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에 대한 담론] 장수, 부, 귀, 다남… 21세기 한국이 바라는 복의 재정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관용 어구의 허망함을 싫어하는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문장들이 있다. 새해가 되면 어김 없이 주고 받는 새해인사도 마찬가지다. 1월부터 2월까지, 얼굴을 마주하는 모든 이들은 서로에게 복을 빌어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슨 복을 받으라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복의 내용은 무엇이며, 받으라면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으라는 말인가.

국내 최장수 칼럼니스트 최정호 교수가 최근 <복에 관한 담론>을 통해 한국인의 복 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굴러 들어오는 복, 기르는 복

'신에게 바치고자 술을 가득 담은 술통'에서 유래한 '복(福)'이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빌어야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물론 선행이라는 조건이 따라 붙기 때문에 무작위로 주어지는 행운과는 다른 이야기다. '복을 기른다', '복을 심는다'라는 말에서 복의 권선징악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운명론적 성격도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문간에 '복'자를 거꾸로 써 붙여 굴러 들어온 복이 나가지 않도록 단속했는데, '굴러 들어온다'는 점에서 인간의 노력 여하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인식 또한 강했다. 복은 들어오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착한 일을 하면서 열심히 빌면 받을 수 있는 것이 복이다.

그렇다면 복은 무엇인가. 새해 인사와 더불어 나누는 덕담 중 하나로 "올해에는 바라는 것 모두 이루십시요"가 있다. 바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모두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낀다. 한국인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남 눈치 보지 않는 솔직한 본연의 욕구, 우리의 공통된 소망은 무엇인가.

최정호 교수가 궁중문학, 양반문학, 평민문학 등 한국 생활사에서 빚어진 어문학의 유산들을 뒤져 찾아낸 전통적 복 개념은 수(壽), 부(富), 귀(貴), 다남(多男)이다. 시대가 바뀌어 이들 중 어떤 것은 의미가 희미해졌지만 또 어떤 것은 모습만 바꾸어 여전히 한국인들의 행동에 근원적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100세 쇼크 앞에 사그라드는 수(壽)의 열망

아무 탈 없이 그저 오래 오래 사는 것. 장수는 평균 수명이 40세를 넘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땡감을 따 먹어도 이승이 좋다',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같은 말에서 삶에 대한 비굴할 정도의 집착을 읽을 수 있다.

내세에 대한 기대는커녕 개념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의 '수' 사상을 보고 있자면 이토록 기독교와 불교가 성행한 것이 의아할 정도다.

오래 사는 건 당연히 모든 이들의 바람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의외로 삶이 아닌 죽음을 칭송하는 문화권도 많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세상을 비관하는 염세주의가 지성인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들은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실컷 누리는 이들을 경멸하고, 목숨을 얻지 않는 것, 기왕 목숨을 얻었다면 빨리 잃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불교의 석가모니 역시 이승을 차안, 저승을 피안으로 보고, 세상을 뜨는 것을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나오는 것, 해탈로 불렀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죽음의 방식 중 하나인 할복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비해, 한국의 경우 죽음을 슬퍼하고 몸부림치는 곡소리를 예술화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러나 한때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처럼 돌았던 자살은 지금의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2009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32개 회원국 중 최고다. 그것도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은 자살자 수로, 2003년부터 5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원인은 빈부격차, 경쟁심화 등으로, 스트레스에 짓눌린 한국인들은 개똥에 구르면서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평균 수명의 대책 없는 연장은 기쁨이 아닌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2009년 태어난 사람의 기대수명은 80.5년. 1970년도와 비교하면 무려 18.6년이 늘어났다.

한국인들은 질 높은 삶에 대한 아무런 사회적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죽지도 못하고 꼼짝 없이 80세까지 살까 봐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타오르는 부(富)의 열망

돈 많이 벌어 풍족하게 먹고살기에 대한 소망은, 바로 지난 세기까지 한번도 기름져 본 적 없는 나라의 빈곤사에서부터 비롯됐다.

가난이 주는 가장 직접적이고 비참한 고통은 굶주림으로,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두 번째 문제고 일단 많이, 배불리 먹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므로 다이어트와 웰빙 바람, 여기에 블로거들을 주축으로 유행하고 있는 작금의 미식 열풍은 천지개벽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변화다.

굶주림은 해결됐지만 '부'에 대한 열망은 끝나지 않았다. 가진 재물은 보전하고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려는 욕구는 1960년대 이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급하게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된 부작용은 졸부 특유의 최고주의, 제일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최고의 브랜드라고 소문이 나면 취향 따지지 않고 달려들어 품절시키고, 돈이 없으면 카드로라도 비싼 자동차와 명품을 사들이는 것은 한국인들 소비의 특징적 면모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부유함이란 여전히 잡히지 않는 이상향이요, 하늘이건 땅이건 어디에라도 빌어서 반드시 받아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복이 되었다.

놓치면 죽는다, 절박한 귀(貴)의 열망

높은 것, 흔하지 않은 것, 공경받는 것을 의미하는 '귀'는 전통사회에서 높은 벼슬을 의미했다. 귀의 개념은 주관적이라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으나 옛날에는 오직 고위관직에 오르는 것만이 귀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귀=출세'를 의미하는 일원적 해석은 과거 시험의 항목인 사서삼경, 사서오경 등 인문주의적 교양이 입신양명을 위한 통로로 사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최정호 교수는 '정신적 귀족 계급'이 부재한 국내상황의 원인을 여기에서 찾고 있다. 벼슬의 고하가 귀를 결정짓는 유일한 기준이 될 때 출세에 목 매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직업의 귀천이 생겨나며 삶의 다양성이 제거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오늘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피 터지게 공부하는 고등학생들과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치열하게 스펙을 쌓는 대학생들의 삶과 연관이 있다.

자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능 시험을 위해 칸트와 니체를 읽는 학생들.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사회의 꼭대기에 누가 먼저 빨리 올라가느냐에 눈이 벌개지며, 선착순에 들지 못한 이는 가차 없이 발로 밟는 구조는 전통 사회의 귀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옛날에도 있었던 한량과 여유로운 풍류가 요즘에는 아예 자취를 감출 정도로, 귀에 대한 배타적 정의는 현대사회를 사는 이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최근에야 기술자, 농부, 예능인 등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서도 가치를 인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기준은 여전히 '성공한'에 제한돼 있으니, 귀의 획득을 위해 오늘도 어머니들은 교문에 엿을 붙인다.

킬 힐 앞에 무너진 다남(多男)의 열망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은 전통사회에서는 단순히 슬픈 일이 아니라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 남아 선호는 조상들의 치졸한 성적(性的) 취향이 때문이 아닌, 가문을 일으키고자 하는 눈물겨운 소망에서 비롯됐다.

당시 사회진출을 통한 입신양명, 그로부터 발생하는 부와 명예는 모두 남자에게만 허용된 것이었다. 아들이 많을수록 가문이 흥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지고, 여자는 그 아들을 낳을 정도만 존재하면 되었다. 다른 모든 복을 성취할 수 있는 근원으로서의 '남자'는 당연히 빌어야 할 복이요, 받아야 할 복이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사회진출 기회가 거의 동등해진 현재에 있어서 남초 현상은 오히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킬 힐을 신고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여자들은 위상에 비해 높아지지 않은 대우를 비관하며 결혼을 거부한다.

한편 어화둥둥 귀하게 자란 남자들은 스스로 옷 입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 제 2의 엄마 역할을 해줄 여자를 찾아 방황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여아 선호가 늘어나고 있어 전문가들은 2030년 한국이 여자 100명 당 남자 99명의 여초 사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1세기, 당신이 원하는 복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이 원하는 새로운 복은 무엇일까? 전통의 복 개념이 생명의 연장, 아들의 출산, 귀의 획득, 부의 생성이라면 현대의 복 개념은 여기에 수정, 추가되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본디 부와 귀를 타고나지 못한 서민들에게 주어진 좁은 출세의 길 중 하나는 좋은 학벌을 통한 입신양명이다. 어떤 정책으로도 가라앉지 않는 과잉 교육열이 이를 증명한다.

또 하나 삶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이 꼽힌다. 남녀의 사회진출 기회가 거의 동일해졌다지만 여전히 높은 직위까지 오르기 힘든 여성들은 넉넉한 경제수준의 남자와 결혼해 부와 명예를 동시에 획득하기를 원한다.

여기에 필수 요소는 아름다움이다. 재벌가 왕자님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여자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성형 공화국'이 됐으며 한편으로 '청담동 며느리'가 사회적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폭 늘어난 수명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도 복이다. 노년의 로맨스, 장수 식약품의 수요 증가, 환경문제에 대한 시민의식 확산에는 길고 긴 인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21세기 한국인들의 바램이 투영돼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