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윤명숙 개인전 '시간의 비늘'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표정이 있는지 당신은 모른다. '셀카' 이전의 시대에 당신은 종종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에 놀라곤 했다.

웃는다고 웃었는데도 서늘해 보이거나, 위엄 있게 입을 다물었는데 장난기가 가시지 않았거나, 셔터가 눌리는 줄도 모르고 방심해 있거나 한 묘한 순간들 때문에. 당신에게 행복함, 슬픔, 화남 같은 감정의 분류체계에 가두어지지 않는 표정들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마주했기 때문에.

어떤 표정은 그때 카메라 뒤에 있던 사람을 불러 온다. 그를 향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눈이 그토록 총명했을 리 없다. 그렇게 정갈한 미소, 그렇게 따뜻한 얼굴도 없었을 것이다.

그 자체가 당신과 그 사이의 티 없던 한 순간이므로, 어떤 표정은 그가 당신을 얼마나 지극히 바라봐 주었는지 비로소 마주하게 한다. 두고두고, 어쩌면 영원히 마음을 내려앉게 만든다.

바다에 얼마나 많은 표정이 있는지도 당신은 모른다. 언젠가 윤명숙 작가의 바다 사진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한여름 휴가철의 인상처럼 청량한 줄만 알았던 바다가 성당 종소리처럼 숙연하거나 참새 발자국 같이 경쾌한 빛을 품고 있기도 해서. 그게 신비해서 오래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간의 비늘> 전에 전시된 윤명숙 작가의 신작들은 바다와 작가 사이를 담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정성껏 자신을 향한 작가의 카메라에 응답한 것처럼 바다는 세상에 없던 표정을 내보인다.

화사하게 솟구치고 고양이가 앞발로 할퀴는 듯한 파도를 일으키더니 깊은 밤 속으로 아득히 물러나기도 한다. 당신이 숨죽여 마주한 그 표정들은 바다와 작가 사이 은밀하고 온전한 순간들이다. 당신은 바다를 보는지 작가의 마음을 보는지, 움직임을 보는지 시간을 보는지, 눈 앞을 보는지 기억을 더듬는지 알지 못한다.

소설가 윤후명은 "윤명숙이 끌어당긴 저 바다"에 대해 이렇게 쓴다.

"이제 내 앞엔 무엇인가 참을 수 없는 이야기를 물보라로 치솟게 하는 바다가 있다. 바다는 커다란 용골(龍骨)을 쳐들고 심연을 노 저어 온다. 빛인가 파도인가 하는 순간들이 교차하며 단애에 부딪혀 깊은 마음을 전한다.(중략) 파도에 마음을 싣는다. 그러니까 그건 파도가 아니라 심연의 빛의 돋을새김이다. 이제 바다는 기억 한 올 한 올을 아로새기며 새로이 탄생한다."(<시간의 비늘> 전시 서문 중)

<시간의 비늘> 전은 윤명숙 작가의 네 번째 바다사진전이다. 작가는 비로소 "바다를 바다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긴 시간을 통해, 그럴 수 있게 되었다."

전시는 11월23일부터 12월6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류가헌에서 열린다. 02-720-201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