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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출 수 있는 '생활 속의 춤'

영국서 시작 유럽ㆍ중남미로… 문화예술 넘어 사회 전반으로
온앤오프무용단 활동 문래동 '커뮤니티 댄스' 벨트로 떠올라
  • 물레아트페스티벌에서 열린 릴레이 춤판
서울 주변부의 한적한 동네. 평범한 복장의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동네 주민과 인근 공장의 노동자들을 비롯해 예술가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되어 춤추는 장면은 마치 볼리우드 뮤지컬영화를 연상시킨다.

지난 한 달간 춤의 거리가 됐던 서울 문래동은 이미 문화예술계에선 유명한 지역이다. 온앤오프 무용단이 이끄는 춤공장의 주도로 토요춤판과 즉흥춤판 등 작은 축제가 끊이지 않았던 이곳은 4년째 물레아트페스티벌을 열며 '생활 속의 춤'을 더욱 확산시켜왔다.

80년대 댄스 붐을 일으켰던 <페임>이나 <플래시 댄스>의 한 장면처럼 일반 대중이 어우러져 춤을 추는 장면은 이제 국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춤은 한때 무용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극장 밖의 모든 공간에서 누구나 출 수 있는 것이 됐다. 각종 문화현장이나 예술축제, 복지관, 동호회 등에서 일반인들은 '자신들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직 그 정의나 영역을 분명히 규정짓지 못한, 이 춤을 학계는 얼마 전부터 '커뮤니티 댄스'라고 부르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 장애인으로 구성된 캔두코 무용단(Candoco Dance Comopany)
무대에서 일상으로 내려온 '우리들의 춤'

11월 23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은 '새로운 미래로 비상하는 춤의 상상력'이라는 제목으로 커뮤니티 댄스에 관한 심포지움을 연다. 커뮤니티 댄스는 유럽에서 알려진 후 확산 중인 새로운 개념으로, 국내에서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커뮤니티 댄스는 최근 미술계에서 유행처럼 쓰이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의 일종처럼 들린다. 커뮤니티 아트는 지역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공공예술적 시도들을 가리킨다. 넓게는 전문 예술가들이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도 이에 포함된다.

정의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커뮤니티 아트의 정의에 대한 공통적인 요소는 '지역'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엘리트 예술가나 대도시의 고급 문화공간만이 전유해온 예술을 일상과 시민에 연결하는 움직임인 셈이다.

무용에서 그동안 이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사회무용(social dance) 또는 지역사회무용(community dance)이었다. 지금도 커뮤니티 댄스의 대체어로 사용되는 이 춤들은 재즈댄스, 에어로빅 댄스, 댄스 스포츠, 힙합, 포크 댄스, 레크리에이션 댄스, 장애인 댄스 등의 이름으로 동호회를 비롯한 각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 프로젝트 외(Project Wae)팀과 엑스 니일로(Ex Nihilo)의 '날 보아(Nal Boa)'
전 세계적으로 커뮤니티 댄스가 가장 먼저 뿌리내리고 활성화된 곳은 영국이다. 20세기 중반부터 커뮤니티 아트의 발전에 고무된 사람들은 지역예술이 일반에게 자신감과 창의성뿐만 아니라 사회의식까지 길러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기존 예술계의 사람들에게 지역예술은 새로운 관객의 가능성도 있었다. 지역과 기존 예술계 모두에게 득이 될 것으로 본 관계자들은 커뮤니티 댄스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영국의 공연단체들도 커뮤니티 댄스에 관심을 보이며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예술교육을 하기도 하고, 이들과 대화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공연에 반영하기도 한다.

극장 밖에서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직접 춤으로 창작하며 예술의 새로운 주체로 떠올랐다. 또 노인과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 소외계층들도 커뮤니티 댄스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회에 발언하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왜 '커뮤니티 댄스'에 주목하나

  • 유독 일반인들의 춤 장면이 많은 볼리우드 영화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이나 중남미에서도 커뮤니티 댄스는 점차 문화예술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국내에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를 통해 소개된 스페인의 대표적인 거리춤축제 디에스 데 단사(Dies de Dansa)는 스페인 각 도시의 퍼포먼스 단체가 가입한 연합체를 만들어 진짜 '춤추는 도시'를 만들었다.

엘 시스테마로 유명한 콜롬비아에서도 커뮤니티 댄스는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됐다. 일명 '몸의 학교'로 알려진 엘 콜레지오 델 쿠에르포(El Colegio Del Cuerpo)는 내전으로 인해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빈민 아동들에게 춤교육을 하며 대안적인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춤을 느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춤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몸의 학교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비단 예술적 성과뿐만 아니라 이 같은 사회적 연대감을 이뤄낸 긍정적 성과 덕분이다.

국내에서도 '춤추는 도시' 프로젝트나 교육적 차원에서의 춤체험의 현장은 있지만, 해외에서 나타나고 있는 커뮤니티 댄스의 의미를 담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시댄스의 김신아 사무국장은 "국내 행사가 아직은 보여주기 위한 행사나 발상 단계에 머무른 수준이라면, 유럽이나 중남미의 커뮤니티 댄스는 아주 개인적이고 일상적이며 때로는 학문적인 의미를 찾는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담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춤이 일상과 동떨어진 예술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찾는 일종의 놀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김 사무국장은 "안무가와 춤추고 노는 그들에게 춤은 삶과 예술을 이어주는 매개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차츰 일반 대중의 참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동호회 춤이나 문화센터의 춤교육 등 사회무용 개념의 춤들을 제외하면 주로 예술축제에서 기획한 춤행사에 일반이 참여함으로써 커뮤니티 댄스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온앤오프 무용단이 주축이 된 문래동 지역은 거대한 '커뮤니티 댄스 벨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태생부터 주민들과 함께하는 예술 향유의 정신을 갖추고 항상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행사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의 한 관계자는 "낡은 철공장 지대에서 주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공감하며 완제품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참여자가 직접 만들어가는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얼마 전 고양호수예술축제에서 선보인 거리춤들은 기획부터가 고양과 호수 일대라는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커뮤니티 댄스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특히 한국의 프로젝트 외(Project Wae) 팀이 프랑스 거리춤 단체인 엑스 니일로(Ex Nihilo)와 기획한 <날 보아(Nal Boa)>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참여를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확장되는 커뮤니티 댄스의 가능성

이번에 논의되는 커뮤니티 댄스에서는 기존 사회무용이나 지역사회무용을 포함해 그 의미를 더욱 확장시키고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김채현 무용원 교수는 "지금 쓰이고 있는 '사회무용'이나 '공공무용(public dance)' 같은 용어들은 지금 국내에서 요구되는 커뮤니티 댄스의 정의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사회무용(social dance)의 경우는 사교댄스로만 번역돼 볼룸댄스나 댄스 스포츠에 국한될 우려가 있고, 공공무용도 일상과 전문 예술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하는 커뮤니티 댄스의 의미를 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역사회무용이라는 용어 역시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춤이므로 역시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까다로운 정의와 개념화를 통해 커뮤니티 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사회적 수요에 무용가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 포스트모더니즘, 장르 융합과 혼성 등 21세기적 문화 변동으로 예술은 점차 일상과의 경계가 없어지고 쌍방향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이에 대한 개념 정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라는 것.

그래서 그는 "커뮤니티 댄스가 현재 저변이 약해진 춤예술의 가치를 사회 내에서 실현하고 춤의 존립을 강화시키는 장으로서도 주목해야 할 키워드"라고 문화사회계의 주의를 당부한다.

유네스코가 1967년 제창한 평생교육은 이제 전 세계의 보편 개념이 되었다. 21세기 도시 발전과 신산업의 성장 동력의 전제로 영국의 찰스 랜드리가 제창한 '창조 도시(creative city)'도 21세기 도시나 지역이 직면한 난문제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두 가지 트렌드에서 공통적인 요소는 커뮤니티 안에서의 콘텐츠 육성이다. 즉 이제까지 여가 차원에서만 인식됐던 춤의 체험과 교육은 이제 커뮤니티 사회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아이템이 됐다.

현 정부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지역문화 진흥책으로서 프로그램 보급과 시설 정비, 활동 지원, 문화창조 거점 지역 조성, 생활문화공동체 시범사업 등을 시행하는 등 커뮤니티 댄스의 활성화를 위한 환경도 충실히 조성되고 있다.

21세기의 예술은 커뮤니티의 일상적인 삶과 개인의 공통적인 문화, 또 둘 사이의 상호이해와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현재 예술 교육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시민적 가치다.

김채현 교수는 "커뮤니티 댄스도 춤예술의 민주화를 통해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고양한다는 목표를 지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바야흐로 사회와 소통하는 예술, 커뮤니티의 문화적 토대를 확대하는 예술 등 '예술과 민주주의'가 화두인 시대가 왔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예술은 커뮤니티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존재할 때 그 가치가 더 커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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