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 다양

'이 날이 아니었으면 초콜릿 회사는 어떻게 됐을까?'

매년 이맘 때쯤 거리를 메운 초콜릿 바구니를 보며 생각한다. 밸런타인데이가 아니었으면 저 초콜릿은 어떻게 됐을까? 그 많은 초콜릿은 누가 다 먹을까? 연인들의 명절, 밸런타인데이가 돌아왔다.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이 날에 어울리는 문학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젊은 문인들에게 기억에 남는 연애소설을 추천받았다. 몇 달 전 발간된 장편<비타>부터 국내 단 300부만 한정 발간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단편 '죽음에 이르는 병'까지 이들이 꼽은 작품은 다양했다.

초콜릿 바구니 속에 달콤 쌉싸름한 책 한 권을 함께 넣어보면 어떨까?

'사랑은 어떻게 소멸되는가'

이기호
성석제 풍의 걸출한 입담이 일품인 젊은 소설가 .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로 확고한 독자층을 확보했고,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한 장편 <사과는 잘해요>를 재작년 출간했다.

특유의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한국일보 문화칼럼 '길 위에서'를 연재한 바도 있는 그는 현재 두 번째 장편 <수배의 힘>을 마무리하고 있다.

"지난해 계간지에 연재한 작품인데 끝부분 이야기를 남긴 채 연재를 끝냈어요. 1/4정도 이야기가 남았는데 그 부분 덧붙이고 다듬어서 봄에 출간할 생각입니다. 단편집이 여름에 나와야 하는데, 발표한 작품을 모아놓고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건 조금 더 손보려고요."

그가 추천한 연애소설은 박범신의 장편 <침묵의 집>. 소설가는 명지대 대학원 재학 당시 박범신 작가를 사사한 바 있다.

"제가 박범신 선생님 작품을 추천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읽은 최고의 연애소설이에요. 나이 많은 여자 시인과 나이 어린 유부남이 바이칼까지 가서 펼치는 사랑 이야기죠. 사랑에 대한 감정이 시간에 따라서 소멸되는 걸 뻔히 알면서 거기로 나가는 연인을 그린 작품입니다."

오현종
소설 주인공은 50대 중반인 주류회사 자금 담당 이사 김진영과 그보다 4살 많은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이다. 길들여진 삶을 살던 김진영은 천예린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천예린이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리자 김진영은 회사의 자금을 횡령해 그녀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그의 고행은 아프리카 대륙, 스코틀랜드를 지나 바이칼호에서 천예린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이어진다.

1999년 출간한 이 작품은 2006년 <주름>이란 이름으로 개작, 재출간된 바 있다. <침묵의 집>은 원고지 2600장 분량이었지만 개작하면서 1500장 정도로 줄였다.

'사랑을 포착한 시적인 문장'

2000년 중반 문학계에서는 순수소설에 SF 등 장르소설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유행처럼 시도된 적이 있다. 박민규, 윤이형 등 작가들은 여전히 몇몇 작품에서 이런 크로스오버를 선보인다. 이런 시류를 소개할 때, 소설가 을 빼놓을 수 없다.

소설집 <사과의 맛>을 비롯해 장편 <너는 마녀야>,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등을 통해 작가는 동화, 신화, 설화, 대중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며 각인됐다. 최근에는 그는 장편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처럼 정통서사에 충실한 작품, 장편 <거룩한 속물들>처럼 신자유주의 문화가 만연한 우리사회를 묘파한 작품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작품 폭을 넓혀가고 있다.

손홍규
재기 넘치는 이 작가가 꼽은 연애소설은 마가렛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애트우드는 다양한 작품에서 환경과 인권, 예술, 여성의 삶을 비중 있게 다루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주인공의 이야기 안에 여동생이 쓴 소설 이야기가 또 나와요. 그 이야기가 눈먼 암살자예요. 노동운동가와 유부녀가 주위 시선을 피해 밀회를 나누는 이야기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리스는 정략결혼을 택하고, 아버지 사망 후 결혼을 반대했던 여동생 로라가 그들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서로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던 자매는 주위를 가득 채운 지저분한 욕망과 권위의식으로 인해 멀어지고 각자 다른 모습으로 희생된다. 삼중 액자 구조를 가진 이 작품은 촘촘하고 정교한 구성으로 82세 노파의 회고담을 들려준다.

"애트우드는 여성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하면서도 주의, 주장이 담긴 소설을 쓰지 않아요. 문장이 참 좋아요. 인간의 열정이나 순간의 사랑을 포착하죠. 시적이고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사랑과 인생에 대해 들려줍니다. 본격 연애소설은 아니지만, 이 작품도 넓은 의미에서 사랑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소설이에요."

'왜 사랑할 때 바보가 될까?'

백영옥
의 소설을 읽다 보면 김소진이 생각난다. 9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한 마지막 학생운동 세대인 작가가 천착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현실에 적응하지는 못하는 인간 군상이다.

단편집 <사람의 신화>와 <봉섭이 가라사대>, 장편 <귀신의 시대>와 <이슬람 정육점> 등을 냈다. 탄탄한 구조와 묵직한 메시지에 안정된 문장이 더해진다. 전북 정읍 출신의 이 작가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해학을 더한다.

그가 꼽은 연애소설은 어떤 작품일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라고 대답한다. 작가의 작품 색깔을 생각할 때 다소 의외의 추천이다.

젊은 시절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결혼한 여자는 남자에게 무릎을 꿇고 사랑과 돈을 요구한다. 남자는 자신이 아내에게 필요한 존재란 사실을 즐기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언제나 꼭 쓸 만큼만의 돈을 주던 남자는 아내의 엄마가 아픈 사실을 알고 미리 돈을 준비하지만, 정작 여자에게 인색하게 굴며 아내가 한 번 더 무릎 꿇고 애원하길 바란다.

자존심이 상한 여자는 남자를 떠난다. 남자는 자신의 표현방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여자를 찾아 나선다. 도시 뒷골목에서 낯선 남자에게 웃음 파는 여자가 된 아내를 매일 찾아가지만, 더 이상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는 욕설과 조롱을 퍼붓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남편에 의해 죽어간다.

신형철
"이 소설 내용이 '사랑을 할 때는 그게 사랑인줄 모른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나중에 후회하고 그러죠. 그 점에서 누구나 감정이입할 수 있는 책이에요. 출간된 지 꽤 오래됐는데 제가 읽은 건 4년 전쯤이에요. 저녁에 혼자 맥주 마시면서 읽다 울던 기억이 나네요."

연애도 순박하게 할 것 같은 작가에게 물었다. 연애 장면은 쓸 때 포인트는 뭔가요? 에피소드? 대화? 묘사?

"저는 좀 에둘러서 행동하는 편이라서, 연애부분을 쓸 때도 그래요. 사랑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박에 이해되는 게 아니라는 것, 소통 불가능한 감정 중의 하나라는 것. 그런 심정을 드러나게 하는 데 신경을 씁니다."

'이 가난한 연인의 선택'

장편 <스타일>로 알려진 소설가 . 세계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2000년대 중반 출판계를 휩쓴 칙릿 열풍의 한 가운데 서면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후 이 작품이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두 번째 장편 <다이어트의 여왕>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인기 작가로 이름을 굳혔다. 소설가 을 예전 인터뷰 했을 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창비와 예스24에 연재하는 작품은 다르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와 연재 지면에 따라 쓸 작품의 주제와 말하기 방식을 고려한다는 이 영민한 작가는 이제 곧 인터넷을 통해 중국 독자와도 소통할 예정이다.

올해 출판사 자음과 모음은 한중일 작가 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과 중국작가들의 장편소설을 인터넷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그의 세 번째 장편은 국내는 물론 중국으로 번역돼 인터넷에 연재될 예정. 첫 번째 단편집도 조만간 출간을 앞두고 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한류가 형성됐지만, 문학은 번역의 어려움 때문에 이제까지 작품 소개가 힘들었어요. 한중 인터넷 동시 연재라서 새 장편이 많이 부담되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어요."

새 연재소설의 취재에 한창인 작가에게 연애소설을 추천받았다.

"멜라니아 마추코의 장편소설 <비타>인데, 스케일이 커요.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이탈리아판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해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성향도 있고요."

소설은 비타와 디아만테의 비극적 연애담이 중심을 이룬다. 둘은 아메리카 드림을 안고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오지만, 이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팍팍하다. 디아만테는 비타와의 미래를 위해 신문 배달, 넝마주이, 장의사 보조역 등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지만, 비타에게는 눈앞의 현실이 더 중요하다.

디아만테와 떨어져 있는 동안 그녀는 범죄 세계에 몸담고 있는 유부남 로코와 정을 통하면서 연인을 배신한다. 작가는 죽은 디아만테를 친부로 여기고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로베르토, 로베르토의 딸로 자기 가문의 역사를 복원해가는 화자 '나'의 이야기를 결합시켜 100년에 걸친 이야기를 펼친다.

'이런 사랑도 사랑일까?'

문학평론가 의 비평은 요즘 웬만한 소설가나 시인들의 작품보다 더 인기 있다.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지 햇수로 5년이 지났는데 아직 논문을 쓰지 못했다. 밀려드는 해설과 평론 청탁 때문이다. 2008년 한국일보에서 조사한 '작품집 해설을 가장 많이 쓴 평론가' 1위로 꼽힐 정도이니 문인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2007년 문학동네 최연소 편집위원이 된 그는 이듬해 발간한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로 일반에 알려졌다. 날카로운 안목과 사려 깊은 해설, 유려한 문체로 무장한 그의 책은 평론집으로는 드물게 7쇄를 넘겼다.

"이달 중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가제)를 출간할 계획인데,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에 쓴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앞으로도 평론집은 평론집대로 내고, 짧은 칼럼들이 모이면 산문집을 정기적으로 내려고 합니다."

그가 추천한 연애소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단편 '죽음에 이르는 병'. 1982년 발표한 소설은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에서 300부 한정 출간된 바 있다. 설치미술가 양혜규 씨가 뒤라스의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한 '셋을 위한 목소리'란 전시회를 열었고,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된 것. <모데라토 칸타빌레>등 뒤라스의 소설을 우리말로 옮긴 정희경 씨가 번역을 맡았다.

영화 <연인>으로 대중에 알려진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사실, 설치미술가 양혜규 씨의 작품을 관통하는 모티프다. 신 씨는 뒤라스를 모티프로 한 양혜규 씨의 전시회 소식을 듣고 갤러리를 찾아 그 책을 구했다고 말했다.

신 씨에게 직접 설명을 부탁했다. 정신에서 육체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연애소설과 달리, 어떠한 환상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육체로부터 출발하는 사랑이 과연 가능한가를 묻는, 극도로 헐벗은 메마른 연애소설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이어 물었다. 왜 하필 이 작품을 추천하시나요? 문학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사랑의 근원적 불가능성을 파고드는, 안티 연애소설이라고 할까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