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석대현 등 성 착취와 소비 당하는 현실 잔인하게 드러내

김인숙 'The Dinner'
예술계의 문제적 작가 중 한 명인 일본의 포토그래퍼 노부요시 아라키. 새디즘과 매저키즘 시리즈라고 불릴 만큼 포르노그라피적인 연출로 전시 때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밧줄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기모노 입은 여인을 촬영하는가 하면 밧줄로 벌거벗은 여인을 허공에 매달아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성도착증적 연출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마치 강간당하기 직전의 혹은 직후의 여성의 모습을 담은 듯한 지극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진들. 한편에선 그를 포르노그라피 작가라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 그는 에로티시즘의 거장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한 기업이 그의 사진을 광고로 사용했다가 '여성 비하'를 문제로 게재 금지 명령을 받은 일도 불과 1년 전이다.

2002~2003년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그의 사진전이 열렸을 때 여성 미술인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학대 프로젝트'라며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곳곳에서 전시가 열릴 때마다 잠잠하게 넘어가는 곳도 있지만 갤러리 앞에서 돌팔매질이나 시위가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열린 노부요시 아라키의 전시는 1만여 명의 관람객을 끌었다.

석재현 'Angeles City, 2010'-무대 뒤, 피로에 지친 댄서가 소파 위에서 쉬고 있다
그의 사진 미학을 제외하고 내용적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그의 사진은 자본주의 시대 성 소비문화 단면의 방증으로 보여진다. 때로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무신경하게 소비되는 현 사회의 성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각성과 환기를 전하기도 한다

굳이 유곽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빨간 비디오로 유통되던 '성'은 인터넷 곳곳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퍼진 여성들의 왜곡된 신체와 언제든 구할 수 있는 포르노로 이어졌다.

여기에 대중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점점 과도해지는 가요계의 '벗기기' 마케팅은 최근 아이돌 성 상품화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성 소비의 양상은 다각화되고 있다. 착한 몸매, 청순 글래머, 베이글녀까지 여성의 몸에 대한 신조어도 하루가 멀다고 제조된다.

일찍이 페미니즘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는 '너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는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상품화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왜곡된 여성의 신체를 '전쟁터'에 은유한 바 있다.

왜 성에 대해 솔직해질수록 성은 급속히 소비되는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일까.

석재현 'Angeles City, 2010'-화려한 조명 아래 댄서들이 춤을 추는 가운데 지친 댄서가 무대에 앉아있다.
성의 직설적인 표현과 논의에 폭넓은 자유를 선사하면서 그것을 소비 경제 속으로 끌어들여 착취하는 전략. 이는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대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의 속성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성의 소비는 더욱 가속화된다. 쾌락의 수단이자, 종족보존과도 직결된 성은 소비 자본주의 시대 가장 잘 팔릴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잔인한 현실 속 슬픈 몸 혹은 일상의 담담한 몸

자본에 휘둘리는 성, 그로 인해 가속화되는 성 상품화에 반기를 든 작가들이 있다. 그들 역시 여성의 몸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여성의 몸은 유혹하는 몸이 아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몸 혹은 성 착취와 소비를 당하는 현실을 잔인하게 드러낸, 슬픈 몸이다.

현재 일우스페이스에서 전시 중인 재독 사진작가 김인숙은 정장 차림의 점잖은 남자들 무리와 벌거벗은 여인들을 등장시킨다.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발가벗은 채 배에 칼이 꽂힌 여성을 테이블 위에 두고 식사를 하는 장면(The Dinner, 2005)과 뒤셀도르프의 법정에서 발가벗은 여성을 중심으로 남성 바이어들이 줄지어 선 장면이다(The Auction, 2006).

각각 '최후의 만찬'과 노예 경매시장에서 힌트를 얻은 작품으로, 자신의 쾌락을 위해 여성을 음식 혹은 상품으로 대하는 현실을 묘사한다. '저 여자 맛있게 생겼다'라는 남성들의 공용어는 직접적으로 여성을 '먹는' 행위로, 성을 파는 동서양의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은 노예 경매로 바뀌어 시각적 충격을 던진다.

바네사 비크로프트 'vb66, Mercato lttico, Napoli ltaly, 2010'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치부되어온 인류 문화의 잔재가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빠른 속도로 여성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데 대한 작가의 비판이다.

청자와 백자로 만든 비너스 상과 여신들 시리즈로 미적 기준에 대해 의표를 찌른 작가 데비한. 그녀가 공들인 작업 중에 '식(食)과 색(色)' 연작이 있다.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도발적인 표정을 지은 여인의 입술.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는 립스틱이 아닌 고춧가루를 입술에 발랐다.

그런가 하면 속옷만 착용한 채 옆으로 누운 독일 여성의 옷은 햄으로 만들어졌다. 곳곳의 평범한 여성을 컨택해 각국의 대표 음식으로 치장해 광고 사진처럼 촬영한 '식(食)과 색(色)' 시리즈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의 조작된 관능미를 음식처럼 소비하는 현대 광고에 대한 일침이다.

음모까지 면도해 완전한 알몸을 드러낸 여성 집단, 또렷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바네사 비크로프트가 주문하는 것은 '섹시한 표정 짓지 말 것', '소곤거리지 말 것', '가능한 한 몸을 똑바로 펼 것' 등이다.

동시대 가장 유명한 행위 예술가인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벌거벗은 모델 수십 명에서 100명 정도를 관객 앞에 장시간 세워둔다. 3시간에서 6시간에 이르는 피로한 무위의 과정.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다리로 피가 몰린 모델들은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바네사 비크로프트 'VB48, 2001'
이 과정은 작가에 의해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힌다. 거의 모든 퍼포먼스에서 여성 모델을 세우는 작가는 2007년 서울에서 열린 회고전에 앞서 신백화점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 한국의 정서를 감안해 31명의 여성 모델들에겐 살구색의 옷을 입혔다.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사실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이 아닌 인간의 몸으로 인식시키는 페미니즘 미술'이라는 의견과 '고급 포르노'라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 작가이지만 작가는 '화장과 액세서리로 꾸며진 몸에서 자연인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며 몸을 통한 여성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현재도 그녀는 흑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다.

탈북 동포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 중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석재현. 그는 지난 9월에 열린 를 통해 상품화된 여성 뒤에 가려진 일상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냈다.

노골적으로 여성을 돈으로 환산하는 필리핀의 남성용 바. 500여 개의 바와 클럽이 밀집된 마닐라 북쪽 엥헬레스 지역에서 만난 여인들이다. 24시간 성인 남성에게 개방되어 그들의 쾌락과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이곳엔 수백 명의 여성 무희들이 살아간다.

그녀들은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다. 작가가 직접 다섯 명의 무희 여성 가정을 방문해 담아낸 가족과의 시간은 성을 파는 여성들의 팍팍하고 담담한 일상을 따스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김인숙 'The Auction'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