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작품으로 표출

노순택의 '검거'
하얀 운동화가 촘촘하게 일렬횡대로 맞춰 섰다. 전신을 가릴 듯 기다란 검은 방패와 짙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두 글자, '경찰'. 2008년과 2009년 사이 서울시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시위-한미 FTA 반대, 용산참사 항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등-는 노순택 작가의 '검거' 연작으로 집약됐다.

동시대 현안에 예리한 시선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 그는 한국 사회가 가진 억압과 폭력에 대해 소수자 입장에서 발언하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는 <여론의 공론장>에서 선보이는 '검거' 연작은 시위자가 무장한 전투경찰에 맥없이 붙잡히거나 연행되는 모습이 절제된 화면 속에 포착되었다.

사회적으로 여론이 공론화될 수 있는 공간, 가령 인터넷 게시판이나 물리적인 광장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요구나 표출이 정부의 입장과 충돌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거짓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위자들이 검거되는 장소는 광화문 광장이나 시청 광장처럼 오픈되어 있는 공간이다. 어떨 때는 자유롭게 시위나 집회가 가능했던 곳이 어떤 국면에선 폭력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법 행위로 간주되곤 한다. 민감한 현안에 여론이 모이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장이 과연 우리 사회에 있는지 의문이다." 노순택 작가가 검거 현장에서 카메라 앵글을 맞춘 이유다.

윤석남의 '1025'
각기 다른 표정과 움직임을 하는 천여 마리의 나무 개들. 1025마리의 유기견을 키우는 이애신 할머니의 소식을 접한 작가는 당시 개의 숫자와 똑같은 개의 형상을 조각했다.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 윤석남 작가의 작품 <1025>의 탄생 배경이다. 이들 유기견을 통해 인간의 극도의 잔인함을 목격했다고 고백한다. 이 작품을 제외하면 특정한 사건이나 이슈가 그녀의 작품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여성주의 시각에서 비롯된 페미니즘적 작업과 동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분야는 환경 문제다. 현재 윤석남 작가는 비건(vegan)까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채식주의를 해오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차후에 준비 중인 작품도 그와 관련된 시각이 담겨 있다.

한창 구상단계에 있는 작품은 '채식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다. 작가가 지속해온 '핑크룸' '블루룸' 등의 연작으로 '그린룸' 작업도 구상 중이다. 환경에 대한 작품인 만큼 소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8~9월에 열린 설치작가 진기종의 전시 <지구보고서>는 환경문제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 지구 온난화, 탄소 배출량, 이상 기후, 기름유출, 아마존의 정글 파괴 등 전 세계적으로 환경이변을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보고서다. 환경오염에 상당 부분을 석유연료가 차지한다고 분석한 진 작가는 석유전쟁의 주동자를 작품 전면에 내세웠다.

석재현의 'Scent of Angeles'
웅덩이에 빠진 거대 석유회사 '쉘'(Shell)의 유조차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그들이다. 노예처럼 밧줄을 몸에 맨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유조차를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유가(油價) 확인에 바쁘다.

"9·11테러가 일어나기 전 정유 사업 문제로 갈라서기 전까지, 부시 일가와 라덴은 원래 워싱턴에 함께 살던 석유 협력 파트너였지 않나. 이들이 일으킨 21세기 가장 큰 전쟁의 실질적 목적은 석유를 쟁탈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졌다. 환경에 해악을 끼친, 석유의 노예가 된 그들을 표현하고 싶었다."(진기종 작가)

최근 유튜브에선 수단 여성이 청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여성에 대한 극악무도한 잔인함은 비단 수단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닿는 순간 피부와 장기를 녹이는 염산 테러가 중동 지역에서 여성을 상대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청혼을 거절하거나 이혼을 요구한다는 등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여성의 인권은 바닥에 떨어졌다.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작업을 해오는 석재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올해, 필리핀의 남성 전용 바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관광지나 외국 군부대에 있는 일명 기지촌은 전 세계에서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번의 는 일 년간 필리핀에서 기록한 사진이다. 성 소비 문제보다는 인권의 문제로 다가갔다. 처음 탈북 동포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도 북한 여성들이 신분 포장을 위해 중국 한족과 강제 결혼을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얀마의 여성들도 탈북 여성들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외신을 통해 접하기도 했다." 탈북 동포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 중 중국 공안에 감금당하기도 했던 그다.

진기종의 '걸프만의 노예'
석재현 작가는 'Scent of Angeles'의 작품으로 지난 12월 3일 태국외신클럽에서 포토에세이 부문 1등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