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페미니즘] '화폐 개혁 프로젝트'서 전까지 다양한 시도들

박영숙, 화폐 개혁 프로젝트
도시를 배회하는 거대한 거미, '마망'의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지난 5월 98세를 일기로 별세한 그녀는 평생을 여성으로서 겪은 자신의 경험과 상처를 드러내는 작업으로 일관해왔다.

많은 이들은 그녀를 '페미니즘 작가'로 규정하지만 그녀 자신은 어떤 '이즘(-ism)'으로 묶이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많은 여성 작가들은 자신과 작품이 페미니즘 범주에 속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려지는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성, 그로 인한 대중들의 반감 때문만은 아니다.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세계를 해석할 때 하나의 '이즘'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만큼 세상은 다변화됐다. 총체적인 관점을 지향하던 시대가 아닌, 개개인의 세부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시대이다.

페미니즘 미술의 정의를 생각해볼 때, 자신이 여성임을 의식하고 미적 작업을 하고 있다면 그들을 페미니즘 아티스트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은 수많은 여성작가들에겐 현재진행형이다.

얀 페터 E. R. 존탁, GAMMAvert
12월 15일까지 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리는 <워킹 맘마미아: 그녀들에게는 모든 곳이 현장이다>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작가 7명이 초청됐다.

현대여성들이 고민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이 전시의 주제다. 작가들은 반추해낸다. 산업화 이후 노동시장에 진출해 '생계 부양자'이자 '가족 양육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냈던 이들은 수많은 여성들이었음을. 그리고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가정의 살림과 더불어 크고작은 경제 활동 등 다중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여성들의 모습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려낸다.

김인순의 '태몽', 류준화의 '설문대 할망과 자청비', 박영숙의 '화폐개혁 프로젝트', 정정엽의 '생명을 보듬는 팔' 등 가정과 지역, 사회를 일궈온 여성들의 에너지와 상상력을 담아냈다.

아람미술관에서는 열리는 <남녀의 미래: No More Daughters & Heroes>(12월 12일까지)는 사회적 성인 '젠더'와 생물학적 성 '섹스'를 동시에 고민하는 전시다. 태어나는 순간 딸과 아들로 구분되고 아버지와 어머니로 성장하는 과정과 인간의 끝없는 관심의 대상인 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독일과 한국의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1960년대 말, 고릴라 가면을 쓴 익명의 여성 예술가 그룹 '게릴라 걸스'가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기존체계의 전복을 꾀했다면 지금의 페미니즘 미술은 남녀의 공존과 화해, 사회와 자연의 치유와 평화를 모색하는 담론으로 자리하고 있다. 페미니즘 미술은 대략 세 차례 거대한 물결을 넘어왔다.

정정엽, 싹
1971년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라는 문제 제기를 필두로 페미니즘 미술의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페미니즘에서 미술사가, 평론가, 작가들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게 된 것도 이 같은 의식의 전환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18세기부터 익명의 여성화가들을 찾아 재평가하고 역사 속에 끼워 넣는 작업을 했다. 그 일환의 하나가 린다 노클린과 앤 서덜랜드 해리스가 1976년에 기획 전시한 <여성미술가 1550~1950>이다.

미술사를 수정해가던 그들에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위대함, 아름다움과 같은 기준은 누가 세웠는가?' 기존의 남성들이 세워놓은 미학 문법과 규범에 해체작업이 들어간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그들은 무엇이 아름답고 위대한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이론의 틀을 세우기 시작한다. 비평이나 작업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이보다는 그러한 차이를 만드는 사회적 구조에 눈을 돌렸다.

70년대의 페미니즘 미술이 주디 시카고로 상징됐다면 8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모성을 강조한 매리켈리, 기존의 전시공간을 벗어나 '텍스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던 제니 홀저, 사진이란 매체를 이용해 예술의 확장을 시도한 신디 셔먼과 바바라 크루거 등이 전면에 나섰다.

류준화, 자청비와 설문대 할망
이후 정체된 듯한 페미니즘은 더 이상 여성만의 논의가 아니다. 극빈층 여성과 상류층 여성의 삶이 같을 수 없듯이,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모든 인간은 같을 수 없다.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We the women'이란 구호도 이전만큼의 에너지를 갖지 못한다. 물론 정치적으로 여성들 간의 단합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이론적 성찰의 역사에서 여성만의 페미니즘은 흘러간 과정이다.

기호학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후기구조주의를 받아들인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대립이 아닌 이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현대 미술 속에서는 이 같은 세 과정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현재 한국미술의 이슈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포스트 민중미술의 논의와 국가주도의 공공미술에 대한 반성이 그것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성을 중시하는 일종의 대안미술로서의 이 논의는 최근 페미니즘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페미니즘의 태생이 남성 중심의 세상 읽기에 대해 다른 읽기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듯이, 현재의 페미니즘 미술은 거대 자본에 포획된 세계 미술시장에 대항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논의이다.

도움말 : 김영옥 이미지 비평가,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