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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최광호, "가족은 내 평생의 테마죠"

[인터뷰] 36년간 담아온 가족사진 통해 생의 소중함 모두와 공유하고파
"사진이 사는 거지."

제자들이 '사진의 정의'를 물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리고 그것은 강박증처럼 매 순간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그의 일상과도 맥이 통한다.

그는 피사체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지 않는다. 게다가 렌즈는 익명의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자연히 그의 사진은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 생의 증명이다. 거울을 보듯 스스럼없이 담아낸 사진 속엔 추함도 아름다움도 무의미하다.

단지 삶이 있을 뿐이다. 사진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인 것이다.

그, 사진작가 최광호(54). 그의 사진은 그래서 처음 혹은 간헐적으로 접한 이들에게 기이하게 다가온다.

  • '장인 장모의 죽음'
무려 36년간 담아온 가족사진 중엔 카메라에 시선을 맞추고 환하게 웃는 모습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의 부모님은 어색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는 하루 종일 먹고 변보기를 반복한다.

그의 장인과 장모는 임종의 순간이, 청평에서 익사한 남동생의 아까운 청춘은 수의 속에 단단히 묶였다.

상식적인, 보통의 가족사진을 기대하고 최 작가의 두터운 사진집 <가족>을 들춘다면 기대는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의 벗은 몸 앞에선 에로티시즘은커녕 민망함도 끼어들지 못한다. 망자의 얼굴에선 공포와는 다른 전율이 온몸에 저릿하게 요동친다. 사진 속엔 작가 가족의 몸과 얼굴이 아닌, 인간의 생과 사, 그리고 늙어감이 읽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면 삶과 죽음이 쫓아오기 마련이죠. 20대 초반에 처음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당시엔 죽음이 주는 무게감을 몰랐어요. 사진도 감각적으로 찍었죠. 유학을 다녀와서 카메라 앵글 속에서 장인, 장모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걸 두 번 목격했거든요. 그 경험이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깨우쳐준 거죠. 삶과 죽음, 우리 가족만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예요. 생의 소중함을 제 가족을 통해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던 겁니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부터 그에게 가장 좋은 모델은 늘 가족이었다. 촬영 의도를 일일이 설명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고, '나를 만든 아버지의 몸을 보고 싶은' 아들의 심정을 헤아려주었다. 임종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자칫 망자에 대한 결례일 수 있는 일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해되었다.

"가족은 이유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을 이유 있게 만들죠." 그에게 가족은 이런 의미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의 작업이 이해받는 건 아니다. 사진집 <가족>을 미국에 사는 여동생에게 보내고 일년 후 미국에서 마주한 남매.

<가족>엔 여동생의 학창시절과 조카들의 재롱잔치 사진도 담겨있다. 책 이야기가 나오자 동생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녀는 성인이 된 자녀에게도 아직 책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가진 가족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 "오빠를 좋아하지만, 가족을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잔인함이, 난 무서워." 동생의 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제겐 당연함이었는데... 전 사람 냄새를 느끼고 싶었던 거예요. 살아있는 지금이 고마운 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감과 교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벗는 것도 그래요. 벗으려면 믿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서로가 알아야 하죠. 연인과 부부가 사랑할 때 벗는 것처럼요. 가족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어릴 때 기념사진에 보면 알몸으로 앉아 있고, 제 딸도 태어날 땐 벗은 채였지요. 벗음은 그러고 보면, 근원을 찾고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가족은 작업방식 전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족을 사진에 담는 사이, 할머니, 아버지, 장인, 장모, 외삼촌, 작은 누나, 남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매일같이 목욕시켜드리고 팔 다리를 주물러드렸던 할머니가 한 줌의 재로 돌아온 순간,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 그는 발가벗고 롤지에 시체처럼 누웠다. 자신의 몸을 통해 할머니를 발견하고자 하는 작업. 자신의 몸에 감광재를 발라 카메라 없이 빛을 쪼여 찍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는 포토그램의 시작이다. 시인이던 동생이 떠나간 후 10년 동안은 8월 15일마다 하루 꼬박 걸으며 촬영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가족은 내 평생의 테마입니다. 하지만 딸도 시집가고 남은 가족이 없으면 마지막엔 셀프를 하게 되겠죠. 마음이 답답하면 지금도 절 찍는 것이 습관이거든요. 결국엔 제가 저를 작업하지 않을까 싶네요."

용어설명
포토그램-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감광재료 위에 피사체를 두고 빛을 쬐어 빛과 그림자로만 표현하는 기법, 혹은 이러한 기법을 이용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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