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 말하는 2010 베스트

영화 <옥희의 영화>
시상식의 계절은 지났지만 연말을 맞아 나만의 최고작 뽑기가 이어지고 있다. 평론가들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주요 영화상과는 별개로 자신만의 부문별 최고작을 뽑는다.

그렇다면 영화감독들에게 2010년의 베스트는 무엇이었을까. 영화감독들이 인정하는 영화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최고작일 터, 올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인 감독들을 중심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을 추천받아 그 이유를 들어봤다.

<시라노; 연애 조작단>으로 평단과 관객의 고른 호평을 얻었던 김현석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를 베스트로 뽑았다. 김 감독은 영화 중에서도 문성근이 화장실 앞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올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와 <두근두근 영춘권> 등으로 '재미있는 독립영화' 시대를 개척하고 있는 윤성호 감독은 '인상적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이라고 답을 내놨다.

이유는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묘한 영화'라는 점이다. 윤 감독은 "대개 상업영화들이 줄거리 전개에 급급한데, 이 영화는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무엇보다 감독의 시선에 '집착'이 엿보였던 점이 묘했다"라고 평가했다.

영화 <방가? 방가!>
크랭크업 이후 개봉을 앞둔 감독들의 처지가 으레 그렇듯 올해 개봉작을 내놓은 감독들은 대개 다른 작품을 챙겨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4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이층의 악당>의 손재곤 감독도 개봉을 앞두고 후반작업에 매진하다 다른 영화들을 미처 챙겨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쩨쩨한 로맨스>의 김정훈 감독 역시 개봉작들을 보지 못했지만, 동료 감독들의 입소문을 통해 '위시 리스트'는 작성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가장 이슈가 됐던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와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다. 또 올초 <의형제>를 선보였던 장훈 감독 역시 이정범 감독에 한 표를 던졌다.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시>, <이끼>와 함께 영화제를 삼분했던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은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았다.

이정범 감독은 "신인임을 감안하면 제작 여건이 그리 녹록지 않았을 텐데도 고립된 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느슨하지 않게 전개시키며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잘 표현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또 "장철수 감독의 연출력 못지않게 서영희의 연기도 탁월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편 장철수 감독은 육상효 감독의 <방가? 방가!>를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라고 답했다. "기발한 기획으로 흥미를 유발하지만, 젊은이들의 미취업 문제와 이주노동자 문제를 연결시키며 재미있기까지 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이 영화가 선택된 이유다. 장 감독은 "웃기면서도 슬픈, 캐릭터의 페이소스가 특히 인상적이다"라고 호평을 덧붙였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페스티발>의 이해영 감독은 최고의 영화로는 이창동 감독의 <시>를, 가장 인상적인 영화로는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를 뽑았다. <시>에 대한 평가는 세간의 평가와 비슷하다. 영화가 줄 수 있는 감동의 영역을 확장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는 "훌륭한 영화보다 훌륭한 문학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며 "영화가 문학의 힘을 어느 만큼 옮겨올 수 있을까 라고 물었을 때 <시>는 그에 대한 답이 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부당거래>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이 감독은 "영화가 확장할 수 있는 한계를 넓혀주고, 영화적으로 극도의 쾌감을 주는 영화"라며 <부당거래>를 평했다. '어디 하나 토를 달 엄두가 나지 않는 영화'라는 찬사도 또 이어졌다.

결국 굳이 후보작의 우열을 가리지 않기로 한 이 감독은 "한 마디로 <시>가 '영화 위의 영화'라면 <부당거래>는 '영화다운 영화'"라고 정리하며 '공동수상'을 부여했다.


영화 <부당거래>
영화 <아저씨>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