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2010 이미지의 틈] 전

강이연, '사이03', 2010
흰 장막이 꿈틀거린다. 누군가 뚫고 나오려는 것 같다. 장막 너머 몸의 아우성이 배어 나온다.

사람의 팔과 다리, 얼굴의 굴곡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러나 그 뒤를 들여다 보면 아무도 없다. 깜빡 속았다. 갇힌 사람은 실재가 아니라 영상이다. 전시장의 전기가 끊기면 가차 없이 암흑 속에 묻혀질 미몽 같은 것.

강이연 작가의 설치 작품 '사이 03'은 눈을 의심하게 한다. 아, 하고 다가가서 어, 하고 물러나게 만든다. 시각적 판단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미혹되기 쉬운가.

관객의 눈을 시험하는 작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은 눈과 이미지, 시각적 판단과 현실 간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전은 서울시립미술관이 10년 간 진행한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을 결산하는 뜻으로 마련한 전시다.

강연민 '힐레로바의 얼굴들', 사진설치, 2010
그 키워드로 꼽은 것이 시각성이다. 이미지에 포위된 삶의 환경과 그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인간의 문제는 동시대 한국의 젊은 미술을 관통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미지와 눈 사이,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작품들을 모았다.

이미지와 눈 사이에서 미술은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테크놀로지와 만난다. 디지털 이미지를 조작해 만화경 같은 패턴의 반복을 만들어낸 이중근 작가의 작품, 막다른 벽에 스크린을 설치해 그 너머의 상상된 공간을 투영하는 김민정 작가의 작품, 사선 줄무늬를 일정하게 조직해 눈을 어지럽히는 공간감을 만들어낸 김용관 작가의 작품 등이 전시됐다.

이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시각적 경험에 대한 확신을 버리게 된다. 우리가 본 것은, 직접 보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진실이 될 수 없다.

어떤 작품들은 본다는 행위가 사적인 인지 작용일뿐 아니라 사회적 관습임을 드러낸다. 하태범 작가는 언론에 보도된 각종 재난 현장 이미지를 미니어처로 재현해 촬영했다. 색은 모두 빼 버렸다.

용산 참사 현장도, 파키스탄 폭탄 테러, 쓰나미, 뉴욕 9.11 테러 현장도 무미건조해 보인다. 재난에 대한 선정적 이미지에 익숙해진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창훈, 'Stone', 2004
나현 작가는 자물쇠가 굳게 잠긴 반투명 슬레이트집을 설치해 놓았다. 들어갈 수도, 똑똑히 들여다 볼 수도 없는 이 집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아무것도 아닐 거야. 이건 그들이 잊고 바꿔놓지 못한 역사의 한 조각이지' 라는 낙서를 발견하게 된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고, 알게 됐다고 생각는 우리는 재현되고, 의도가 섞이고, 왜곡된 이미지들 틈에서 사실 이처럼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다는 것에 대한 해석을 넘어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작품들도 흥미롭다. 오용석 작가가 고안해낸 장치인 샴몽타주는 두 개의 렌즈를 통해 각각의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들은 완벽하게 합체되지도, 동떨어져 있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에서 관객의 눈을 통해서만 연결된다. 두 개의 이미지와 눈, 혹은 두 눈과 인식 사이의 삼각 관계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대수롭지 않으면서도 무궁무진하다.

전시는 2월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02-2124-8800.

김민정, '뒤틀린 벽', 2010

오용석, '샴몽타주 No.3', 2010
금혜원 'blue aftenoon', 2007
김용관, '큐빅스', 201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