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발간… 새로운 사례 추가 더 엄격해진 성희롱, 의견분분

"남자 친구랑 섹스하죠?"

영화 <연애의 목적>에서 교사 박해일은 새로 온 교생 강혜정에게 진절머리 나도록 지분댄다.

"조개 무진장 드시네, 정말. 나는 다른 조개 먹고 싶은데."

"저는 그냥 같이 자자고밖에 안 했는데, 같이 자면 앞으로 편해질 수도 있어요."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마침내 동침하게 되고 결국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사랑하는 사이로.

응? 그럼 이건 성희롱이 꽃 피운 사랑인가?

지침이 너무 엄격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근 성희롱 예방 지침서를 펴냈다. '성희롱 모르고 당하셨나요? 알고도 참으셨나요?' 라는 제목의 소책자 1만 2000부를 제작해 사업장, 기업, 여성단체, 대학교 등에 배포했다.

인권위가 성희롱 예방 책자를 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은 시정하고 권고하는 내용의 사례집만 3차례 펴내 성상담 센터 등지에 배포한 적이 있다. 회식 자리에서 원치 않는 스킨십을 당한다든지, 성관계를 거절했다가 진급을 못 한다든지,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 외에 새로운 사례들이 추가됐다.

구체적으로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룸살롱 같은 업소에 참석시키는 것 자체로도 성희롱이 성립된다는 것, 그리고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한 음담패설이 제3자에 의해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경우에도 성희롱이 성립된다는 내용 등이 있다.

당연히 의견이 분분하다. "지나치다" "저 내용대로라면 앞으로 회사 동료는 쳐다 보지도 말아야 한다" "성희롱을 역이용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등등.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든, 성희롱 지침서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남녀들은 우울하다. 이걸 꼭 누군가 가르쳐줘야 할 정도로 성에 닫혀 있는 사회도 우울하고, 알아도 시정되지 않는 현실에 한번 더 우울하다.

음담패설은 말로 하는 섹스다. 성행위에 키스부터 포함시켜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야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동성과 하는 것보다는 이성과 하는 음담패설이 훨씬 짜릿하고, 단순히 대화만으로도 상대방의 몸, 소리, 촉감 등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한다.

언어적 섹스는 그 특성상 공개된 장소에서의 '난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타 성행위와는 또 다른 흥분감을 유발한다. 찰나적이라 부담도 없고, 애인의 오랜 부재나 배우자의 무관심으로 인해 말라 비틀어지기 직전의 성호르몬을 촉촉히 적셔 남자, 또는 여자로 다시 기능할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겠다.

한국 사회에서 성희롱의 개념은 198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생겨났다. 정의는 '환영받지 못하는 성적 행태'(성희롱의 이해, 문희경 저)다. 그러니 원치 않는 섹스라는 말이다. 상대방의 손이 내 몸에 닿기를 원치 않는 것부터, 그 머리 속이 내 나신으로 꽉 차 있기를 원치 않는 것, 그리고 굳이 그걸 저질스런 언어로써 발화해 함께 헐떡거리기를 원치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

'원치 않는다'라는 애매한 표현은 이야기를 대단히 복잡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성에 대한 사고의 개폐 여부가 다르고,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라 원치 않다가도 원하게 될 수도 있다. 성희롱의 문제를 '원한다, 원치 않는다'로만 풀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성희롱은 관계형 범죄가 아닌 권력형 범죄다. 한 명은 원하고 다른 한 명은 원치 않을 경우 성희롱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치 않는 사람이 상황을 통제할 힘이 없을 경우 성희롱은 성립한다. 법은 로맨스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너도 즐겼잖아, 그래도 성희롱이야?"

힘들게 사는 한국 남녀들에게 보내는 김어준의 메시지 <건투를 빈다>에서 그는 성희롱을 두고 "권력의 상대적 우위를 이용해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언동"이라고 설명했다.

상대적 우위가 없으면 성희롱도 없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직급의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대리급이라 해도 근력이 부족해서,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서, '말빨'이 달려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상대방을 제지하는 데 무능하다면 역시 성희롱은 성립한다.

때문에 성희롱 문제에 있어서 여자의 성욕도 남자 못지 않다든지, 저 남자가 나에게 먼저 눈웃음을 쳤다든지 하는 말은 다 소용이 없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성희롱 예방법의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이 있다. 통념상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경우다.

김두식 교수는 최근에 낸 책 <불편해도 괜찮아>를 통해 페미니스트들의 변화상을 지적한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 남성적이 되어 남자들의 세계에 끼어 들었다면,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남자들 위에 선다는 것이다.

전자가 요란한 치장이나 감정적인 면을 여성의 약한 모습이라고 여겨 억제하고 여성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면, 요즘의 페미니스트들은 핑크색 힐을 신고 섹시한 아이라인을 그린다.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들은 커리어의 상승에 있어서 그를 이용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꺼내들 준비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일부는 마음만 먹으면 성희롱을 빌미로 기득권 남성을 한 순간에 추락시킬 수도 있다. 성희롱 예방 지침에 개인이 희롱당하는 셈이다.

공적 관계에만 한정한다

그럼에도 국가에서 이토록 강력하게, 손가락 하나 맞닿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성희롱의 기준을 확립하는 이유 중 첫째는, 위의 사례들은 극소수인데 반해 여전히 실제로 심리적, 육체적 타격을 받는 약자들이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공적인 관계에 한하기 때문이다.

이번 지침서가 정의하는 범위는 사적인 관계나 고객과 업주의 관계를 배제한, 학교나 직장 내 고용 관계에 한정된다. 인권위 차별조사과 김은미 과장은 "이번 지침서를 두고 농담도 못하냐, 개인 취향까지 국가가 간섭하느냐, 라는 등의 의견이 많은데, 주요 취지는 고용상의 차별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성적 취향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을 공적 관계로 끌어 들이지 말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성희롱 예방 지침서는 그렇잖아도 팍팍한 우리 사회를 더욱 팍팍하고 건조하게 만드는 것일까? 답은 개인이 가지고 있다. 약자에 대한 억압은 자랑이 아닌 수치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이런 안내서는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엔 성에 서투르고 미숙한 사회 탓이다. 독일 트륑겐 의사회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강제로 성을 유린한 범죄자들의 대부분은 마음이 병든 자들이 아닌 정신적 미숙아들이었다.

이 경우 성희롱이 성립한다(국가인권위 성희롱 예방 지침서 중)

행위자가 성희롱을 하려는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피해자는 성희롱으로 받아들인다면 성희롱이 성립한다.

단 한 번의 성적 언동이라도 피해자가 그로 인해 성적 굴욕감을 느꼈거나 성적 요구를 거부해 고용상의 불이익을 받았다면 성희롱이 성립한다.

성희롱 당시 피해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명시적 거부를 하지 못했지만, 점차 성적 굴욕감을 느껴 성희롱으로 주장하는 경우에도 성희롱이 인정된다.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성적 언동이라도 성적 굴욕감을 주는 환경을 조성했다면 성희롱이 성립한다.

직장 상사 외에 같은 근로자 간에도 성희롱은 성립한다.

동성 간 및 여성의 남성에 대한 성적 언동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

기타 구체적 사례: 퇴폐 영업 장소에서의 회식,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성적 언동, 직장 상사의 일방적인 애정 표시, 부절적한 성적 제안과 이를 거부했을 시의 고용상 불이익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