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광장 모퉁이를 돌면' 전

곽이브, '배산임수-곧게'
<광장 모퉁이를 돌면>라는 전시 제목으로부터 시작해보자. 광장은 공공 장소다. 대화와 토론, 문제 제기와 합의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이상적인 사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장소다. 우리의 문제, 우리의 현실, 지금 여기의 삶에 관심을 가진 현대미술도 광장을 꿈꾼다. 더 많은 소통이 더 깊숙한 아름다움을 낳을 것이다. 이런 모토로 작가와 기획자, 비평가들이 만났다.

5명의 기획자, 비평가들이 6명의 작가와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지는 왜 광장 한가운데가 아닌 모퉁이일까?

"광장은 주어지지 않는다. 찾아가는 곳이어야 한다"는 전시 기획자 김노암의 말처럼, 미술이 꿈꾸는 광장은 광장으로 가는 길에 가깝다. 모퉁이만 돌면 툭 트인 공간이 나타날 것 같은 기대로 활기를 띤 상태, 공적이고 정치적인 제도적 언어뿐 아니라 사적이고 모호한 일상적 언어도 왁자지껄한 상태다.

이대범 큐레이터가 추천한 작가 곽이브의 '배산임수'는 아파트라는 현실을 다시 상상해 지은 작업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열망하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의 평면도로 틀을 만들고 시멘트를 부어 조형물을 만든다. 내부 공간 없이 외양만 거친 형태로 재현된 이 조형물들은 아파트라는 대중적 욕망의 대상을 조소하는 듯하다.

신동근, '역할놀이'
작가 신동근은 자신을 거리, 식물원 등 도시 공간 곳곳의 일부로 위장한 사진 작업들을 선보인다. 흰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채 배경에 녹아드는 행위를 해보이는 그의 모습은 우습고 쓸쓸하다.

세상이 요구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스스로 누구인지 잊어버린 우리를 은유하는 것일까? 김창조 큐레이터는 신동근 작가의 위장이 "작가로서의 삶과 밥벌이 사이에서 줄타기 하듯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가 마주한 시대의 역사적 상황, 정치 사회적 역학관계, 일상생활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엇갈리고 전도되는 가상과 현실에 대한 주체의 고민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우리집 채소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초등학생 탐구생활 책에 등장할 법한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안민정 작가는 채소와 분무기, 수돗물, 그리고 감정을 준비했다.

작가의 목표는 "식물의 성장 촉진에 인간의 긍정적 감정이 필요함을 확인하는 것". 작가는 물과 감정의 화학 반응이 식물의 성장 호르몬 생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이 가상적 과정을 지극히 과학적으로 보이는 드로잉에 담아낸다.

일상적인 상상력과 말들이 복잡하고 기계적인 시각적 기호와 만나는 이 장면은 기발하면서도 기이하다. 계산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현대적 구분을 뒤틀어 버린다.

안민정, '뽀뽀의 힘'
오혜미 큐레이터는 "안민정 작가의 작업은 소소한 일상과 사랑, 미움, 감정 같은 객관적 증명이 불가능한 영역들을 현대화된 방식의 시각 언어로 구체화해 무뎌진 감성을 일깨우고 일상의 주변을 환기시킨다"고 평했다.

<광장 모퉁이를 돌면> 전은 내년 1월9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팔레드서울에서 열린다. 02-730-7707.


심래정, '무제'
황수연, 'A4 drawing'
류보미, 'Tele_of are you there no.54 op.242 243 244'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