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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위한 디자인인가

도시 경쟁력과 경제적 부가가치 높이는 '만능열쇠' 인식 팽배
상품 아닌 사고력과 상상력, 소통으로서의 공공디자인 필요
  • 2010 세계디자인수도 서울을 기념해 열린 <서울디자인자산>전
#1 "포장 아닐까요? 좀 세련된 포장이요."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스타일링과 구분되지 않는 것 같아요. 표면을 예쁘게 만드는 일을 가리킨다는 점에서요."(이영선 에코파티메아리 홍보 매니저)

요즘 시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디자인'의 뜻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들이 돌아왔다. 올 한 해 세계디자인수도였던 서울시민이라면 더욱 공감할지 모르겠다. 디자인이라는 명분으로 광화문 광장이 꽃밭이 되고 허름한 동네들이 단장되는 대대적인 환경 미화를 목격했으니 말이다.

#2 "'디자인 코리아'에서 나타나는 정부의 통치 담론 정책, '디자인 경영' 같은 새로운 경영 담론 또는 상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이너스 에디션' 류의 상품, '성공하는 삶을 디자인하라'는 식의 자기계발 담론 등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디자인이란 언표와 조우한다.(중략) 디자인은 사물,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일 그것을 제조하고 소비하는 사회적 행위에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디자인이 일상생활을 둘러싼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서동진, <디자인 멜랑콜리아>)

백화점과 기업의 디자인 부서를 뛰쳐나온 '디자인'의 현대적 용법은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상품은 물론 기업의 경영 방식에 접목되는가 하면, 자기계발서의 지침으로 등장한다. 최근엔 그 위세를 몰아 공공 영역에 진출, 건물과 거리까지 점령한 탓에 누구라도 매일 디자인과 마주치지 않고는 걸어 다니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디자인은 지금 가장 '핫'한 대중문화가 되었다.

  • 서울디자인올림픽
도깨비 방망이가 된 한국디자인

그런데 한꺼번에 많은, 너무 많은 디자인'들'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디자인이 무엇인지 헛갈리기도 한다. 익숙한 단어도 여러 번 되뇌다 보면 문득 낯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뿐만이 아니고, 당신 탓도 아니다.

최범 디자인평론가는 지난 3월 한 패션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디자인은 우리 사회에서 허공을 날아다니는 대표적인 용어"라며 "제발 집 나와서 고생하는 이 영어 단어를 더 이상 학대하지 말아 달라"고 '디자인 서울'에 부탁한 적이 있다.

디자이너에게도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15년 경력의 이정혜 디자이너도 "그동안 디자인에 대한 사용법이 계속 바뀌어 왔다. 지금 디자인 담론을 이끌어가는 정치권의 용법은 디자인계 내부의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한 일간지에서 디자인 전문 기자로 일했던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는 "사회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이해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울디자인한마당
전문가들도 혼란에 빠질 만큼 급격히 한국사회의 허공을 뒤덮은 디자인 담론의 정체는 무엇일까. 디자인 관련 공공사업과 행사에서 단서를 찾아 봤다. '디자인 서울'은 그 취지를 이렇게 밝힌다.

"21세기는 감성을 파는 디자인의 시대입니다. 누구나 한번 찾고 싶은 관광도시, 가장 살고 싶은 명품 도시, 디자인 수도 서울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서울총괄본부의 행보가 시작됩니다." 2003년부터 지식경제부 주최로 열리고 있는 '디자인 코리아'에서 디자인은 "최신 기술력과의 융합을 통해 환경과 인간을 배려하며 새로운 가치와 트렌드를 창출해 온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시대의 주요한 성장 동력"이다.

두드러지는 것은 디자인에 대한 기대다. 디자인은 도시 경쟁력과 경제적 부가가치로 통하는 만능 열쇠처럼 이야기된다. 지자체 단위로 정치가 재편되고 성장이 침체된 상황을 극복하려는 구조적 기대들이 디자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한번 휘두르면 뚝딱 보물을 만들어내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접사로서의 디자인의 새로운 지위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가

이런 상황의 심각성은 시민이자 소비자인 우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개되고 있고, 실제로 삶의 환경을 바꾸고 있다는 데 있다.

아마도 올해 디자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가장 기여했을 '디자인 서울' 사업 과정은 디자인을 둘러싼 오해가 일상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잘 보여줬다.

디자인에 대한 서울시의 과도한 기대는 '공공 디자인'을 '공공 기관의 디자인'으로 오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의 지도는 빠르게 바뀌었고 시민과의 소통 없이 추진된 사업들은 종종 마찰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 문화적 반발도 나타났다. 작가 그룹인 FF는 서울 곳곳을 도배하다시피한 '디자인 때문에 살 맛 나요', '서울이 좋아요' 문구 홍보물에 시민들에게서 제안받은 문구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다가 '불법'이라는 서울시의 경고를 받기도 했고, '디자인 서울' 때문에 오히려 디자인 울렁증에 걸린 미술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디자인 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을 열기도 했다.

서울시는 뒤늦게 시민과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지난 9월 초에는 시민대토론회를 마련했지만 "모든 사람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열려 있는 디자인"(김은산, <비밀 많은 디자인씨>) 혹은 "가난한 자를 대신해서 그들의 상상을 완성시켜주는 디자인"(양요나, <생각대로 되는 공공디자인>) 같은 공공 디자인의 뜻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밀려난 후였다.

'디자인 서울'에서의 공공 디자인의 처지는 부풀려진 디자인 담론에 질식해 디자인과 서먹해진 우리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 명분과는 다르게 이런 디자인 담론은 시민이자 소비자인 우리에게 별로 필요 없다. 오히려 혼란에 빠진 우리에게 디자인에 대해 선택할 여지는 예쁘고 값비싼 상품을 사거나 공공 디자인이라고 주장되는 볼거리를 구경하는 것뿐이다. 디자인은 이렇게 중요하다는데 우리에겐 권리가 없다.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을 지나갔는데 간판이 모두 같은 디자인으로 정비되었더라고요.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어떻게 된 건지 여쭤봤더니 서울시에서 무료로 바꿔준다고 해서 바꾸셨대요. 그런데 좀 씁쓸한 건, 바뀌기 전 이 가게 간판은 지난 여름 아저씨가 직접 서체와 색을 골라서 만든 작품이었다는 거예요. 서울시의 '공공 디자인' 때문에 아저씨의 디자인은 기회를 잃은 거죠."

현시원 큐레이터의 체험담처럼 오늘 디자인 도시에서 구멍가게 아저씨는 마음대로 간판 만들 권리가 없다.

삶을 돌보는 디자인 능력

답답한 게 맞다. 양요나 디자이너의 정답처럼 "디자인 문화는 디자이너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누구나 디자인 능력을 가질 때 형성된다." 디자인 능력이란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적합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자신의 삶의 환경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가꿀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비밀 많은 디자인씨>에는 "자기 삶과 환경을 결정할 자유와 통제력을 갖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디자인에 스스로 더 많이 개입하는 것이 디자인을 잘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디자인은 주어진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고, 지금 여기에서 어떠한 선택이 가능하고, 그 결과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할까, 이 물건의 재료로 자연이 얼마나 파괴되었을까, 원가를 줄이기 위해 사람과 자연에 해로운 원료를 사용하지는 않았을까, 포장은 이렇게 해야 할까, 다른 것을 사지 않고 함께 사용하거나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런 모든 일상의 문제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더 많이 개입하고, 더 많이 책임지는 과정이 디자인"이라는 해석에 드디어 의문이 풀린다. 그래서 디자인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다.

디자인 때문에 살 맛 나는 세상을 위해

오늘날 공공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등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디자인이 각광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엔 디자인으로 돈을 벌거나 힘을 얻으려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디자인은 세상을 더 공정하고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정치적 의미에 방점을 찍은 디자인도 있다. 플리머스 예술대학 교수인 알라스테어 풔드 루크는 <디자인 액티비즘>에서 환경과 인간을 중심에 두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전략으로서의 디자인을 소개한다.

2008년 내셔널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단체 '인간을 위한 건축'은 도움이 필요한 전 세계 곳곳에서 디자인 능력을 발휘한다. 코소보 난민을 위한 집을 짓고, 재해 지역을 복구하고, 아프리카에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한 이동식 보건소를 도입하기도 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디자이너들로부터 제안받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이 디자인들은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을 통해 현지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 사례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디자인이 가능할까. 그것이야말로 문화의 문제다. 상품이 아닌 사고력과 상상력, 소통으로서의 디자인이 대중문화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디자인 때문에 살 맛 난다'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능력은 구호가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길러진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김은산 씨가 디자인에 대해 책을 쓸 "엄두를 내게 된 것"은 청소년직업학교인 하자센터의 교사로 근무한 경험 때문이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의지가 강했어요. 제 전공인 시각문화를 가르쳤는데 '왜 배워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지요. 아이들에겐 지식의 일상적 의미, 삶과의 관계가 중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시각문화 이론이 삶의 자리에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지요. 그게 디자인이었어요."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는 <디자인 멜랑콜리아>에서 "오늘날 디자인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상상적 재현"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소설과 영화가 담당했던 그 역할이 디자인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닐 것이다.

"디자인은 '지금 여기서 마음껏 아름답고 행복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디자인의 능력을 반전시킨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상상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디자인의 능력이 정치와 만날 수 있다면? 디자인이 민주주의와 조우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 디자인의 권리 찾기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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