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미술전시 통해 동시대 책 문화 첨단 보여줘

책과 놀이하다, 전시 전경
전자책의 탄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책 문화를 낳고 있다. 새로운 책 문화는 곧 다른 독서 행위를 말한다. 가령 여러 가지 층위로 구성된 전자책은 '정독'보다는 '발췌독' 문화를 강화시킨다. 독자들은 능동적인 클릭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나 독특한 시각에 접근하면서 창의적이고 복합적인 자신만의 책 읽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독서 문화의 변화는 도서관이라는 정적인 공간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도서관은 각종 통신과 영상 장비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서서히 변신을 준비해왔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책과 놀이한다_Playing Book>전은 이런 독서와 도서관 문화의 진화를 담아내며 동시대 책 문화의 첨단을 보여준다.

미술과의 조우로 다른 느낌 내는 도서관

김용준,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백영수.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이 실내에 전시돼 있는 이 공간은 미술관이 아니라 도서관이다.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 동안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에서는 이색적인 전시가 열렸다. <문장>과 <문예>, <문학예술>, <현대문학> 등 유수한 문학잡지 속에 등장하는 화가들의 작업과 한국 근현대 대표 화가들이 1930~1960년대에 작업한 삽화가 담긴 단행본이 소개된 것이다.

노경화, 디지털 노마드, 2011
미술관에서나 열릴 법한 이 전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환기미술관과 공동으로 주관한 프로젝트 의 첫 번째 행사 <책을 읽는다_근현대 화가들의 장정과 삽화>전이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비슷한 콘셉트의 전시를 진행하던 환기미술관 측과 행사 취지가 맞아떨어져 협업한 결과다.

환기미술관의 채영 전시팀장은 "원래 '김환기의 장정과 삽화'와 '북아트'를 소개하는 <표지화여담(表紙畵餘談)_문학과 미술의 만남 그리고 북아트>를 진행해온 우리 미술관과 당시 디지털 전시장 활용 방안을 모색하던 국립중앙도서관 측의 관심이 결합돼 도서관에서의 전시가 이루어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달 말까지 열린 두 번째 전시 <책을 감상한다_Livre Objet>전도 전통적인 '읽기'의 방식에서 벗어나 감상의 오브제로서의 책과의 소통을 제안했다. 오늘날의 책은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위해 펼쳐서 내용을 읽으며 소통하는 매체가 아니다.

책을 열기 전에 그 조형성만으로도 하나의 감상 대상이 될 수 있고, 책을 펼쳤을 때 평면적 문자가 아닌 입체적인 조형 세계를 발견할 수도 있다. 전자가 '북아트'라면 후자는 '팝업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전시는 본 전시장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본관과 디지털도서관의 연결 통로인 '지식의 길'과 휴식 공간에 확대 설치되며 이용자들에게 펼치기 이전의 책에서 조형적 가치를 발견하고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주영, 문턱, 2010
만지고 느끼는 책, 소통하는 지식 공간

이처럼 '새로운 책 읽기'에 대한 단계적 접근 방식은 세 번째 전시 <책과 놀이한다_Playing Book>전에서는 책과 독서, 도서관에 대한 인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차원까지 이르렀다. 2월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 전통적인 종이책은 아예 그 모습을 감췄다. 대신 전시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수많은 글자들이 떠다니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프로젝션이나 설치 작품들이다.

'도서관 전시'까지 들어온 미디어 아트는 '종이 지식' 시대의 종언과 함께 '디지털 지식'의 도래를 체감하게 한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도서관도 이전부터 영상 자료의 열람에서 시작해 이제 편집 저작까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해왔다. 고전적인 도서관과는 다른 디지털 도서관은 먼지와 습기가 묻어 있는 종이책 대신 디지털화된 지식과 정보들이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이 같은 디지털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도서관의 고민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정보이용과의 이옥주 주무관도 "특히 디지털 도서관은 디지털 이용자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동의했다.

이 주무관은 "이용자들은 도서관 곳곳에서 이런 지식정보시대의 변화된 지식의 의미를 발견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책과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훈, 익명의 서사시-이상, 2011
거울 속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이주영 작가의 <문턱>은 이런 '소통하는 지식'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비스듬히 배치된 스크린에 각각 '보다(See)'와 '만지다(Touch)'의 의미를 함축한 모니터에는 물방울 사이로 떠다니는 글자들을 통해 언어 혹은 문장의 생명을 감성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정영훈 작가의 <익명의 서사시_이상>은 더 이상적이다. 시대를 앞서갔던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의 텍스트들이 날것으로 움직이는 화면 속에서 독자는 이를 자의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 이런 이상에 대한 새로운 읽기는 미디어 아트 디바이스를 통해 가능하다.

위(Wii)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지난 세기의 문학작품은 그저 지루한 텍스트일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런 동시대 감각을 적용한 도구를 통해 문학작품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실험이다.

한편 이재환 작가의 <도서관에서 김서방 찾기>는 시대 흐름에 따른 도서관의 변신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마련해놓은 전시장 바닥의 이동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이용자들은 어느덧 그런 자신이 이재환 작가가 의도한 '김서방'임을 깨닫게 된다. 또 영상 속에서 도서관을 누비는 신체예술가들의 '놀이'는 책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보게 한다.

이재환 작가 인터뷰

'김서방'이라는 존재는 디지털 도서관에 특화된 존재 같다. 어떤 존재로 의도한 것인가.

이재환, 도서관에서 김서방 찾기, 2011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공간에 맞는 특성을 알아야 했는데, 디지털 도서관의 이용자들이 하고 싶은 행동들을 해주는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의적인 인물로 김서방이라는 가상의 익명인이 탄생했다. 이용자 입장을 고려한 것이지만 사실은 이는 디지털 도서관에서 찾으려고 하는 이상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새로운 도서관의 모습은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이번에 자신이 직접 그런 작업을 했는데 어땠나.

"게임 디자인, 미디어 디자인, 움직임 디자인, 아크로바틱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작업했는데 기획을 받아들이고 접근하는 방식이 다 달라 신기했다. 특히 움직임 디자인의 무용과 마임 예술가들은 회의에 참석하기보다는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는 스타일이어서 흥미로웠다."

본인이 느낀 디지털 도서관은 어떤 공간인가.

"개인적으로 디지털 도서관에 처음 가봤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다. 지금도 아직은 낯선 부분이 있는데, 도서관이라고 했을 때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부분들이 많았고, 그런 느낌도 이번 작업에 반영되어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