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서 작가 인터뷰] '로직'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매직'으로 대응… 다양한 작업
"주변에서 정치적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하지만 정치적 반박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정치적 언어가 논리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지요. 그렇다면 예술이 할 일은 오히려 원시적 힘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만들어진 사회, 만들어진 목적과 의미에 반대하는 입장에서요."
그래서 유병서 작가의 작업은 주술에 가깝다. 지난 6월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에서는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이 "쓸 데 없는 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는 문제의식으로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흑마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세상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물질을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버리죠. 미술 전시를 한 번만 해도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그래서 내 작업에서만큼은 만드는 것을 중지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순간에만 볼 수 있고, 사라져 버리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지난 7월 송은갤러리에서는 벽면을 자신의 이름으로 뒤덮은 '작품'을 단 하루만 '설치'하고 지워버린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약 2주 동안의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은 비워져 있었다.
"송도국제신도시는 자연에 대적한 인간의 의지가 최대로 발휘된 인공적 피조물이잖아요. 두리반과 모란시장을 거쳐 송도국제신도시에 가보니 그 차이가 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맥락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세상에 대해 같이 보아야만,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나니까요."
한때 "68혁명의 기폭제가 된 예술적 상상력"에 희망을 품었던 그는 동료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회와 예술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두리반 작업 때 만난 이들과 '미완성 포럼'이라는 팀을 만들어 공부와 작업을 병행한다.
최근에는 부릅뜬 눈 아이콘을 그려 넣은 거대한 검은 지네 모양 조형물을 광화문, 시청 앞 광장, 남산 등 공공장소에 띄우며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했다.
눈 아이콘은 미국 1달러 지폐 뒷면에 그려진 문양에서 따온 것. 신화적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 연루설을 낳기도 한 문제적 문양이다. 확대해 놓으니 더욱 뜨악하고 음산한 인상이다.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 눈을 일상 속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장 눈에 보이고 쉽게 말해지는 세상의 이면이나 근원에 대해서 조금은 돌아보게 되었을까. 유병서 작가는 곧 이 퍼포먼스를 다큐멘터리로 작업할 계획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