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나이트', '수트 마니아'등 콘텐츠ㆍ트렌드 겨냥한 파티 기획

파티의 계절이 돌아왔다. 시끌벅적한 파티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연말이 되면 '물 좋은' 파티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하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모든 것을 싹 잊고 기분 좋게 놀기 위해서다.

이처럼 갈수록 파티가 일상과 가까워지면서 파티를 주관하는 파티플래너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때 파티플래너는 말 그대로 파티를 기획하는 사람이지만, 경우에 따라 자신이 직접 호스트가 돼 파티를 이끌어야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 맺기를 즐기는 사교적인 성격의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이 파티플래너로 곧잘 전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5년부터 싸이월드 미니홈피 일촌 최대 보유자(1만 5000명)로 유명했던 파티플래너 정건영 씨 역시 이 점에 주목해 '파티테이너'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파티테이너(partytainer)란 파티플래너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로, 호스트로서 엔터테이너십을 발휘해야 하는 파티플래너의 영역 변화를 설명해준다.

"예전에는 파티의 사전 준비가 끝나면 본 파티에서는 무대 뒤로 빠져 있어야 했습니다. 마치 방송에서 조연출이 실무를 다하고 방송이 시작되면 연출 뒤로 빠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보니 정작 파티의 주인인 호스트 역할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워커힐 애스톤하우스 키톤 파티
파티가 일반에 익숙지 않았던 10년 전부터 이처럼 진일보한 생각을 갖고 있던 정건영 씨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목받는 파티플래너가 됐다. 연말 시즌을 맞아 진행 중인 대형 파티들도 이미 대여섯 개, 준비 중인 파티 브랜드만 해도 열 가지다.

각종 언론과 방송 출연, 브랜드 컨설팅 등 외부 활동도 빈번하다. 틈틈이 파티플래너 양성을 위한 스터디도 신경 써야 한다. 이만 하면 엔터테이너보다 더 바쁜 파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의 성공 비결도 철저한 시간관리와 인간관계에 있다. 그는 휴대폰 두 대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노트북 4~5대를 동시에 가동시키기도 한다. 잡지도 한꺼번에 20권에 가까운 분량을 탐독한다. 기본적인 업무 처리와 함께 트렌드 파악에 필요한 문화 정보들을 최대한 빨리 습득하기 위해서다.

그를 유명하게 해준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여전히 운영하고 있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시대에 발맞춰 각각 트위터 계정 8개, 페이스북 계정 2개도 각각의 특성에 따라 활용하고 있다. "트위터는 실시간 소통 등 빠른 정보전달의 수단으로 주로 활용하고요.

반면 미니홈피는 정보 확산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보다 풍부한 콘텐츠를 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이 둘의 중간 형태로, 정보 전달의 속도에 있어서도 적절하고 콘텐츠의 장기적 저장도 용이해서 좋아요."

이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그의 천성은 파티에 대한 철학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그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파티는 화려하게 꾸미고 노는 스타일링 콘셉트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때부터 정건영 씨는 '파티는 패션쇼가 아니라 사교의 장'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콘텐츠를 담은 파티'를 시작했다.

최근 그가 이태원의 한 부티끄 라운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카지노 나이트 파티'가 대표적인 예다.

"카지노 나이트는 말 그대로 카지노를 콘셉트로 하는 파티입니다. 도박장을 생각하면 대개 불건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는 카지노를 건전한 레저이자 사교문화로 다루고 있거든요. 하나의 놀이문화로 좀 더 캐주얼하게 접근했기 때문에 일반인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설정입니다."

그는 파티문화가 예전에는 클럽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부티크 형태의 라운지 문화로 옮겨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향유되는 공간이 달라지니 그에 따라 의상이나 참여하는 계층도 달라졌다. 그래서 파티는 참가자들의 취향에 따라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카지노 나이트에도 모나코 스타일, 시상식 스타일, 라스베이거스 스타일 등 다양한 콘셉트가 마련돼 있다.

게스트들의 세분화된 취향은 곧 그들만의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파티의 요구로 이어졌다. 그래서 정건영 파티플래너는 요즘 파티의 추세가 '마니아'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엔 어떤 파티가 내 취향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몇 군데 가보면 안목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이들에게 딱 맞는 콘셉트의 파티가 필요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남아서 파티에 갔지만, 지금은 게스트들도 바쁜 시대니까요."

그가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는 '수트 마니아' 파티는 바로 이런 트렌드를 겨냥한 것이다. 기존의 파티는 대개 여성 고객에 특화됐지만, '수트 마니아'는 이례적으로 남성 고객에 초점을 맞춘 일명 '여자 없는 파티'다. 남자들만 득실대는 파티라니, 송년모임에서 '썸씽'을 기대하는 남자들에겐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하지만 정건영 파티플래너는 주변 지인들의 관계에서 빈틈을 포착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남자들에게 필요한 인간관계는 이성보다는 오히려 동성일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괜찮은 동성 친구'를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한 벌쯤 가지고 있는 기본 아이템인 수트를 매개로 좋은 형, 동생을 만날 수 있는 거죠."

남자들에게 수트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입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 수트를 입고 있는 이도 수두룩하다. 그래서인지 패션전문가들은 '한국 남성의 패션은 엉망, 매너는 최악'이라는 혹평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정건영 파티플래너는 '수트 마니아'가 품격 있는 패션과 매너 갖추기를 배우는 '젠틀맨 메이킹 파티'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멋진 수트를 차려 입은 젠틀맨들만의 파티는 배 나온 직장 남성들에게는 아직 먼 모습일 수 있다. 그래도 연말 시즌, 명칭이나 형태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송년 파티를 갖게 된다. 흥청망청 놀다 추태를 부리는 '망년 피플'이 아닌, '파티 피플'이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뭘까.

"일단 드레스코드가 중요해요. 색상을 하나로 맞추면 호스트나 게스트 모두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거든요. 혼자 가만히 있기보다는 미소와 함께 먼저 다가가 나를 먼저 소개하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눈 인사와 제스처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파티의 룰에 따르는 것입니다."

몰랐던 사람을 알게 되고, 새로운 정보도 접하며, 무엇보다 숨겨진 나를 발견하게 해준다며 온오프라인에서 '파티론'을 설파 중인 정건영 파티플래너. '내추럴 본 파티홀릭'인 그의 파티예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