쳐 전시 기간 동안 펜션촌에 울려 퍼지도록 틀어 놓았다.

  • 경기창작센터 <섬> 전에 전시된 요하이 아브라하미 작가의 '카펫 위의 개들'
작품 제목은 '노래하는 마을'. 답사하던 관객들은 이 국적불명의 풍경과 노랫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해한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이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대부도 펜션촌에서 미국을 향한 한국사회의 기이한 동경을 읽어낸 작가의 시선을 관객 스스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경기창작센터 앞 100년 된 빈 한옥집은 전시 기간 중 지역 자료관 '카펫 위의 개들'로 탈바꿈했다. 이스라엘 작가 요하이 아브라하미가 동네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전시한 것. 오래되고 버려진 것들이 이곳에서만큼은 지역의 역사와 일상을 증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역, 일상적 삶의 환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공공미술의 경향 속에서 답사는 점점 중요한 관람 형식이 되고 있다. 작가는 여행 가이드를 자처하며, 작품뿐 아니라 관객의 동선까지 고안해 낸다.

<섬>에 참여한 이기언, 강정호 작가는 안산시와 대부도를 잇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 123번 시내버스에 주목했다. 매일 관광객은 물론 출퇴근하는 지역 주민도 싣고 나르는 버스다. 하지만 같은 버스를 탔다고 해서 관광객과 지역 주민에게 창밖 풍경이 똑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생각과 다른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들은 그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 지역의 특성을 설명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녹음해 버스 정류장 안내 방송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작업을 했다. 관객 자신이 전시를 찾아오는 과정 자체를 낯설게 만든 것이다.

  • 강진 세라돈 아트 프로젝트의 답사 프로그램
자연과 역사, 미술의 만남

전남 강진에서 열리는 '강진 세라돈 아트 프로젝트 2010'에서는 자연과 역사, 미술을 결합시킨 답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강진 청자를 모티프로 한 미술작품을 영랑생가와 백련사, 강진청자박물관 등 강진의 역사문화적 명소에 전시해 둘러보도록 하는 것. 답사 코스는 미술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길이다.

관객의 편의를 위해 광주비엔날레 전시장과 연계된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다. 11월7일까지 매주 금, 토, 일요일 오후 1시에 전시장 정문에서 출발한다.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미술 프로젝트와 결합시켜 성공한 외국 사례로는 독일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작은 마을 뮌스터에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가 사죄의 뜻으로 작품을 기증하면서 시작되었다. 작가로 하여금 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전시작 중 일부는 영구 설치한 덕에 뮌스터시 전체가 야외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작품이 특정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필히 답사를 다녀야 하지만 이 번거로움은 오히려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세계 관객을 불러오는 매력이 되었다. 뮌스터시의 역사적 정취가 또 하나의 답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 경기창작센터 <섬> 전에 전시된 이기언, 강정호 작가의 '123'
지난 10월 7월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은 성북동 일대의 미술사적 명소를 따라가는 답사 프로그램 '성북동을 걷다-예술가의 길'을 마련했다. 예부터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성북구 지역의 문화적 지형을 체험하는 내용이다.

화가 장승업 집터, 미술사학자 최순우 옛 집 등 미술인의 자취와 운우미술관과 간송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 심우장과 서울 성곽 등 역사적 기억이 코스 안에 포함된다.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성북동의 문화적 풍경을 본다. 10월 27일 시작해 11월25일까지 매주 수,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다.

삶의 공간의 문화적 가치를 따라

미술행위로서의 답사는 삶의 공간 자체의 문화적 가치를 다시 보고 익히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문화재단이 2007년 시작한 서울문화예술탐방 프로그램은 미술은 물론 건축, 문학, 연극 등 다양한 테마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까지 약 350회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는 기존의 문화적 자원뿐 아니라 새롭게 생겨난 문화적 현상과 스쳐 지나갔던 범상한 풍경까지 재조명했다는 것. 상상마당과 함께 기획한 '홍대 앞 재발견' 코스에는 상상마당 공연장에서 열리는 리허설, 희망시장이 열리는 어린이 놀이터, 최근에 생긴 다원문화공간, 미술작가와 인디밴드 만남 등의 메뉴가 포함됐다.

'건축&디자인 탐방'의 스펙트럼은 건축상을 받은 서울의 랜드마크 격 건물과 역사적 거리는 물론 현대적으로 탈바꿈한 한옥, 자연과 어울리는 건물 등 최신의 건축 디자인 이슈까지 아울렀다.

서울문화예술탐방 프로그램은 서울의 문화를 정리하고 알리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온라인 카페에 축적된 답사의 기억은 생생한 정보가 되었다.

홍대 앞 상상마당 갤러리와 대안 공간들이 매년 12월 개최하는 아트 페어 '서교난장'에는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작가들의 작품만이 아니다. 대안 공간들 자체가 볼거리다. 젊은 미술인들이 주류 제도 바깥에서 대안문화를 만들어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홍대 앞 특유의 아기한 골목을 누비는 체험은 덤이다.

미술 작가들도 삶의 공간을 다시 체험하고 기억하는 답사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작가 그룹 리슨투더시티는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쇠락해가는 재래시장과 신축 아파트를 잇는 코스, 재개발 지역과 대형 마트를 잇는 코스, 복원된 청계천을 따라가며 환경적 영향을 직접 확인하는 코스, 강남 모델 하우스 코스 등을 통한 서울 투어를 진행했다.

이 길에서 관객이 마주한 작품은 서울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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