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Rookie of the Year 2009~2010' 옐로우 몬스터즈
아무리 아이돌(idol)이 대세라지만 모두가 아이돌 음악을 좋아할 수는 없다. 뜻 모를 의성어가 아닌, 받아 적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가사도 듣고 싶다.

출퇴근길을 채워줄 신나는 음악도 좋지만, 진지한 생각을 하거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될 음악도 필요하다. 우리에겐 더 많은 음악이, 더 넓은 선택의 폭이 필요하다.

지금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우려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외형적으로는 팽창하는 듯 보이지만 다양성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을 중심으로 팔리는 음악만 재생산되고, 사람들도 그런 음악에만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구조라는 것이다.

인디음악 제작자들은 "길목이 다 막혀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화 이후 세계 음악시장의 다양성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한국의 상황은 유난히 획일적이다. 일본 대중음악 시장의 50%, 영국 시장의 40% 정도가 인디음악이다.

서교음악자치회 최원민 회장은 "소수의 대규모 기획사가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4대 메이저 기획사가 대중음악 시장의 80~90%를 차지했던 미국도 디지털화 후 바뀌어 메이저 기획사의 비중은 40% 정도"라고 말했다.

KT&G상상마당의 레이블마켓
획일적인 문화에 저력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대중음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싹틔울 수 있는 토양을 일구는 기초 작업이 중요하다. 그런 고민을 실천하는 시도들을 소개한다.

자구책 마련에 나선 인디음악신

척박한 상황에서 인디음악은 멸종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 왔다. 올해 음악페스티벌은 인디 뮤지션과 다양한 음악에 목마른 관객이 만나는 새로운 대중매체로 발돋움했다.

2008년 장기하와얼굴들이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을 계기로 이름을 알렸듯, 음악페스티벌은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라면 활동 기간에 상관없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돌파구가 됐다.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는 "해외 뮤지션의 경우 신보를 내면 대형음악페스티벌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도 그런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대중음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블마켓 역시 인디음악 유통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홍대 앞 KT&G상상마당은 2007년부터 매년 인디 음반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공연과 세미나 등 부대행사를 결합한 형태의 레이블마켓을 열고 있다.

올해 레이블마켓은 12월 17일부터 시작되며 음반과 미술 작업을 결합한 전시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 갤럭시익스프레스, 더라이엇츠 등이 그 주인공. 레이블마켓을 기획한 시각예술팀 홍현선 큐레이터는 "매년 진행할 때마다 인디음악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도 아이돌만의 성과가 아니다. 장기하와얼굴들은 11월 22일, 23일 양일간 일본에서 첫 공연을 열고 음반을 발매한다. 장기하와얼굴들의 소속 레이블인 붕가붕가레코드가 일본 뮤지션 토쿠마루 슈고의 라이센스 음반을 발매한 인연으로 성사된 일이다.

홍대 앞 40여 개 인디레이블 합의체인 서교음악자치회는 일본 인디음악 유통사 바운디와 교류프로젝트인 서울도쿄사운드브릿지를 시작한다. 3개월에 한 번씩 3년간 도쿄 시부야와 서울 홍대 앞에서 한일 뮤지션 합동 공연을 열며 양국 인디레이블 간 체계적인 교류 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11월 28일 시부야의 밀키웨이라이브클럽, 12월 4일 홍대 앞 KT&G상상마당에서 첫 공연이 열린다. 한국에서는 크라잉넛과 보드카레인, 일본에서는 피아노잭과 오또가 첫 타자가 됐다. 서교음악자치회는 앞으로 교류의 범위를 중국과 싱가폴,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으로 넓혀나갈 예정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최원민 회장은 "2008년부터 해외 음악계의 반응을 살폈는데 한국 인디음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했다. 독특하단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조만간 인터넷을 통한 해외 진출도 실현될 것 같다. 인디레이블 루비살롱은 내년 초 뉴욕 음악신과의 교류를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할 예정이다. 리규영 대표는 "당장 해외에 자주 가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터넷을 활용한 툴을 많이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

"대중음악에 대해 신기할 정도로 이야기가 없습니다."

문화기획그룹 가슴네트워크의 박준흠 대표는 대중음악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없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다. 담론이 없으니 체계가 잡히지 않고 현실을 반영한 정책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음악 전문지는 변방으로 밀려난 지 오래고, 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실릴 매체는 거의 없다. 그나마 음악평론가들이 자발적으로 꾸려가는 웹진이 있지만, 온라인 매체의 한계 때문에 긴 글은 쓰기 어렵다.

가슴네트워크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0가슴네트워크축제를 마련한다. 공연과 무크지 발행, 어워드 프로그램과 학술제 등으로 구성되는 이 연례행사는 올해 한국 대중음악의 이슈를 전방위적으로 탐색하는 장이다.

12월 5일 홍대 앞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리는 공연은 '2010 Rookie & Respect'라는 제목처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신인 뮤지션이 1960~90년대 록의 고전을 연주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창작과 연주 역량을 갖춘 신인 발굴과 고전 재조명을 동시에 하는 무대인 셈이다. 현재 대중매체의 대중음악에 빠져있는 부분이다.

무크지의 주인공도 신인 뮤지션이다. 박주원과 아폴로18, 9와 숫자들, 칵스, 엘로우 몬스터즈 등 '루키 오브 더 이어 Rookie of the Year 2009~2010'을 소개하는 기사가 커버스토리다.

'2010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현주소-지금, 여기 대중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12개'라는 주제를 다루는 무크지의 특집 기사와 한국대중음악학회와 함께 주관하는 학술제에서는 한국 대중음악을 둘러싼 사회적 형편을 고민한다.

최근 대중매체에서 음악 창작 문제가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는 이유, 디지털싱글·모바일 음악 등 디지털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한 음악유통 방식, 언니네이발관·허클베리핀·루시드폴 등 인디 1세대가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의해 통합 콘텐츠 생산의 포석이 된 아이돌스타 문제 등 중요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이슈가 다루어진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